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 첫 출근에 배부르랴?

직장은 처음입니다.

12월 1일, 첫 출근 당일까지만 해도 썩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무기력했던 삶에 금전적인 변화 말고도 다른 변화가 생길지 의심스러웠다.

‘똑같이 삶에 회의감을 느낀다면, 과연 나는 견딜 수 있을까.’
‘출근 전에 조금만 더 자유로운 시간을 확보했으면 좋았을 텐데.’

이런 생각들로, 그동안 바라왔던 소속감을 또다시 미루고 싶어졌다, 마음의 준비가 안 됐다는 핑계를 대면서.


엄마와 아빠는 내색하지 않았지만, 장녀인 내게 이전부터 나름의 기대를 하고 계셨다.

합격 연락이 온 후 두 분께 소식을 전했고 엄마는 지금을 발판 삼아 앞으로 열심히 일해보라고 말씀하셨다.

그동안 나이만 먹어가는 딸을 보며 얼마나 답답하셨을까. 열심히 살다가도 때마다 동굴 속으로 들어가던 자식을 보며, 앞날을 많이도 걱정하셨을 게 눈에 선하다.

반대로 아빠는 아쉬워하셨다.

“우리 딸, 능력도 좋은데…”

하지만 나는 아빠의 말이 딱히 섭섭하지 않았다.

내가 선택한 결정이었고, 무엇보다도 이제는 떳떳한 사람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었으니까.

나는 이곳에서 나만의 강점을 만들며 성장할 생각이다.


1차 면접을 본사에서 본 뒤, 2차 면접은 나를 정식으로 채용할지를 매니저님의 판단 아래 결정하는 일종의 시험이었다. 그 시험을 통과해야만 수습 기간을 가질 수 있다.

그동안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 과정을 거쳐 갔다고 했다. 첫날부터 직원분들이 “꼭 함께했으면 좋겠다”라고 말할 정도였으니, 짧은 기간 동안만 해도 네다섯 명은 지나간 듯했다.

첫날, 제품에 대한 설명을 듣고 매니저님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며 이분은 직장 상사로서 꽤 괜찮은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첫날부터 노트를 챙겨가며 설명을 적었고, 매일 제품에 대해 공부했다. 궁금한 점이 생기면 바로 여쭤봤고, 받은 피드백은 그대로 받아들여 적용하려고 노력했다. 누구보다 간절했기에 가능한 태도였다.

스스로도 열심히 한다고 생각하니 2차 면접도 통과하겠다는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다.

확실히 사람은 어느 정도의 어려움과 결핍을 겪어야 겸손을 배우고, 작은 것에도 감사할 줄 알게 되는 것 같다.

나 역시 철없던 20대 초반에는 그렇게까지 열심히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부끄러운 순간들이다.

부끄러움을 안다는 것은 내가 철들었다는 증거겠지.


좀 더 일찍 글을 쓰고 싶었다. 하지만 일과 학습을 반복하다 보니 도통 시간이 나질 않았다.
그나마 이제 조금 적응이 되어, 오랜만에 이렇게 다시 글을 쓰게 됐다.

시간이 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면세점의 특성상 한국인만 상대하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을 매일 만나다 보니, 영어 스피킹은 말 그대로 발등에 떨어진 불이었다.
듣는 것도, 읽는 것도 썩 잘하는 편은 아니지만 스피킹은 그보다 더 큰 문제였다.

외국인에 대한 막연한 울렁증과 언어 사용에 대한 부담이 남들보다 심한 편이라, 외국인 앞에만 서면 늘 소심해지고 긴장하게 된다. 그래서 나는 항상 ai툴을 사용해 미리 영어 대본을 만들고 수정하고, 외워서 출근했다.

제품 설명에 대한 피드백을 받으면 다시 대본을 수정했고, 더 간결한 문장으로 바꾸는 과정을 반복했다.

나만의 세일즈 스킬을 키우기 전에 우선 상품 설명을 제대로 할 수 있는 게 여전히 우선순위이다. 이런 과정 속에서 점차 나만의 스타일을 찾을 것이라고 생각.. 아니, 희망한다.

그렇게 하다 보니 나에게는 업무 외의 시간이 거의 남지 않았다. 지금도 여전히 외우고, 매일 새로운 문장을 배우고, 제품 설명을 다시 해보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쓰고 있다. 다른 것들을 할 여유는 솔직히 거의 없다.

모든 걸 한 번에 다 잘할 수는 없으니, 일단 이번 한 달은 업무에 집중하려고 한다.
영어에 조금이라도 익숙해지고, 상품 설명을 더 매끄럽게 하는 것이 목표다.

그리고 새해부터는, 그동안 미뤄두었던 것들을 하나씩 다시 시작하며 세일즈 스킬도 조금 더 키워볼 생각이다.


외국인 울렁증이 참 말썽이지만, 다양한 사람을 만나면서 매일 새롭고 재밌는 에피소드도 생긴다.

마치 주토피아의 닉과 같이 능글맞은 외국인 남성 손님. 상품을 추천함에 있어 내게 감사함을 연달아 전하던 외국인 여성. 산둥에서 왔다며 유난히 말이 많았던 중국인 손님 등 다양하다.

외국인이 올 때마다 여전히 긴장되고 솔직히 말하면, 미칠 것 같을 때도 있다. 그런데 한 번 길게 영어로 설명하고 나면 그다음부터는 조금 편해진다.

그러다 다음 날이 되면 또 리셋되어 소심해지고, 그런 순간들이 반복된다.

그래서 모든 직원들에게 이런 고민을 털어놓기도 했다. 다들 어떻게 영어로 설명하는지 듣고, 각자 어떻게 떳떳하게 영어를 구사하는지 들을 수 있었다.

이렇게 내가 도움을 요청할 때 경청해 주고, 좋은 말을 건네는 사람들과 함께 일하고 있다는 사실이 다행스럽다. 또 다른 곳에서도 나를 응원해 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느끼며, 요즘은 조금씩 자신감도 생기고 있다.

그래서 나는 다시 한번, 참 인복이 많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한다.


며칠간의 적응 기간을 지나, 2차 면접에 합격했다.

곧바로 3일간의 휴무가 주어졌다. 막상 쉬게 되자, 휴무에도 무언가를 더 해야 할 것 같은 압박감이 밀려왔다.
그 부담에 하루를 통째로 흘려보내기도 했다.

역시 나는 나에게 맞는 ‘적당함’을 지켜야 무너지지 않는 사람인 것 같다.

그래서 요즘은, 스스로를 조급하게 몰아붙이지 않기로 계속해서 되뇌고 있다.


무기력했던 삶에 금전적인 변화 말고도 다른 변화가 생길지 의심하던 나였는데,
확실히 직장이 주는 힘은 크다.

바쁘다 보니 무기력해질 틈조차 거의 없다.

물론 휴무일이 되면 그동안 쌓였던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와 압도당할 때도 있다. 그건 분명 조심해야 할 부분이다.


그래,
서두르다 보면 탈이 난다.

업무 초반에 배부를 수는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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