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없는 정의는 폭력
새벽 배송.
우선, 나는 새벽 배송이 없어도 조금의 불편을 느끼지 않을 것 같다. 아니, 오히려 새벽 배송이 불편했다. 급할 것 없는 나로서는, 굳이 새벽에 배송받는 것이 괜히 마음에 걸렸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한때 명절에 배송받던 것과 비슷한 미안함을 느낀다.
내가 급하지 않다고 하여 따라서 모두가 새벽 배송의 효용을 느끼지 못할 것은 아니다. 나와 다른 상황인 누군가에게는 새벽 배송이 단순한 편리 이상의 필요일 수 있을 것. 나아가, 배송을 하는 기사님들께 눈을 돌리면, 생업의 문제가 되기도 한다.
왜 이런 이야기까지 나올 지경이 됐는지 짐작은 하고 있다. 근로자의 건강을 해치지 않는 적정선을 ‘알아서’ 지키면 좋겠지만, 적정선이 지켜지도록 마련한 제도적 장치가 작동하면 좋겠지만, 관련 기업의 지난 행적을 살펴보면 근로자를 시장 장악 및 이익 증대라는 목표를 수행하는 부속품 정도로 여기는 듯 보인다. 스스로 제어하는 것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태로 보인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윤 추구는 지향해야 할 것이라지만, 그것이 사회적 가치를 훼손하여 공공의 안녕을 해칠 위험이 있거나 근로 환경의 전반적 후퇴를 야기할 위험이 있을 때, 어떤 이윤 추구 행위는 제한할 수 있을 것. 자정작용을 기대할 수 없는 상태라면, 보다 강력한 제한을 둘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하여는 충분히 이해한다.
다만 생각해 볼 것은, 시장 참여자들의 자유를 제한하는 특수하고 강력한 조치에 대하여 언급하기 전에, 일반적인 수준의 해결 방안에 대하여 충분히 논의했느냐는 것. 자정기능이 멈춘 것으로 보인다는 이유로 대뜸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아니냐는 것.
그래서, 나의 질문은 이러하다.
“뜻은 알겠는데, 말로 해야 할 것을 왜 때리려고 그러나요. 이건 지키기 위한 정당방위가 아니라 악감정에서 비롯한 공격 아닌가요? 자기 집단이 추구하는 어떤 가치를 지킨다는 이유로 다른 가치는 너무 쉽게 짓밟는 거 아닌가요?“
“자신의 자유를 지키고자 하는 사람은, 심지어 적의 자유마저도 억압당하지 않도록 보호해야 한다.”
- 토마스 페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