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9.01)
돈이 없고 내 마음도 헐겁던 시절에
내가 엄마를 사랑할 수 있는 방법은
어쩌면 참 초라한 것이었다.
당신은 굳이 그 먼 장터에서
튼튼하다고 믿는 책가방에
허리까지 늘어지는 그 어디서 샀는지도 모를
학생용 가방에
대파니 감자니 생선이니
잔뜩 담으면 담을 수록 신나는 행세로
집에 돌아오곤 했다.
5일장 같은 데를 뱅뱅 돌아다니지 말고
카트 끌 수 있는 마트에 가라고
먼 장터에 갈 거면 올 때라도 택시를 타라고
번번이 나는 타일렀지만
엄마는 자신의 사명처럼 그렇게 매번 장터에 다녀오셨다.
살 게 없어, 너무 비싸, 같은
그러면 도대체 장터는 왜 그리 가는지
왜 묵직하게 사들고 오는지
이해도 안 되는 장터에 내가 엄마를 따라 나서면
엄마는 그렇게 흥에 겨워 조잘대곤 했다.
저기 보다 여기가 더 싸, 꼼장어나 먹을까,
꽈배기 하나씩 먹을까,
이런 말들을 늘어놓는 순간을 기뻐하셨다.
공과금을 포함한 딱 생활비에 맞는 금액만
엄마에게 전해주던 아빠 덕에
엄마의 쇼핑은 그런 사소한 사치였다.
소시지 살 돈으로 고등어를 사고,
오늘은 찐빵으로 기분 내던 것이
엄마의 소소한 행복이었다.
그 곁에 나는 해줄 수 있는 게 없어서
그렇다고 엄마의 말 동무가 되는 것도 화가 나서
틱틱대면서 그냥 내 취향에 맞는 반찬 거리를 조르곤 했다.
그러다 내가 엄마에게 나는
튼튼하고 가볍고 커다란
스포츠 브랜드 가방을 선물해주었다.
엄마는 그 가방을 참 좋아했다.
장보기에 딱이라며 매번 그 가방을 매고 장을 보러 가셨다.
매번 그런 식으로 나는
엄마의 삶을 바꾸지는 못하고
그렇다고 긍정하지도 못하고
나의 부채감을 해소하기 위한 선물을 했었다.
이 시대에 CD플레이어를 고집하는 엄마에게
새로운 CD플레이어를,
나비모양의 목걸이를 늘 갖고 싶어했던 엄마에게
글쓰기를 좋아하시니 나비디자인의 노트를,
조용필 콘서트를 못가는 대신 DVD를,
엄마의 고집을 배려한,
나의 가난을 합리적으로 만족시키는 그런 식의 애정이었다.
엄마의 장례식이 끝난 뒤 나는 도망치듯 서울로 돌아갔다.
엄마의 흔적을 정리하는 것들은 모두 동생이 돌보았다.
불현듯 엄마의 나비 노트가 생각이 나서
그건 내게 택배로 부쳐달라고 부탁을 했었다.
유품으로 박스에 넣어져 지금은 베란다에 있다.
나비노트의 엄마의 단정한 글씨체를 보면서 나는 생각한다.
항상 누군가를 위해 무엇인가 포기하고도
엄마의 글은 예쁘고 단정하구나.
엄마가 삶을 대하는 태도가 그랬겠구나.
나의 글씨체는 사연이 많지만
엄마만큼만 단정했으면 좋겠다.
튼튼하고 가볍고 커다란, 그 때 그 가방처럼
내 글이 딱 그랬으면 좋겠다.
나는 나를 인정해줘야지, 그럼에도 설득하려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애정이었음을,
엄마와 나의 비밀스러운 합의였음을.
비록 아직 내어줄 자리가 없어
베란다에 놓여져 있는 감정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