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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고기자리 Aug 25. 2023

나도 주로 아침에 친구들이랑 싸웠어

아침에 말 시키면 짜증 난답니다

게으르고, 즉흥적이고, 정리정돈 안되고- INTP의 기질은 육아와는 정말 상극입니다. 특히 신생아 육아와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다행히 시간은 흘러 이제 아이와 제법 말도 통하고, 그럭저럭 밤잠도 사람 살만하게는 잘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고비를 넘으니 또 다른 국면입니다. 저는 아이가 아주 어릴 때 체력적으로 극한을 체험하기 했지만, 정신적인 스트레스는 오히려 지금보다 덜하였습니다. (아이가 아닌 INTP 인간이 스트레스였지요..) 그러나 요새는 아이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습니다. 아이가 내 말을 안 듣기 때문입니다.


제 아이는 흔히들 말하는 예민한 아이의 범주에 속합니다. 짜증이 잦고, 낯선 환경을 경계하고, 잠도 잘 자지 않습니다. 뭐만 하면 싫어, 무서워 소리를 달고 삽니다. 특히 요즈음은 아침에 일어나서 한껏 짜증을 내며 우는 것이 습관 되어 힘이 듭니다. 며칠 전에도 좋게 좋게 달래다가 종국에는 폭발할 참이었습니다.


나 : 아니 잘 자고 일어나서 왜 저래. 하, 진짜 인내심의 한계가 온다.

인간 : 근데 나도 그랬어. 아침에 주로 친구들하고 싸웠어.

나 : 뭐?? 왜?

인간 : 아침엔 날 좀 내버려 두면 좋겠는데 자꾸 말 시키잖아.


INTP님들.. 아침이 왜 그리 싫은겁니까?! (출처 : 해커스토익 SNS)


아침에 자꾸 말 시키면 짜증이 난답니다. (그러니 친구가 많이 없지..) 여하간 본인이 예민한 종자라 아이가 잘 이해되는 모양이지요? 실은 저는 점점 힘에 부쳐가는 참인데, 아이와 INTP 인간은 코드가 퍽 통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말을 다 배우기 전까지 어린아이들에게는 울음이 가장 중요한 의사소통 수단일 겁니다. 본인이 싫은 것이 있을 때 주로 울고, 왜 그런지 잘 모를 때에도 울거나 떼를 씁니다. 그런데 INTP 인간은 '왜'라는 것에 곧잘 주목하지 않던가요. 상황을 종합적으로 인식하고, 흩어진 단서를 조합하여 원인을 찾아내는 일에도 아주 탁월합니다. 드디어 제가 '그놈의 연구!' 하며 치를 떨었던 INTP의 특장점이 제대로 발휘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내 새끼가 왜 우는지 엄마라면 다 알지


아이 키우는 분들이면 많이들 들어보셨을 말입니다. 그런데 저는 알다가도 모르겠을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물론 아이들 저마다 성향이 다르니 기르는 난이도 역시 천차만별일 것입니다. 제 아이는 모르긴 몰라도 수월한 편은 결코 아닌 것 같습니다. 항상 이 녀석이 왜 그러는지 파악하고, 불편한 것을 해소해 주기 위해 고군분투 중입니다. INTP 인간 덕분에 예민한 내 아이가 울고 떼쓰는 원인을 찾아내는 것이 매우 빠르게 잘 됩니다. 그러니 미리 대응할 수 있습니다. 패턴을 찾아내어 우리만의 대응 체계를 만들어 두기도 합니다. 저 같은 성향의 인간이 단독으로 양육하여서는 결코 잘하지 못했을 일입니다.  


INTP 인간이 부모 노릇을 잘할 수 있는 지점은 또 있습니다. INTP들은 사회의 통념과 관습을 벗어나 마이웨이로 살아가는 이들입니다. 반대로 저는 꽤나 고지식한 편인데, 아마도 이러한 차이로 인해, 앞으로 아이가 커나가며 교육관을 점점 정교화하게 될 때 많은 부침이 있을 것이라 예상됩니다. 그런데 이것이 꼭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아이가 돌잡이로 청진기를 잡았을 때의 일입니다.


나 : 청진기라니! 우리 00이 의사 되는 거야? 기분이 나쁘지 않은데?! 하하

INTP 인간 : 아냐, 의사는 진짜 별로 인 것 같아.

나 : 참나, 의사가 별로라는 사람이 다 있네.

INTP 인간 : 뭐가 좋아. 환자들 돌보기 힘들고. 그것도 서비스업이야. 노래를 잘 부르니 작곡가가 좋겠다.


 요새는 돌잡이상에 청진기를 제일 잡기 쉽게 놓더라고요?! (출처 : 예능프로그램 편스토랑 캡처)


의사는 진짜 별로 인 것 같아

남들이 선망하는 직업을 진짜 별로라 하다니 INTP 인간답습니다. 생각은 저마다 다를 테지만, 자식이 의사 된다 하면 이를 싫어할 부모가 몇이나 있을까요. (정말 부잣집에서는 싫어할지도...?!) 그런데 정말로 싫답니다. 누군가 "아유, 의사보다는 작곡가가 좋죠!" 했으면 속으로 가식이라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INTP 인간이라면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저와 함께 사는 INTP 인간은 아이가 늘 자유롭게, 틀에 갇히지 않고 자라나길 바라고, 이를 진심으로 응원해 줄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저는 좀 다릅니다. 학교에 가면 공부는 잘했으면 하고, 작곡가가 되겠다고 하면 말리지는 않을 것이나, 기왕 돌잡이로 청진기를 잡았으니 진짜 의사가 된다면 더 기쁘겠습니다. 저와 함께 사는 INTP 인간이 덩달아 자식이 의사 되길 바랐다면 아이가 커갈수록 잘못된 욕심을 부리게 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는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로 아이에게 '공부 안 해도 돼, 훌륭한 사람 안되어도 돼' 할 수 있는 인간입니다. 우리 부부에게는 공동 양육자로서 균형이라는 좋은 무기가 생긴 것 같습니다. 아이가 너무 저 하고 싶은 대로만 하려고 하면 제가 잡아줄 수 있을 겁니다. 본인의 개성을 잘 펼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INTP 인간이 도와줄 겁니다.  


Tip

이처럼 INTP는 자기 아이를 잘 파악합니다. 그러니 아이를 기르는 분들이라면 INTP가 주도적으로 아이를 파악하고 아이의 행동과 반응을 예측할 수 있게 맡겨보세요. INTP 인간은 분명 아이의 개성과 성향을 존중하고, 좋은 기질을 잘 발현시켜 줄 수 있는 양육자입니다.


경고

아이가 규칙을 어기고 자유분방하게 구는 것에 INTP 인간이 부채질을 할지도 모릅니다. 예) 학교 가기 싫으면 안 가도 돼~


저와 함께 사는 INTP 인간과 아이는 요사이 대단히 돈독하게 지냅니다. 엄마인 저 없이 둘이서 곧잘 외출도 하고 있습니다. 하루는 외출을 다녀오더니 INTP 인간이 제게 그러더군요. "이렇게 말 통할 때 육아휴직 쓸걸 그랬어. " 육아휴직 쓰고 산후우울증에 걸려 잠만 잤던 사람의 말입니다. (매거진 7화) 내가 그때 얼마나 힘들었는데... 이걸 죽여요 살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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