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번을 봐도 볼 때마다 눈물 콧물 쏟는 드라마.
들어도, 들어도 또 듣고 싶은 음악.
먹어도, 먹어도 결국 다시 찾게 되는 집 밥.
개인의 취향이나 인생 스토리에 따라 조금씩 다르겠지만 소울 푸드처럼 영혼을 토닥여주는 드라마나 음악이 있다.
내게도 인생 드라마가 몇 편 있는데, 그중 최고는 단연 ‘응답하라 1988’
드라마의 완성도나 작품성 그런 건 모르겠고, 그냥 볼 때마다 너무 웃기고 감동으로 눈물 콧물 한 바가지다.
드라마의 배경이 나 중, 고등학교 때쯤 된다. 동네 환경도 어릴 적 살던 동네와 얼추 비슷하다.
그런 소품을 어떻게 구했는지 신기할 정도로 완벽에 가깝게 재현 한 연출팀의 디테일에 혀를 내두를 정도다.
정봉이네처럼 그 시절 우리 동네에도 복권에 당첨된 사람이 있었다. 물론 그 사람은 당첨되자마자 바로 동네를 떴지만... 서로 반찬을 나눠 먹는 일이나, 연탄가스, 경양식집, 별밤지기, 운동화 메이커 등
“맞아! 그때 정말 저랬는데” 하며 추억이 방울방울 피어난다.
내가 이 드라마를 보고 보고 또 봐도 볼 때마다 눈물범벅인 건 이런 사실적인 재현 때문만은 아니다.
그때는 누가 볼까 감추고 감추었던 초라한 내 가족과 집과, 나의 하루하루가 녹아있는 그 시절을 너무 아름답게 그려줬기 때문이다. 내가 살아온 시간이, 우리가 겪어온 삶이 모두 의미 있고 소중했다고 말해주는 것 같아서...
시간은 기어코 흐른다.
모든 것은 기어코 지나가버리고,
기어코 나이 들어간다.
청춘이 아름다운 이유는
아마도 그 때문일 것이다.
찰나의 순간을 눈부시게 반짝거리고는
다시 돌아올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눈물겹도록 푸르던 시절
나에게도 그런 청춘이 있었다.
응답하라 1988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고 사랑할 땐 사랑이 보이지 않았네 ‘라는 이상은의 노래 가사처럼 드라마를 통해
그때는 의미를 모르고 겪어야만 했던 일들이 이해되고 감사함으로까지 진화한다.
덕선이의 남편 찾기라는 메인 테마가 있긴 하지만 주연, 조연 너무 확실하게 선 그어 나누지도 않고,
각자의 스토리가 있어서 좋다.
전적으로 내 개인적 의견이지만 오히려 이 드라마의 옥에 티라면 메인 테마, 덕선이의 남편 찾기다.
왜 덕선이는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을 찾지 않고 선택되기만을 기다리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어쨌든, 평범하지만 특별한 ’ 응팔‘ 식구들의 삶을 통해 위로받고 다시 살아갈 힘이 난다.
그래서 마음이 우울하거나 심란하면 드라마를 본다.
너무 힘들어 기도조차 나오지 않고 아무리 훌륭한 명언도 들리지 않을 때,
드라마에 집중하다 보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안 좋은 생각도 흩어지고, 한참을 울고 웃고 하다 보면 머리가 좀 비워진다.
드라마에 나오는 여러 삶의 모습을 보면서 ’사는 게 다 그렇지, 나만 힘든 게 아니야 나보다 더 힘든 삶도 얼마나 많은데...’ 스스로 위로하며 일단 머릿속에 큰 불을 끈다.
물론 다른 사람의 고난을 보고 나의 불행을 위안 삼는 건 한계가 있고 오래가지도 않는다.
유기농 식단의 건강한 밥상도 필요하지만 가끔 달콤한 초콜릿이 영혼의 샤워를 시켜주듯,
드라마를 보는 잠시의 착각일지라도 평생 조연인 것 같았던 평범한 나도 ’ 덕선‘이처럼 드라마에선 주인공이 된다.
그리고 주인공답게 털고 일어나 꾸역꾸역 잘 살아간다.
드라마의 대사처럼 가끔은 착각해야 행복하다.
그래도 가끔은 착각해도 좋다.
엄마를 행복한 요리왕으로 착각하게 만들 수 있다면,
지지리 맛없는 도시락 정도는 투정 없이 먹어 줘도 그만이다.
행복한 착각에 굳이 성급한 진실을 끼얹을 필요는 없다.
가끔은 착각해야 행복하다.
응답하라 19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