에세이 - 죽기엔 아까운 사람

(21.04.03)

by 김옥미

죽음학을 연구하는 나의 연인과

'자살생존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가 자살을 시도하던 심정이 무엇이었냐는 질문에

나는 나의 인생에 최선을 다했고

나의 역할에 모든 소임을 다했으며

더이상 이루어야 할 것이 없다고 생각이 되었으므로

이만 생을 종료하고 싶다는 생각에

자살 시도를 감행한 것이었다고 나는 답했다.

고통으로 말미암아서

또는 고통으로부터 편안해지고 싶다기보다

모든 것을 완수했다는 심정으로

이만 끝내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살아달라, 힘내달라, 희망이 있다는 말이

내내 마음에 와닿지 않았다고 말했다.

나는 이미 살아야 할 명분이 없으므로.

힘내야할 이유도, 희망을 느끼지 않는 것도 아니므로.

나의 이런 소회를 모두 내뱉고

나는 죽음학을 연구하는 나의 연인에게 질문했다.

너는 이런 자살생존자에게 어떤 솔루션을 내놓느냐고.


그는 답했다.

모든 역할을 다 완수한 상태에서

죽음을 마주한 '나'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생각해 볼 수 있겠느냐고.


그제야 나는 문득 마음이 일렁였다.

나는 나에게 최선을 다한 적은 없었다.

죽음을 맞이하기에는 나는 종료될 수 없는 사람이었다.

모든 역할을 배제하고 모든 것을 완수하고 난 이후의

그 때의 나는 너무나 안타깝고 외로운 사람이었다.

죽기엔 아까운 사람이었다.

죽음을 앞에 둔 사람은 그런 심정이어야 하는 것이었다.


그는 말했다.

자살생존자들은 흔히 자신의 자살을 합리화하기 위해

자신의 역할과 자신의 최선을 되짚어 본다고.

그러나 그 과정에서 자신을 생략하고는 한다고.


나는 울고 싶었다.

하지만 울어지지 않았다.

이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

심리 치료에서 내가 나에 대한 연민을 마주할 수 없는 이유와

맞닿아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나에게 죽음을 말하면서도

내가 삶 자체를 마주하도록 하고 있었다.


삶이란 그런 것이구나.

생에 대한 의지란 그런 것이구나.

내가 언젠가 울 수 있다면 좋겠다.

죽음을 앞에 두고 서 있는 나를 마주하고

나는 결코 죽을 수 없다고 안타까워하며

나 자신에 대한 최선은 아무것도 하지 못했노라고

그것을 슬퍼하며 나 자신을 사랑하지 못한 순간들을

스스로 안아주고 쓰다듬으며

나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전 05화에세이 - 이제는 맛있어져버린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