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에 입대하다

병역의무, 내 인생을 단단하게 만들었다

by 황희종

1979년, 병역의무 이행 시기가 다가왔다.
고등학교 시절 앓았던 건강상의 문제로 신체검사에서 ‘불합격’ 판정을 받았다.
의학적으로는 복무가 어렵다고 했지만, 국방부에서 근무하는 공무원으로서 병역 면제는 나에게 결코 떳떳하지 못한 일이었다.
당시에는 병력 자원이 풍부해 작은 질환만 있어도 불합격 판정을 받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그것은 내게 ‘불명예’로 느껴졌다.

나는 징집판정관에게 “면제가 아니라, 1년 뒤 재검사를 위한 연기 처분을 내려달라”라고 요청했다.
이례적인 부탁이었지만, 스스로의 양심을 따르기 위한 선택이었다.
1년 뒤 다시 받은 신체검사에서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현역 복무는 어렵다는 의학적 판단이 반복되었지만, 나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현역이 아니어도 좋다. 방위병으로라도 복무하겠다.”
그것은 단순한 병역 이행이 아니라, 나 자신과 국가에 대한 약속을 지키려는 책임의 증명이었다.

훈련소 입대를 며칠 앞두고, 어머니께서 갑작스러운 병으로 서울에서 수술을 받게 되셨다.
입대를 앞둔 나로서는 어머니 곁을 지킬 수 없다는 사실이 가장 괴로웠다.
나는 고등학교 시절 자취방 주인 딸의 친구에게 염치 불구하고 부탁을 드렸다.
“어머니를 좀 도와주실 수 있을까요?”

녀는 주저하지 않고 승낙했다.
병실로 찾아가 어머니의 손을 잡고, 반찬을 손수 챙기며 정성껏 보살폈다.
그 따뜻한 정성에 어머니는 큰 위로를 받으셨고,
생전에 “그때 며느리(우린 1983년에 결혼했지) 덕분에 병실에서 외롭지 않았다”라고 자주 말씀하셨다.
그녀의 도움은 내 인생에서 가장 절박했던 순간에 찾아온, 가장 고마운 구원이었다.
그 인연을 통해 나는 깨달았다.
사람의 마음은 어떤 조건보다 강하고, 진정한 관계는 어려움 속에서 비로소 피어난다는 것을.

1981년 2월, 수색에서 훈련을 마친 나는 고양군에 있는 제1군단 통신대대에 배치되었다.
국방부 근무 경력은 철저히 숨긴 채, 평범한 병사로 묵묵히 지내고 있었다.
무더운 여름날 점심식사도 거른 채 연탄을 나르던 중, 행정과장이 다급히 뛰어와 말했다.
“대대장님이 자네를 찾는다. 어서 가게.”

대대장실 문을 열자 믿기 어려운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그곳에는 국방부 시절 소령으로 함께 근무했던 대대장님이 서 계셨다.
그는 “여기 근무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부대 파악하느라 늦게 찾았네”라며 반갑게 맞이해 주셨다.
숨기고 있던 과거가 드러나는 순간이었지만, 왠지 모를 안도감이 밀려왔다.
세상은 좁았고, 인연은 이렇게 또 다른 자리에서 이어졌다.

며칠 뒤, 대대장님은 나를 불러 병영 내 사정을 물으셨다.
나는 조심스럽게 방위병들에 대한 과도한 기합과 구타, 연장근무,
그리고 도시락을 챙기지 못해 끼니를 굶는 병사들의 현실을 말씀드렸다.
대대장님은 잠시 침묵하시더니 단호히 말씀하셨다.
“방위병에게든 누구에게든, 구타는 있을 수 없다.”

그 한마디가 병영의 공기를 바꾸었다.
구타와 연장근무는 사라졌고, 방위병들도 일반병사들 배식이 끝난 후에 식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대대장님의 결단은 병사들에게 큰 위로와 희망이 되었다.
그는 진정으로 사람을 이해하는 리더였다.

대대장님은 나를 부대행정 업무에 배치하려 하셨지만,
나는 정중히 거절했다.
“저를 위해 특별히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다른 병사들과 함께하겠습니다.”
그 후로 나는 주어진 일들을 묵묵히 해냈다.
연탄을 나르고, 설비를 수리하며, 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다.
특별한 대우 대신 평범함을 택했고, 그 속에서 오히려 더 큰 배움을 얻었다.

삶의 가치는 화려한 자리에서 빛나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자리에서 묵묵히 소임을 다하는 성실함과 진정성 속에 있다는 것을
그 시절의 군 생활이 내게 가르쳐주었다.

그때의 나는 단지 병역을 이행한 사람이 아니라,
책임을 피하지 않는 공직자였고,
조용히 자신의 신념을 지켜낸 한 사람의 청년이었다.
시간이 흘러도 그날의 선택은 내 인생의 중심에 여전히 남아 있다.

조국을 지킨다는 단순한 말,
그 말이 내 인생을 단단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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