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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경노 Feb 27. 2022

육아 인수인계

안 먹는 아이를 키운다는 것.

인터넷을 조금만 찾아봐도 밥 안 먹는 아이에 대한 많은 글 들을 너무나 쉽게 볼 수 있다.

어쩌면 가장 날카롭고 가장 극명하게 갈리는 의견들을 볼 수 있는 주제.


안 먹는 아이.


그  험난한 숙제를 극복한 이야기들을 읽다 보면 결론은 딱 한 가지로 귀결된다.


‘엄마의 인내’


나의 결론에 오류가 있을 수 있으나 바꿀 생각은 없다.

사람들 앞에서 아이의 밥을 먹일 때마다 듣던 각종 잔소리는 결국 엄마의 몫이었다.


엄마의 육아 성적표라고 할 수 있는 영유아 검진 결과표.

그래프에 선명하게 점으로 찍혀 있는 나의 아이의 위치.

나의 힘듦을 토로하자 친구는 그런 이야기를 했었다.

“애들도 태어나자마자 평가를 받는 거야?”

하지만, 어쩐지 나는 아이가 아닌 엄마의 육아 능력을 평가받는 기분이었다.

물론 좋은 의미의 제도라고 확신한다.

위험한 상황에 노출되어 있는 아이들을 구제할 수 있고, 건강한 아이의 발육을 위해 전문적인 지식을 얻을 수도 있다.

반대로 5분도 되지 않는 검사 시간, 아토피 제품을 홍보하는 의사, 부모의 사정 따윈 모르고 더 노력하라고 혼내는 의사…

쓸데없지만 추후 어린이집에 가야 할 아이를 위해 꼭 해야만 하는 절차로도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제도의 폐해는 어디든 존재하며 거기서 무엇을 얻는지는 부모의 몫이다.

어쨌든 결론적으로 나는 진료실의 문을 열고 나오면서 웃을 수 없는 엄마였다.


조리원에서 집으로 온 뒤, 절반으로 줄어드는 수유량에 가뜩이나 모자란 잠도 버리고 방법을 찾던 시간.

숨 가쁘게 빨아들이다가도 반도 먹지 않고 뱉어내는 아이.

당시에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좋아하는 분유 찾기를 시작으로 추후엔 2배 이상 비싼 특수 분유를 먹이게 되는 분유 찾기를 필두로 배앓이라는 단어를 쫓아 젖병 및 젖꼭지 교체 , 영양제 구매, 베이비 마사지 공부, 수유 텀에 대한 공부, 아기 체육관부터 베이비 수영까지… 모두 처참하게 실패했다.

걱정이 점점 집착으로 변질되는 나를 보며, 남편도 친정엄마도 언제 가는 먹을 거라고, 이유식 시작하면 좋아진다고, 아이가 커서 활동량이 많아지면 괜찮아진다며 마음을 비우라고 했다.

지병으로 인한 복용 약물 때문에 초유조차 먹이지 못해서 그런가?’에서 시작한 생각은 나의 엄마 자질을 의심하게 했고 끝내는 아이가 미워지게 했다.


분유에서 시작한 아이 밥에 대한 나의 집착은 광적 집착 단계였던 이유식 단계를 거치고 유아식에 이르러 소멸됐다.

분유는 안 먹어도 이유식은 잘 먹을 거라는 기대는 처절하게 박살 났다.

‘박살’이라는 표현이 딱 어울릴 만한 집착이었다.


나는 임신 중에 책에서 봤던 자기 주도 이유식에 로망이 있었다.

아이가 어지르는 것에 대해 관대한 엄마, 얼마나 먹느냐가 아닌 아이가 오늘은 스스로 얼마나 기쁘게 먹는가를 생각하는 현명한 엄마.

아이와 마주 보고 앉아 각자의 밥을 먹으며 아이의 밥에 대해 한껏 여유로울 수 있는 식탁의 풍경을 꿈꿨다.


분유부터 시작된 밥에 대한 나의 초조함이 그것을 가능하게 할리 없었다.

밥 안 먹는 아이에 대한 글이 가득한 그 카페를 보며 오락가락하며 극심한 온도차를 보이다 결국 내 손바닥만 한 아이의 등짝을 때리는 나를 발견하게 되던 날.

나는 태어나서 가장 큰 수치스러움을 느꼈다.

퇴근하고 온 남편을 붙잡고 내가 드디어 미쳐버린 건가 하고 아이를 때린 손을 떨며 울었다.


무엇이 맞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어떤 가치관을 가져야 하는지 말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이런 고통을 느끼고 있는 그 누군가가 있다면 엄마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세상이 뒤집어질만한 엄청난 결과는 없으니

노력하되, 너무 애쓰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을 뿐…



‘어머니~더 노력하셔야 해요.’

얄미운 말을 내뱉던 의사를 한 대 때려주고 싶었던  순간이 있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남편에게 “지금 나한테 노력을 더하라고?” 하며 화를 내던 순간이 있었다.

수도 없이 버려지던 아이의 밥을 보며 싱크대에 서는 게 두렵고 아이의 식사 시간이 다가오는 게 무서웠던 순간이 있었다.


그 사이에, 아이는 착실하게 뒤집고, 앉고, 서고… 10개월 차에는 걷기 시작했다.

엄마는 한없이 보호자로서의 본인 자격을 의심하며 흔들릴 때, 아이는 착실하게 성장을 했다.

본인의 나무 의자를 번쩍 들고 다니고, 의사표현도 확실하게 할 줄 알고, 가끔 엄마의 기분도 물어봐줄 수 있는

말랐지만 힘이 세고, 공감 능력이 뛰어난 감성적인 아이로 잘 자라고 있다.


5세 기준, 마지막 영유아 검진 결과표에 여전히 아이의 몸무게는 하위 20프로를 기록하고 있다.

며칠 전에 코감기가 있어 내원했다가 항생제 처방을 위해 몸무게를 측정하고 우리 부부는 드디어 12kg를 넘었다며 즐거워했다.

듣고 있던 간호사가 의아한 표정을 지을만하다.


아이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적당히 섞어 차리기도 하고

하루는 유기농 재료로 만든 음식을 먹고, 다음날은 인스턴트 음식을 주기도 하고

내가 만사가 귀찮은 날은 빵과 우유나 간단한 수프를 주기도 한다.


날마다 정성 가득한 음식을 주지는 못해도 아주 가끔 뱉지 않고 씹어 넘긴 고기, 절대 먹지 않을 거 같았던 과일을 먹었을 때

있는 힘껏 웃는 얼굴로 환호를 주는 엄마가 되었다.


나는 여전히 쿨한 표정으로 본인 의자에 바르게 앉아 스스로 감사한 마음으로 기쁘게 먹을 만큼만 먹으라고 해놓고

아이가 다 먹었다고 하면 너무 안 먹었다고 딱 세 숟가락만 더 먹자고, 세 숟가락 다 먹으면 아이스크림을 주겠다고 하는 잘못된 엄마지만.

남아 있는 아이의 밥그릇을 보며 나의 불안함을 감추고 짐짓 의연한 척해본다.


‘언젠가 잘 먹겠지!’

나의 불안함을 감추는 주문 같은 말.


방학 내 너무 안 먹는 나한테 할머니는 “밥 안 먹을 거면 너네 집에 가!”하며 내복 바람으로 나를 쫓아낸 적이 있는데

그때 할머니를 괴롭혔던 ‘벌’이라고 생각하며.

심호흡 한번 하고 주문을 외며 아이의 식판을 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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