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 가와쿠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을 만들기 위해
레이 가와쿠보
어느 날 핀터레스트를 구경하다가 멋쟁이 할머니를 발견했다. 새까만 언발란스한 단발머리에 선글라스. 블랙 가죽재킷에 가볍게 멘 배낭과 스니커즈. 잔뜩 풍기는 일본인의 냄새. 레이 가와쿠보였다.
10년도 전, 거리에 하트모양의 로고가 있는 셔츠와 가디건들이 자주 보이기 시작한다. 자세히 보면 이 하트 안에 불규칙적이지만 귀여운 눈이 달려있는데, 바로 꼼데가르송의 로고이다.
레이 가와쿠보는 그 꼼데가르송의 디자이너이자 일본에서 성공한 현재에도 활동하는 1세대 디자이너이다. 그런데 그녀를 단순히 이 하트로고 브랜드의 디자이너라고 말하기엔 그녀가 한 일이 너무 많아 그녀의 사진에서 품어내는 포스만큼 그녀가 일본과 전 세계 패션계에 미친 영향이 너무 크다.
우선 우리가 알고 있는 하트로고는 정확히 말해 꼼데가르송이 아닌 꼼데가르송 브랜드를 캐주얼하게 대중성 있게 만든 산하 레이블 꼼데가르송 플레이이다. (귀여운 로고로 가디건 T셔츠 셔츠 운동화 어린아이까지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아이템을 만든다) 그리고 준 와타나베/걸/옴므/홈/CDG/블랙_꼼데가르송에는 수많은 레이블들이 펼쳐져 있고 그 가장 위에 꼼데가르송이 있다. 그녀가 보여주는 꼼데가르송의 디자인 철학은 완전히 예상 밖에 있다. 우리는 그녀가 펼쳐내는 디자인의 아주 작은 부분 부분들을 실제로 입고 즐기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녀의 디자인철학은 무엇인가? 그녀가 선보인 컬렉션을 보면 이것이 과연 옷인가 아니면 사람이 입을 수는 있는 것인가 할 정도로 특이하고 괴상하다. 정말 어디서도 보지 못한 비주얼이다. (예전에 한남동쇼룸을 회사사람들과 구경 갔다가 거기 전시된 컬렉션 의상을 보고 팀장님(패션알못)이 ‘이것들 진짜 장난하는구만’ 하며 비난을 쏟아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오랫동안 레이 가와쿠보가 전개해 온 이 거대한 장난은 패션계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한번 쓴 원단은 다시 쓰지 않는다. 우리가 알고 있는 실루엣을 깬다. 아름답지 않은 것을 만든다. 어떤 것에도 구애받지 않는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을 만든다.
그녀의 이 과감한 세계관은 다양한 디자이너들이 브랜드들이 자유롭게 나아가도 되는 방향을 제시했다. 왜냐면 그녀의 철학에 따르면 창조란 무엇이든 해도 되는 것이니까
언젠가 그녀의 인터뷰에서 일에는 즐거움이 없다 일을 즐긴다고 말하는 사람은 일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라고 말한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일은 힘들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그녀가 해야 할 일은 너무 많고 일 년에 오직 4일 정도만을 쉰다는 그녀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을 만들기 위해 누구보다 치열하다.
그러니 누가 장난이라고 했던 말을 내가 대신 진심을 다해 사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