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반지
결혼 예물로 받은 무해한 알사탕
진주 반지
겨우 29살이었다.
지금 29의 결혼은 너무 빠르게 느껴지는 요즘이지만. 그 당시에는 빠른 것도 느린 것도 아닌 나이였다.
하지만 나이보다 더 중요한 건, 그때는 나는 내가 어른이라는 착각 같은 걸 했던 것 같다
내가 누군가와 결혼해서 어른스럽게 평생을 잘 살아갈 것이라는 말도 안 되는
엄마의 말에 의하면 결혼도 자식을 낳는 것도 인생에 큰 결정들은 사실 이것저것 계획을 세우고 많은 생각들을 해서는 절대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냥 뭘 모르니까 가능한 일이라고는 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나는 그냥 결혼식을 하려고 했지 결혼을 할 생각을 하지 못했건 것 같다.( 이건 나이를 떠나 지금도 꽤 많은 결혼을 앞둔 예비신랑신부들이 착각하는 문제 중에 하나이다. 결혼식은 그냥 인생의 하나의 행사. 개인의 큰 이벤트인 거지 결혼은 그것과 별게이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14년 전 나도 결혼식을 위한 이러저러한 준비들을 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결혼식의 가장 큰 문제는 어른이 되지 못한 우리는 우리의 돈이 아닌 부모님의 돈으로 결혼식을 치르기에 서로 무언가를 형식적으로 관례적으로 때론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 주고받는다. (그 주고받음으로 싸우기도 하고 심각하게는 그 결혼이 없어지기도 한다. 사실 그걸로 엎어질 거면 결혼 전에 엎어지는 것이 100배 잘하는 일은 맞다)
그리고 그때 나도 남편에게 이러저러한 것들을 받았는데, 그중에서 나는 이 알사탕 같은 진주반지를 가장 아낀다. 보석 중 가장 좋아하는 진주를 결혼 예물 세트로 받고 싶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뭘 했다고 뭘 해주겠다고 이러저러한 것들을 받아야 하네 받고 싶네 하는 생각들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결혼 예물 특히 보석의 가격이나 브랜드는 진짜 천차만별이라 어느 순간 머리를 절래 절래 흔들게 되는데. 이름 있는 브랜드들은 엄두가 나질 않아 우리도 예물 투어 같은 걸 했다.
그리고 이 반지를 만났다. 거기가 어떤 가게였는지도 잘 기억이 나질 않는데 매니저가 보여준 이 진주반지를 보자마자 저는 여기서 할게요를 정했다.
쓸데없는 장식 없이 알사탕 같은 진주알 하나에 자연스럽게 밴딩 된 라인이 너무 예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14년 동안 나는 이 반지만큼 예쁘게 잘 살고 있는 건지, 이 반지의 빛깔만큼 성숙했는지 모르겠다. 아직도 미혼인 친구들의 질문에 결혼은 뭐 굳이 뭐 해도 되고 안 해도 되고 결혼식을 치르고 그다음에 결혼이라는 제도 안에서 닥쳐오는 다양한 문제들은 진짜 결혼을 해봐야 알 수 있으니 그리고 미혼인 친구들이 혼자 살아가는 세상에 닥친 문제들도 나는 알 수 없으니 서로가 무엇이 더 내 삶에 나은 결정인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어쨌든 결혼을 해서 나는 이 알사탕 같은 진주 반지가 생겼다. (그리고 솔로는 뭐 진주 반지 하나 쯤 자기가 사면 되지 않겠는가? 진주반지 하나 때문에 결혼을 할 필요는 없다)
나는 기분 전환으로 혹은 그냥 뭔가 손에 멋을 내고 싶을 때 이 반지를 낀다. 철이 없고 아무것도 모르고 이렇게 무해해서 예쁜 진주반지를 받아 신이 나 있는 내가 보인다. 그런데 그렇게 무지한 것도 나쁘지 않았던 것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