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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 치료 상담 일지 - 비련의 여주인공이 되긴 싫어요

(21.11.02)

by 김옥미

“내일이 이삿날이에요, 당뇨 진단이 있었어요, 프리랜서 계약을 몇 개 더 진행을 했고, 반려 고양이 차차가 많이 아파서, 동물병원에 160만원 가량을 결제했고,“


“쭉 회상을 해보니 어떠세요?”


“하루마다 이벤트가 없는 날이 없어서, 즐겁게 피곤한 거긴 한데, 좋은 일만큼 당황스러운 일도 한꺼번에 있어서, 돈에 대한 공포도 있고,“


“그게 어떤 걸까요?”


“차차 동물병원비나 이사비도 많이 나가고 있는데, 프리랜서 계약을 많이 맺어서 기대하고 쓴 거긴 한데, 일을 해야 나오는 돈이라 부담감이 있어요. 이사를 하니까, 후련하긴 하구요. 안산에서는 등단 말고는 좋은 일이 없어서. 많은 일들이 스쳐지나는 것 같아요.“


“아쉬운 건 뭐가 있을까요?”


“돈이 좀 더 있었으면 차차를 좀 더 입원시키고 하고 싶은데, 그게 좀 안타깝고, 차차 생각하면 이사를 하면 안되는데, 이삿날은 잡혀있고, 새로 유기묘를 입양하기로 했는데 그것도 걱정이 되어요. 그리고 미투 관련 민사 재판 변론 기일이 있었는데, 그게 어제였는데, 가해자 측의 준비서면을 읽었는데 화가 날만큼 적반하장이라.. 내가 트라우마로 인한 정신과 진단이 아니라 무죄라는 1심에 충격을 받고 정신과를 간 것이고 그에 대한 결과로 자살 시도를 한 것이다, 라는 주장이 저의 주 맥락이었는데 정신과 피해가 있는 사람이 인터뷰나 경찰 심문에서 그렇게 즐겁게 얘기할 수 있는가, 에 대한 주장과 성폭력 피해 뿐 아니라 다른 여러 일도 있었는데 성폭력 피해만으로 정신적 피해를 입었다는 증거가 무엇이 있느냐, 라는 말들을 보고는 가해자가 내게 직접 말을 하는 듯한 느낌이어서 네가 내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느냐, 라는 식의 기분이었어요. 변호사님은 냉정하게 진단서와 의학적 증거로 대응했고 대법원 판결 등을 인용한 깔끔한 논지였구요. 남자친구는 영향을 받지 말아야 한다, 재판 너머에 인생이 있다, 라고는 하지만 승소해도, 패소해도 모두 다 화가 나고 스트레스받는 심정이에요. 자살 시도 하거나, 심리 치료 하거나, 조증윤 얘기를 많이하고 흔적을 남겼어야 하나, 그런 생각이 드는데, 경찰 심문에도 10년이 지난 일에 지금까지도 불행에 절어서 슬퍼했어야 하나, 그런 억울한 심정이 들어요.”


“많이 힘드셨겠다.”


“최대한 신경을 쓰지 않으려고 노력은 하고 있는데, 판결일이 다가올수록 부담이 될 것 같다는 예상을 해요.”

“왜 신경을 쓰고 싶지 않을까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없고, 내 손을 떴고 순리대로 흘러가겠지, 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뭘 얻으려고 하는 것도 아니고, 무엇을 잃을 것도 아니고, 어떤 것을 증명하려고 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나와는 구별되는 다른 일로 거리를 두려고 노력해요.“


“의미 있는 일이기도 하지만, 아직도 부담스럽지 않나 싶은데.”


“일로 보려고 하는 성향이 커요.”


“나에게 일어났던 일이라기 보다는, 어떤 ‘사건’이야, 라고 바라보려는 마음은, 어떤 마음?”

“개인적인 나 자신과 사회적인 나 자신이 있다면, 사회적인 나로서 그 일을 바라보려는 마음이 더 커요. 승소하든 패소하든 없었던 일이 되는 것도 아니고, 기쁜 일이나 슬픈 일이 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사회적이고 공적인 나로서 책임지고 취급하려는 나의 태도가 나를 부담스럽게 해요. 물론 그런 부분이 나의 마음을 편하게 하고 냉정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사회적인 나로서 스스로 검열하게 되는 부분이 있어요.”

“어떤 걸 검열하나요?”


“정치적인 입장, 전략적인 입장, 사회적인 입장에서, 나라는 사람이 이 사건에 유효한가? 적절한가? 타자에 의해 내가 정의롭게 여겨지는가? 효과적으로 여겨지는가? 그런 부분을 생각하는 것 같아요. 만약 승소하게 되면, 다시 기자와 인터뷰를 하면서 나의 판결을 사회적으로 기여할 수 있게끔 충분히 활용해달라, 라고 말을 할텐데 그런 상황에서 나라는 사람이 유효한가,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이런 말을 하고 있는 나에 대해서 어떤 생각이 드나요?”


“굳이 그렇게까지. 그렇게 사는 것도 힘들고, 내가 피해로부터 자유로워진 것도 아닌데, 그렇게까지 책임지고 내가 이렇게까지 나서야 할 이유가 있는가, 그런 생각이 들긴 하지만,”


“나 자신을 검열할 때, 복합적인 이유와 생각들이 있을텐데, 그럴 때 어떤 마음인가요?”

“힘들고, 피곤하고, 지겹고, 외로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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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고발자이자 자살유가족, 자살생존자 그리고 정신질환자. 연극의 연출을 하고 대본을 쓰는 연극 연출가이자 극작가, 극단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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