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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 치료 상담 일지 - 나에게 칭찬할 수가 없어요

(21.09.25)

by 김옥미

“이번에 고향에 내려가서, 아빠가 경상도 특유의 짜증을 낼 때 움찔움찔하고, 그런 거 말고는 별 거 없었어요.”


“움찔움찔한다는 건, 겁을 먹고 그런 거잖아요. 그냥 아빠의 성향이 그런 걸 알면서도 움찔움찔한다는 말이에요?”


“밖에 태풍이 오니까 우산을 가지고 가라고 아빠가 말했는데, 지금은 비가 안 온다고 제가 말을 하니, 아빠가 막 화를 내서, 우선 우산을 가져갔죠. 그런 일이었어요.”


“마음이 어땠어요? 격하게 아버지가 표현할 때?”


“서운하고 무섭고 그렇죠.”


“어떤 게 서운하고 무서웠을까요?”


“좋게 말하면 되는데, 왜 화를 내듯이 얘기를 할까. 괜히 싸울까봐… 큰 소리를 더 낼까봐.”


“그럴까봐. 가 어떤 걸까요?”


“큰 소리를 내서 내가 겁을 먹을까봐…”


“나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나요?”


“말 할 것도 안 하게 되고, 그냥 바로 알았다고 마무리하게 되고…”


“이 얘길 하면서는 어때요?”


“아빠를 좀 무서워하는 것도 있긴 하구나, 싶어요. 아빠가 날 아껴줘서 좋은데, 아빠의 폭력성 같은게 남아있을까봐.”


“아빠의 폭력성이란 게 뭐가 있을까요.”


“소리친다던지, 화낸다던지.”


“맨 처음 기억나는 아버지가 소리치거나 화낸 기억을 떠올린다면 뭐가 있을까요?”


“엄마한테 대들 때 엄마한테 그러면 안된다 한다거나, 아빠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맞은 적이 있는데, 직접 맞은 건 아니고, 아빠가 의자를 던졌는데, 무서워서 화장실로 갔는데, 아빠가 도끼였나 망치로 문짝을 부수기 시작했는데 그런 게 기억에 남는다.”

“초기 상담에 나왔던 에피소드 같은데 생각나는대로 다시 얘기 할 수 있을까요?”


“할머니가 동생과 저를 차별을 많이 하고 엄마한테도 못되게 굴어서 할머니가 있는 방 벽쪽으로 물건을 집어던졌었는데 할머니가 아버지한테 그걸 말했고 아버지는 그 와중에 밖에서 엄마랑 다시 잘해보기로 했는데 얘기가 잘 안 됬나봐요. 그래서 아버지가 저한테 의자를 집어던지고 동생은 아버지한테 신발을 집어던지더니 집 밖으로 나가버렸고 저는 화장실로 도망쳤는데 아버지는 문을 망치인가 도끼인가 그걸로 부수기 시작했고 빛이 새어들어오면서 아빠 얼굴이 보이던 게 기억이 나요. 그러고 나서 뒷 일은 기억이 안나요. 이후에 아빠가 그 일을 가지고 엄마한테 가서 슬프단 식으로 얘길해서 엄마가 측은하게 여겨서 두분이 서로 얘기가 잘 되셨나 보더라구요. 그래서 다시 엄마랑 아빠는 사이가 좋아졌죠. 엄마가 아빠 변호를 하면서 그 일은 일단락 되었었죠.”


“나는 근데 언뜻언뜻 문 사이로 부서지는 틈이 보여서 무서웠어요 그렇죠? 그 이후의 일은 기억에도 없고… 그 때의 감정이… 무서움 말고 어떤 감정이 있었는지 한 번 찾아볼까요?”


“당황스럽고 외로워요.”


“당황스럽다는 건 어떤 생각이 들어서 당황스러웠을까요?”


“아빠가 그렇게 한 건 처음이고, 도망가는데 굳이 문을 부수는 것도 당황스럽고,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아무도 말리는 사람은 없고,


그저 당황스러웠던 것 같아요. 할머니가 저를 위해서 말린 게 아니라, 아빠한테, 너 고혈압인데 그러면 안된다고, 챙겼던 기억이 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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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고발자이자 자살유가족, 자살생존자 그리고 정신질환자. 연극의 연출을 하고 대본을 쓰는 연극 연출가이자 극작가, 극단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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