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티는 것도, 그때는 꿈이었다

익숙한 얼굴이 건넨 희망

by 황희종

1974년 봄, 나는 결국 마산고등학교 진학을 선택했다.
군북고등학교의 전액 장학금 제안을 뒤로한 채,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고 싶은 갈망이 나를 이끌었다.
그리고 형이 함께 자취를 하자며 내민 손길은,
그 갈망을 현실로 만들어줄 든든한 약속처럼 느껴졌다.

입학식 날, 나는 교정의 가장 앞줄에 앉아 있었다.
낯선 교가와 설레는 공기, 그리고 어딘가 익숙한 얼굴.
지휘봉을 든 음악 선생님이 나를 보며 미소 지었다.
입학식이 끝나자, 그분이 다가와 조심스레 물으셨다.
“너… 희종이구나? 날 기억하겠니?”
놀랍게도, 그분은 내가 초등학교 1학년 때 담임선생님이었다.
초등학교를 떠나신 지 6년 만의 재회였다.
세월이 흘렀음에도 선생님의 눈빛과 말투는 여전히 따뜻했고,
그 순간, 낯선 도시의 공기가 한결 포근해졌다.

그날 이후 나는 알게 되었다.
사람의 온기 하나가 낯선 환경에서 얼마나 큰 용기가 되는지.
이 도시에서 처음 받은 따뜻한 위로는
성적보다, 장학금보다 더 큰 선물이 되었다.

하지만 그 따뜻함이 오래가진 않았다.
입학식이 끝난 며칠 뒤, 형이 초췌한 얼굴로 말했다.
“희종아, 나… 건강이 너무 안 좋아. 다시 군북으로 내려가야겠다.”
그 말 한마디로 모든 계획이 무너졌다.
형과의 자취는 사라졌고,
나는 하루 세 시간 넘게 기차를 타며 학교를 오가야 했다.

군북에서 마산까지, 함안과 산인을 지나던 그 통학길.
기차 안에서 친구들을 만나 웃고 떠들기도 했지만,
마음 한편은 늘 불안했다.
‘이 길을 끝까지 갈 수 있을까.’
기차 안의 풍경은 늘 비슷했지만,
그 속에서 나는 하루하루 다른 자신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점심시간은 또 다른 시험이었다.
형편이 어려워 도시락을 싸 오는 것도 부담이었다.
어느 날 나는 어머니께 말했다.
“학교에서 점심을 준대요.”
그건 어린 아들이 만들어낸 작은 거짓말,
어머니의 마음을 덜 아프게 하려는 배려였다.

빈 도시락 가방을 들고 등교하던 날들,
짝지였던 친구가 도시락을 반쯤 내밀어줄 때면
그 따뜻한 밥 한 숟갈이 눈물보다 먼저 목을 매게 했다.
허기진 건 배가 아니라 마음이었다.
하지만 그 마음마저 꺾이지 않게 한 건,
누군가의 작은 나눔과 온기였다.

열여섯 살,
나는 처음으로 세상과 홀로 마주 서는 법을 배워가고 있었다.
매일이 고단했지만, 하루를 버텨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다음 날을 살아낼 힘이 생겼다.
그 시절의 나는, 버티는 것 자체가 꿈이었다.

�다음 이야기 예고
여섯 번째 연재,
《청춘의 이름으로 버텨낸 시간들 (2) ― 가정교사와 교과서 사이의 사투》
열여섯 살, 홀로서기를 시작한 청춘의 첫 장면이 이어집니다.
낮엔 학교생활, 저녁에는 가정교사로 살아야 했던 시절의 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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