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의 어느 날.
몇 팀이 월에 얼마씩 내며 사용하는 합주실이 있었다. 합주실 사장님이 음악성으로 제법 인정받는 대선배 밴드의 멤버이시고, 합주하는 팀들도 다들 활발히 활동하는 팀들이라 서로 가까워, 일반적인 합주실과는 달리 꼭 우리 연습실 같던 곳.
안정감이 느껴지던 그곳의 분위기는 사장 형께서 기어이 이민을 결정하시며 잠시 흔들렸는데, 다행히 아는 형님의 여자친구이며 이미 몇 번 뵌 적 있는 누나가 인수하신다고 하여 금세 다시 안정감을 느낄 수 있겠다 생각했다.
착각이었다.
각자 다음 주 합주 일정을 화이트보드에 써 두면 되던 것은 새로운 사장님께 전화나 문자로 일정을 알려 픽스하는 것으로 바뀌었고, 광고를 보고 연락하는 이들에게 시간당 얼마를 받 고 대여해 주기 시작하여 그곳에 장비를 두고 다니기 어려워졌고, 좁은 복도에 놓인 낡은 소파에 앉아 대수롭지 않은 이야기를 나누며 보내던 편안한 시간도 사라졌다. 아쉽지만, 그동안 누리던 편리가 사라졌다. 그리고, 편리가 사라진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진짜 불편도 생겼다.
어디에 말하기 힘든 불편함은, 새로운 사장님을 볼 때마다 두근거리는 내 가슴. 아는 형님의 여자친구이며, 내 취향과는 거리가 먼 분이고, 예전에 몇 번 뵐 때에도 이성으로 느껴지지 않던 사람이었는데, 덜컥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합주실에서 볼 때마다 두근거리더니, 이내 집에서도, 작업실에서도 두근거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그분을 좋아하지 않는 것 같은데 덜컥 심장이 두근거리니 ‘사랑은 가슴이 알려주는 것인가’와 같은 유치한 생각도 들었다.
벙어리 냉가슴 앓듯 참고 참다가 결국 친한 친구에게 토해내듯 털어놓았다. ‘미친놈’ 소리 들을 것을 알았지만, 그래도 누구에게든 털어놓고 싶었다. 나의 고민을 들은 친구는 ‘미친놈!’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나의 여성 취향을 잘 아는 친구는 함께 이상해했다. 내가 그분에게 반했다는 것은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는다는 것. 너무 이상한 얘기라는 것.
그러고 보니 정말 이상했다.
많이 이상했다.
며칠 뒤 심장 검사를 받았고, 24시간 홀터 검사에서 이상 증상을 발견하여 약 처방을 받았으며, 얼마 즈음 약을 먹고 심장이 두근거리는 증상은 사라졌다. 평소 운동을 전혀 하지 않지만 합주실 갈 때에는 걷기도 하고 계단도 오르내린 탓에 합주실에서 증상이 심하게 나타났던 것. 이후에는 나의 착각 탓에 두근거릴 때마다 그분을 떠올리며 반했다고 오해한 것. 병 때문에 고백할 뻔...
누군가에게서 후광이 보인다면 안과, 두근거림을 느낀다면 심장내과 방문도 고려할 것.
섣부른 고백은 금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