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국방부로 돌아오다

― 숫자 속에서 배운 공직의 품격

by 황희종

군 복무를 마치고 복귀 신고서를 제출하던 날,
국방부 청사 앞의 공기는 낯설면서도 따뜻했다.
불과 2년 남짓의 공백이었지만,
병사로 보낸 시간은 나를 다른 사람으로 바꾸어 놓았다.
책임과 질서, 그리고 ‘묵묵함’이라는 단어의 무게를
몸으로 배운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복직 후 내가 배치된 곳은 국방예산의 집행과 결산,
국가의 채권·채무를 관리하는 ‘예산운영과’였다.
국방부 전체 재정을 실질적으로 조정하는 핵심 부서였다.
군대에서 막 돌아온 젊은 공무원에게는
숫자와 절차로 얽힌 이 업무가 낯설고 버거웠지만,
나는 누구보다 이 일의 무게를 알고 있었다.
한 장의 결산서, 한 줄의 수치가
곧 국가의 신뢰를 결정짓는 일이라는 것을 말이다.

복직 첫날, 예산운영과 선배가 내게 말했다.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지만, 해석은 사람의 몫이야.”
그 말이 내 가슴에 오래 남았다.
예산이란 단순한 회계가 아니라,
‘국가의 약속’을 숫자로 표현한 기록이라는 걸
그때 처음 깨달았다.

군 복무 때 배운 태도 — ‘묵묵히, 그러나 단단하게’ —
그것이 다시 책상 앞에서 나를 지탱했다.
수많은 예산 항목과 결산 서류 사이에서도
나는 늘 ‘이 돈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를 되묻곤 했다.
돈의 흐름은 곧 정책의 의지였고,
그 흐름을 투명하게 관리하는 것이
공무원으로서 내가 맡은 가장 본질적인 임무였다.

예산운영과의 하루는 늘 시간과의 싸움이었다.
결산 기한은 촉박했고, 예산 배정은 긴급했다.
수많은 서류와 결재선, 변동되는 수치 속에서
한순간의 판단이 수십억 원의 차이를 만들기도 했다.
나는 그 긴장감 속에서도 원칙을 놓지 않으려 했다.
숫자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안에 담긴 국민의 세금과 신뢰였기 때문이다.

퇴근길, 텅 빈 사무실 창문에 비친 내 모습은
군 시절보다 훨씬 단단해져 있었다.
그때 깨달았다.
군대에서의 경험이 나를 강하게 만들었다면,
이곳에서는 ‘책임’이 나를 깊게 만들고 있음을.

국방부 예산운영과는 군의 운영과 국가 재정의 접점이었다.
행정의 실수 하나가 곧바로 장병의 복지로,
또는 방위산업의 지원으로 이어지는 현실 속에서
나는 점점 더 ‘행정의 본질’을 생각하게 되었다.
행정은 숫자가 아니라 ‘의지의 전달체계’였고,
그 안에 공직자의 양심이 깃들어야 했다.

복직 이후 몇 해가 지나고,
나는 업무의 속도를 익히기보다 ‘균형’을 배우고 있었다.
급한 일보다 중요한 일을,
성과보다 신뢰를 먼저 세우는 법을.

그때 나는 알았다.
공직이란 자리를 지키는 일이 아니라,
국가의 신뢰를 대신 짊어지는 일이라는 것을.

《황희종의 삶과 이야기 | 제9장》
“국가를 지탱하는 힘은 숫자보다, 그 숫자를 지키는 사람에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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