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에서 배운 공직자의 '첫 배움'2편

격변의 세월: 10·26 충격, 12·12 혼돈, 그리고 침묵의 5월을

by 황희종

1979년 10월 26일 저녁, 국방부 출입문을 들어서던 길은 평소와 달랐다. 헌병들의 삼엄한 통제와 짙은 긴장감이 공기를 뒤덮고 있었다. 잠시 후 들려온 소식은 믿기 어려웠다. 박정희 대통령 서거.
그 한마디가 건물 안의 모든 사람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공보관실은 즉시 비상근무 체제에 들어갔고, 정보는 제한된 채 혼란만 커져 갔다. 어떤 말을 전해야 할지, 어떤 침묵을 지켜야 할지조차 알 수 없었다.
그날 밤, 나는 처음으로 느꼈다. 행정이란 단순한 절차의 집합이 아니라, 국가 질서를 지탱하는 보이지 않는 근육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한가운데 서 있는 공직자의 어깨 위에는 언제나 국가의 무게가 얹혀 있다는 사실을.

한 달여가 지난 12월 12일 밤, 국방부의 공기는 또 한 번 얼어붙었다. 자정을 조금 넘긴 시각, 밖에서 섬뜩한 총성과 함성이 동시에 터져 나왔다. 나는 본능적으로 소파 밑으로 몸을 숨겼다. 전등이 꺼지고, 복도 끝에서 들려오는 군화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다.
그 몇 시간은 평생 잊을 수 없는 시간이었다.
새벽녘 외신실에서“쿠데타 발생”이라는 단어를 확인하는 순간, 세상이 완전히 달라졌음을 깨달았다.
이후 며칠간은 혼돈 그 자체였다. 누가 누구의 명령을 따르는지조차 모호한 상황에서, 우리는 국민에게 전달할 단 한 줄의 문장에도 수십 번의 검토를 거듭해야 했다.
그때 배운 것은 단 하나였다. 위기 속의 침착함이야말로 공직자의 마지막 방패라는 것. 그리고 그 방패는 두려움을 감추는 용기가 아니라, 국민 앞에서 무너지지 않기 위한 책임감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이듬해 1980년 5월, 비상계엄이 전국으로 확대되었다. 공보관실의 책상 위에는 매일같이 갱신되는 ‘보도 검열 지침’이 놓였다. 우리는 그 지침서를 들고 기자들을 만났다.
처음에는 그것이 국가 안정을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고 믿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외부에서 전해지는 현장의 참상과 우리가 전달해야 하는 메시지 사이의 간극이 점점 더 커져 갔다.
진실을 알고도 말하지 못하는 그 침묵은, 책임을 피하기 위한 방패가 아니었다. 오히려 가슴을 짓누르는 또 하나의 무거운 진실이었다.
그때 처음으로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마음 깊은 곳에서 솟아올랐다.
국가란 통제와 명령의 체계만으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진실을 향한 최소한의 양심 위에서만 존립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깨달았다.

10·26의 충격, 12·12의 혼돈, 그리고 5월의 침묵.
그 세 시기는 내 젊은 공직 인생의 가장 깊은 상흔이자, 동시에 행정가로서의 신념을 세운 뿌리였다.
그 후로 나는 어떤 자리에서도 ‘진실을 외면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스스로에게 반복했다.
그것이 나에게 주어진 공직의 윤리이자,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품격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격변의 시대를 통과하며 나는 배웠다.
국가를 지키는 일은 때로 법령과 지침을 따르는 일이지만, 결국은 인간의 양심을 지켜내는 일이라는 것을.
그날의 혼돈과 침묵 속에서 청년 공무원 황희종은 비로소 한 사람의 행정가가 아니라, 국가와 국민을 향한 소명을 지닌 인간으로 다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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