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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치울링 Nov 30. 2022

동해바다, 원픽 고성

강릉, 속초 말고 고성 천진해변.

돈은 없고, 철도 없고 어리기만 하던 그땐 마흔이 되면 사고 싶은건 고민없이 살 수 있을줄 알았다. 그때의 내 생각대로라면 캠핑카가 너무 갖고 싶은 지금 척하고 살 수 있어야 하지만, 이 나이가 되어보니 알겠다. 오히려 나이들수록 취미를, 또 힐링을 핑계삼아 돈을 쓰는 일이 아주아주 어려운 일임을. 내 눈에만 이렇게 잘 보이는건지 알 수 없지만 고속도로에서도 일반도로에서도 휴게소에서도 눈에 띄는 캠핑카들.  

어디도 자유롭게 갈 수 없던 코로나 시절 밤마다 캠핑카를 타고 여기저기 다니는 유튜버들을 찾아보다 잠이 들었다. 그때부터였다. 캠핑카에 대한 로망을 갖게 된건. 로망을 현실로 바꿔보고자 캠핑카 박람회도 몇 번 가보았으나 수 천 만원부터 많게는 몇 억 원을 호가하는 가격을 보고는 실물을 영접해본게 어디냐며 그것만으로 만족하며 돌아왔다. 그리고 밤에는 또 새로운 유튜버의 신상 캠핑카를 검색했다. 개미지옥이 따로 없다.


더 이상 볼게 없을 정도가 되자 유튜브도 그런 내맘을 알아차렸는지, 나를 위한 새로운 알고리즘 영상들을 내놓았다. 그것은 바로 차박. 마침 차박에 더할 나위 없이 적합한 카니발이 우리 가족 패밀리카인 것이 참으로 다행이다. 그때부터 나와 남편은 차박 관련 유튜브를 섭렵해가며 우리의 니발이를 차박에 모셔가기 위해 세팅하기 시작했다.  


 


먼저 평탄화 작업을 위해 2열을 최대한 앞으로 당겨야 했다. 카센터의 공임이 두려웠던 남편은 인터넷에서 레일을 사고, 유튜브에서 배운대로 직접 설치했다. 그리고 우린 신혼 때 살림 장만 하듯이 차박 매트를 고르고, 갬성 캠핑을 위한 조명과 가렌다를 사고, 역시 갬성을 충족시킬 우드 뚜껑이 있는 캠핑박스도 샀다.  


택배로 용품들이 하나, 둘 배달될때마다 마음이 출렁였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설렘이다.


“어디로 갈까?”


“그래도 우리에게 익숙한 강원도 쪽이 좋지 않을까?”


“강릉?”


“속초?”


“양양?”


생각만으로도 우리는 이미 니발이 안에 매트 깔고, 이불 덮고 누워있었다.


“첫 차박인데, 그래도 가장 최적의 장소를 찾아보자.”


“그래, 화장실과 편의점이 가까우면서도 너무 사람들이 많이 다니지 않았으면 좋겠다.”


고민 끝에도 답을 내지 못한 남편과 나는 무려 사전답사를 결정했다.


 


마침 남편과 내가 함께 쉬는 금요일 이른 새벽, 우리는 설레는 마음을 안고 춘천-양양 고속도로에 올랐다. 우리의 사전 답사 계획은 강릉에서 양양을 거쳐 속초까지 해안도로를 따라가며 화장실과 편의점을 갖추고 있으면서 인적도 뜸한 최고의 차박지를 찾는 것이었다. 그렇게 강릉에서 시작된 우리의 차박지 탐색 여정은 속초까지 이어졌다. 여기도 저기도 다 좋아보이는게 그것이 문제였다. 맘을 정하지 못한 채 계속 더 위로 올라가다가 우리는 마침내 고성 천진해변에 닿았다.  


 


그곳에서 우리는 드디어 최상의 원픽 차박지를 찾았다. 걸어서 5분내외에 세 곳의 대기업 편의점, 85점 정도 청결도의 화장실, 그리고 무엇보다 오션뷰의 주차장소가 널린데 비해 인적은 뜸했다. 우리는 천진해변을 우리의 첫 차박지로 정하고 찜마크를 남기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 주 금요일 오후, 직장을 조퇴한 우리는 갬성 가득 용품들을 싣고 천진해변으로 향했다. 트렁크를 열고 앉아 바다멍을 할 수 있는 최고의 자리를 찾기 위해 우리는 여기에 주차했다, 저기에 주차했다를 반복했다. 자리를 잡고 마침내 트렁크를 열고 유튜브에서 익히 본대로 용품들을 정리하고, 가랜다를 걸고, 조명을 켰다.  


“으..이거지.”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편의점에서 사온 얼음컵에 탄산수와 과일소주를 넣어 만든 ‘흉내만 하이볼’을 한 모금씩 삼킬때마다 탄성이 나왔다.


캄캄한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무리를 보고 있자니 내가 무슨 걱정이 있나? 싶다. 취기로 발그레해진 볼의 열기를 감싸며 모래밭도 맨발로 걸어본다.  


하이볼이 준 열기때문인지, 아직 차지 않은 날씨덕인지 모르지만 나를 감싸는 이불이 너무 포근하다. 언제 잠들었는지도 모르게 그렇게 잠들어 밤새 한번도 깨지 않았다.


“우와.”


남편의 탄성과 얼굴에 부딪히는 시원한 바람에 눈을 떴더니 남편이 뒷트렁크를 열고 일출을 폰에 담고 있다. 눈을 겨우 뜨고 바라본 바다 저 너머로 둥실 태양이 떠오르고 있다.


강원도 동해안에 놀러와 굳이 추가비용을 지불하고 오션뷰를 선택했던 호텔에서도 마주하지 않았던 일출이다. 왠지 값없이 얻은 것 같아 만족감이 더했다. 남편과 한참을 바라보다 다시 누워 어느새 스스르 다시 잠이들었나보다. 눈을 떠보니 어느덧 10시. 주섬주섬 일어나 바다를 바라보며 라면을 끓인다. 원래도 맛있는 라면을 바다뷰와 함께라니, 더할 나위없이 만족스럽다.


 


낮이 되니 사람도 늘고 귀여운 강아지도, 아이들도 많아진다. 평화로운 마음으로 바라보는 세상과 사람들, 동물들은 모두 그림이다.  


그냥 앉아 있어도, 누워있어도, 모래밭을 걸어도 힐링 한사발이다.


시간도 잊고 그냥저냥 더 있고프지만, 아빠 엄마의 부재에 신나서 폰과 물아일체가 될 아들들을 떠올리며 짐을 정리했다.


 


‘다시 올게, 곧.’


 


아쉬움을 남기고 다음의 기대를 안은 채 나의 첫 차박지 동해바다 천진에게 인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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