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의 잡다구리. 다섯 번째

하나와 앨리스

by 이가든

용기가 필요할 때. 종이컵 토슈즈를 신고

하나와 앨리스


개봉 2004.11.17.

국가 일본

장르 멜로/로맨스

감독 이와이 슌지



2000년대 초반부터 후반을 넘어서도 모든 광고 콘티의 여주인공 레퍼런스 컷을 아오이 유우의 사진으로 도배하던 시절이 있었다. 아무런 아이디어가 없어도 그녀의 사진을 올리고 카피를 쓰면 그게 뭔지 설명할 수 없는 느낌적인 느낌을 주는 그래서 콘티가 완성되던 때였다.

나의 20대는 러브레터. 이와이 슌지. 일본영화. 아오이 유우 뭐 이런 것들을 보지 않으면 마치 감수성이 없는 사람처럼 느껴지던 때라 그 감성이 뭔지 정확하게 설명할 수 없어도 그냥 그 감수성을 과식하던 때였다. 특히 그 중심에 이와이 슌지의 영화가 있다.


이와이 슌지 영화 중에 ‘하나와 앨리스’라는 영화가 있다. 이 영화는 단짝 친구인 하나와 앨리스가 고등학교에 입학하며 짝사랑하는 선배를 만나 뭔가 의도치 않은 거짓말을 하며 일어나는 삼각관계의 귀여운 연애스토리이다. 그리고 이 영화에 절대 잊을 수 있는 장면이 하나 나온다.

영화에서 앨리스(아오이 유우)는 잡지 모델의 캐스팅에 매번 떨어진다. 그러다가 영화 후반부 보게 된 오디션에서 자신의 장기나 특기를 보여줘야 하는 기회가 생긴다. 거기서 준비하지 못한 토슈즈를 대신해 포토스튜디오에 있는 종이컵을 발에 테이프로 칭칭 감고 발레를 추는 장면이 나온다. 이 장면은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에 가깝다. 그 몇 분 동안 이어지는 발레 장면은 절대로 잊을 수가 없다. (영화에서 앨리스(아오이 유우)는 캐스팅에 처음으로 합격한다)


이때 나는 입사시험을 정신없이 치르고 그냥 집으로 돌아갈 수 없어 이 영화를 봤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때 나도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았지만, 그냥 무엇이든 할 수밖에 없었던 마음이었던 것 같다.


모두에게 그런 순간이 한 번쯤은 오지 않겠는가? 나 자신이 준비가 되었는지 아닌지 확인할 시간도 없이 아무런 확신도 없이 절대로 놓쳐 버리면 안 될 것 같은 기회에. 미처 준비하지 못한 토슈즈 대신 종이컵 슈즈를 신고 용기를 내야 하는 순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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