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교사와 교과서 사이의 사투
열여섯 살, 나는 세상과 홀로 마주 섰다.
마산고등학교 진학은 내게 기회의 문이었지만, 그 문을 통과하자마자 현실의 벽이 기다리고 있었다.
형의 병환으로 함께 하기로 한 자취는 무산됐고, 나는 다시 군북으로 내려가 하루 세 시간 넘는 기차 통학을 시작했다.
봄 안개가 낀 선로를 따라 이어지던 그 길 위에서 나는 인생의 첫 ‘버팀’을 배웠다.
점심시간의 허기를 달래던 건 어머니의 밥이 아니라 내가 만든 거짓말이었다.
“학교에서 점심을 준대요.”
도시락을 싸지 못해 미안해할 어머니를 위로하기 위해, 나는 그렇게 말했다.
그 한마디 속에는 어린 아들이 감당해야 할 가난의 무게와 효심이 함께 들어 있었다.
그리고 어느 날, 짝지였던 친구가 도시락을 반쯤 내밀어 주었다.
그 밥 한 숟갈이 내게는 밥보다 깊은 사람의 온기였다.
그때 나는 알았다.
삶을 지탱하는 힘은 결핍이 아니라, 결핍을 함께 견뎌주는 마음이라는 것을.
그 무렵, 나는 스스로 벌어야 했다.
기차 통학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가정교사 자리를 수소문했다.
1학년 2학기부터 중학생을 가르치며 받은 6,000원으로 방세와 학비, 그리고 생활비를 감당했다.
낮에는 학생으로, 밤에는 선생으로 살아야 했다.
‘배움’과 ‘가르침’이 맞닿던 그 시간은 내 인생에서 가장 치열하고 가장 순수한 순간이었다.
고단한 하루의 끝, 나는 창가에 기대어 스스로에게 말했다.
“오늘도 버텼다.”
그 짧은 독백이 내일을 살아낼 이유가 되었고, 그 반복이 청춘의 뼈대가 되었다.
그때의 나는, 버티는 것 자체가 꿈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담임선생님이셨던 독일어 선생님이 조용히 내게 말씀하셨다.
“희종아, 넌 복싱을 해보는 게 어때? 운동에 소질이 있고, 특기생으로 대학에 갈 수도 있을 거야.”
그 제안은 가난을 이겨낼 수 있는 새로운 길처럼 들렸다.
하지만 어머니는 단호했다. “맞는 권투는 절대 안 된다. 아무리 힘들어도, 네 몸 다치게 하는 건 싫다.”
그 단호함 속에는 한평생 자식만을 위해 살아온 어머니의 사랑이 깊게 배어 있었다.
나는 그날, 세상 어떤 기회보다 사람의 사랑이 더 단단한 울타리임을 배웠다.
그리고 그 사랑이 있었기에, 나는 결코 쓰러지지 않았다.
청춘의 이름으로 버틴 시간들. 그 시절의 나는 성취보다 존재를 지켜내는 일에 가까웠다.
배움을 이어가야 한다는 단 하나의 신념, 그리고 나를 믿어주는 누군가의 마음이 있었기에
나는 끝내 포기하지 않았다.
버티는 하루들이 쌓여 나를 키웠고, 그 시간들은 지금의 나를 만든 보이지 않는 뿌리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