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다이트 운동
‘작곡’이라는 단어의 의미가 바뀔 것 같다.
지금까지는 곡을 만드는 것은 곧 창작을 의미했지만, 이제는 직접 창작하지 않고도 AI를 이용해 곡을 만들 수 있나 보다. 아직까지는 AI를 이용해 만든 것은 곡을 만든 것이 아니라는 의견이 상당한 것 같지만, AI 생성곡이 많아지면 이런 반발도 힘을 잃을 것으로 보인다.
창작은 무엇인가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는 것도, 작곡의 의의에 대해 따져보는 것도 좋지만, 기술의 발전을 생각하면 누구나 양질의 곡을 생산할 수 있는 시대를 대비하는 편이 나을 수도. 청자 입장에서는 그것이 인간의 창작물이든 AI의 생성물이든, 듣기 좋으면 그만일 테니.
기술의 발전이 가져온 곡 생산 파워의 재분배.
‘이게 무슨 작곡이냐’ 반응은 과거에도 있었다. 리듬이며 멜로디며 이미 만들어진 샘플을 이것저것 잘라 붙여 사용할 수 있는 편리한 시퀀서가 등장했을 때, (나를 포함하여) 적잖은 이들이 ‘저렇게 만드는 것은 창작이 아니고, 저런 행위는 작곡이 아니다‘라고 반발했다. 리듬이며 사운드며 편곡은 잘라 붙이기로 해결하고 멜로디만 얼추 붙여 넣는 것은 편집이지 온전한 의미의 작곡이 아니라 생각했다. 하지만 결과는, 반발하던 이들의 판정패.
시퀀서에서 수작업으로 하던 샘플 잘라 붙이기가 명령문 여러 줄로 간편하게 해결된다고 하니, 이제는 시퀀서를 사용할 필요조차 없는 것 같으니, 그야말로 완패의 시기가 다가오는가 보다.
19세기 초의 러다이트 운동이
일부 계급의 생존에 대한 위기감에서 시작된 것이라면, 가까운 미래의 러다이트 운동은 보다 다양한 계층에서 인간 고유의 권한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가치들을 두고 진행될 것 같다. 사실, 이미 진행 중인 것 같기도.
어떤 결과물까지 이르게 된 서사에 대한 공감을 상쇄하는 편리. 훌륭한 결과물을 효율적으로 얻을 수 있게 만드는 유래없는 편리를 맛본 인간이 과연 어떤 선택을 할는지.
당시 인류 최고의 (바둑) 기사였던 이세돌 씨를 꺾은 알파고. 각 분야의 알파고들은 그 사이 더 발전했고, 지금도 발전 중일 것. 인간 고유의 행위라 믿어왔던 것들도 프로그래밍으로 환원 후 명령하는 문장으로 대체할 수 있는 시대, 단 돈 몇 만 원이면 이런 기능을 사용할 수 있는 시대가 왔음을 증명하며.
감정적 반발 대신 좋아하는 문장 하나를 떠올린다.
“계란은 이미 깨졌으니, 우리 이것으로 맛있는 오믈렛이나 만들자.”
ChatGPT를 자료 취합용으로 사용하되,
(나의 문체를 해칠 수 있으므로) 작성 글의 검수나 퇴고를 차단하는 중인 것을 보면, 여하튼 나도 아직은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AI의 대척점에 선 태도를 취하고 있지만 비슷한 구조와 문체인, 그 자체로 아이러니인 글들이 달갑지 않은 것을 보면, 나는 아직 덜 넘어간 것이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