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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투 Jul 07. 2021

상량이시아~

살면서 뿌듯했던 일

한 때 별명이 ‘깡패’ 인적이 있었다.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했는데 나 말고 한 명의 여자 알바 생이 더 있었다. 긴 생머리에 도대체 무슨 샴푸를 쓰는지 머리에서 하루 종일 장미 향기가 나는 그런 친구. 말도 조근조근 예쁘게 하고 자태는 또 얼마나 고운지. 중간에 간식으로 빵을 줬는데, 나는 그냥 들고 몇 입 먹으면 끝나는데 그녀는 손으로 조금씩 뜯어 우아하게 먹었다. 무거운 짐도 번쩍번쩍 드는 나에 비해 여리여리한 그녀는 항상 다른 오빠들이 도와주고 있었다. 오빠들의 장난도 웃으며 잘 받아주었다. 나도 스스럼없이 웃고 떠들고 잘 놀지만 가끔 이상한(성적인) 농담을 하면 정색하고 받아주지 않았다. 심할 때는 눈에서 레이저를 발사하며 바로 응징! 옷차림이며 행동거지며 모든 게 그녀와 비교되었는데 그런 내가 무섭다고 ‘깡패’라고 불렀다. 그녀는 ‘여신’

그래서인지 스스로 애교도 없고 여성스럽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남편도 나의 터프한 매력에 반했다나? 연애할 때 남편은 사랑한다, 좋아한다, 표현을 참 잘했는데 나는 “ 네.. 저도요..”라고 겨우 답할 정도로 그런 말이 어색했다.

하지만 난 애교가 없는 게 아니었다.


결혼 몇 년 후 남편이 상해로 주재원 발령이 났다. 상해는 거리가 가까워 자주 오갈 수 있고 나도 여기서 하는 일이 있으니 떨어져 지내기로 했다. 그렇게 혼자 상해로 간 남편은 두 달 후에 다시 와서 도저히 혼자 못 살겠단다. 아무리 일이 재미있고 좋아도 남편을 다시 혼자 보낼 수 없었다. 그런데 그렇게 애걸복걸해서 날 데려간 남편은 “니하오”도 못하는 나를 상해 집에 남겨두고 이틀 후 바로 출장을 떠나버렸다. 컴컴한 중국집에(첫 집은 동네도, 실내 인테리어도 전체적으로 어두웠다) 홀로 남겨져 아파트 아래 편의점에서 파는 '쫑즈'라는 연잎으로 싼 주먹밥 같은 것을 사 먹으며 2주를 버텼다. “내 이 인간을!!!”


그래도 한인교회에 나가며 차츰 사람들도 사귀고 정보도 얻었다. 일단 남편이 아무 생각 없이 회사 근처에 구했던 집에서 외국인들이 거주하는 깨끗하고 편의 시설도 많은 곳으로 이사했다. 발품 팔아가며 안 되는 중국어로 가구도 내 취향대로 고르고 살림살이도 채워 넣으며 점점 사람 사는 형태를 갖춰갔다. 정말 내가 안 갔으면 남편이 거지꼴로 살았을 것 같다. 어느 정도 생활이 안정된 후 한국에 다니러 왔는데 만날 사람도 많고 오랜만에 한국 음식도 실컷 먹으니 너무 좋아서 점점 돌아가는 날이 미뤄졌다. 어쩌다 보니 두 달을 훌쩍 넘기고 상해 집에 돌아갔는데 오랫동안 집이 비어서 전기세를 안 냈더니 전기가 끊겨있었다. 남편은 출장 다니느라 바빠서 집이 어떤 꼴인지 몰랐다나.. 말인지 막걸린 지.. 한국에선 두 달 정도 전기료 안 낸다고 바로 끊어버리진 않는 것 같던데... 에이.. 흉악한 놈들 같으니라고..


상해는 겨울에도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는 날이 거의 없이 따뜻하다. 하지만 공기가 습해서 조금만 있으면 추위가 뼛속까지 스며든다. 안 겪어 본 사람은 모르는 전혀 다른 차원의 추위다. 그런데 법적으로 집에 난방시설을 못하게 되어있다. 한국 사람들은 집을 사서 불법으로 보일러를 놓거나 아니면 바닥에 ‘동판’이라고 하는 전기 패널을 깔고, 에어컨 온도를 높여 따뜻한 바람을 틀어놓고 겨울을 난다. 그러니 전기가 안 들어오면 그냥 불편한 정도가 아니라 얼어 죽을 판이다. 당장 한국으로 치면 한전 같은 곳에 전화 걸어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전기를 연결해 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밀린 돈을 내기 전까진 절대 불가능하단다. 그때가 주말이어서 돈을 내고 싶어도 낼 수가 없었다.

나는 한국 사람인데 아파서 한국 갔다 왔다.(당시 중국은 한국 사람들에게 호의적이었다) 상해에 산지 얼마 안 돼서 이렇게 금방 전기가 끊기는지 몰랐다. 이번만 봐주면 다시는 전기요금을 밀리지 않겠다.. 대충 이런 내용으로 통화했다. 그래도 규칙이라 안 된다며 꽤 강경했다.



그 순간 머리를 스치는 한 문장... 중국어 수업시간에 주워들은 ㅋㅋㅋ



‘商量一下(상량이시아)’

‘좀 봐 달라, 사정을 헤아려 달라’ 그런 뜻이다.


“先生, 商量一下!!(시앤셩 상량이시아)”, “선생님, 사정 좀 봐주세요!!”

“不可移!!(부커이)”, “안돼”


“先生, 商量一下!!”

“不可移!!”


“先生, 商量一下!!”

“不可移!!”


“先生, 商量一下!!”

“不可移!!”


봐달라, 안된다 봐달라, 안된다 계속 옥신각신했다.

안 되겠는지 나는 점점 목소리에 콧소리가 섞이기 시작했다. 최대한 불쌍하게 내 인생 최고의 애교를 단전에서부터 끌어올려 전화통에 쏟아냈다. 온몸으로 교태까지 부리고 있었다. 내 참... 10분 이상 ‘상량이시아’만 외쳤던 거 같다.

결국 그 직원은 나의 처절한 부탁을 차마 끝까지 거절 못하고 전기를 연결해줬다.


“오~신이시여~ 이 어려운 걸 정말 제가 해냈단 말입니까?!!!”


중국어는 워낙 지역별로 차이가 많아서 내가 표준어를 할 줄 알아도 상대가 사투리를 쓰면 못 알아듣는 게 태반이고 표정과 제스처를 볼 수 없는 전화 통화는 특히 더 힘들다. 게다가 발음이 같아도 성조가 다르면 전혀 다른 뜻이 된다.

그 낯선 중국 땅에서 잘하지도 못하는 중국어로 그것도 무려 공. 공. 기. 관. 에 전화해서 전기를 다시 들어오게 한 나 자신이 믿어지지 않았다. 아쉬운 소리 못해서 물건 값도 못 깎는 내가 연신 굽신 거려 가며 평생 부리지도 않던 애교를 장착하고 콧소리를 내가며 말이다.


지금은 중국어를 안 쓴 지 너무 오래돼서 거의 다 잊어버렸지만 그때 얼마나 간 쓸게 다 빼줄 것처럼 수십 번 외쳤던지 그 말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시앤셩~ 상량이시아~~ 상량이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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