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럽지 않게 살고 싶었다. 그것이 모든 시작이었다"
54일간의 치열한 수험 끝에 얻어낸 공무원 합격이라는 값진 결실은 나를 국방부라는 전혀 새로운 세상으로 이끌었습니다. 1978년 1월 16일, 새하얀 눈이 소복이 내리던 날, 설렘과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이 뒤섞인 채 웅장한 국방부 정문을 들어섰습니다. '이제 나는 대한민국 공무원이다'라는 벅찬 다짐과 함께, 매사에 성실하게 임하고 모든 것을 배우는 자세를 마음 깊이 새겼습니다.
일주일간의 오리엔테이션 후, 나는 뜻밖에도 공보관실에 배치되었습니다. 떨리는 숨을 고르며 했던 첫 자기소개. 그것이 바로 39년에 걸친 나의 길고도 의미 있는 공직 생활의 첫 문장이었습니다. 나는 자료 전달이나 회의 정리 같은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맡으며 공직의 기본을 배워나갔습니다. 선배들의 보고서 작성 방식, 회의 태도, 말투 하나까지도 놓치지 않고 관찰하며 '어떤 일이든 작은 것부터 제대로 해내자'라고 스스로 거듭 다짐했습니다. 구내식당에서 마주친 장교들의 단정하고 절도 있는 자세는 나에게 큰 영향을 주었고, 나는 그들의 곧은 태도를 닮아가고자 부단히 노력했습니다.
공군 대령 출신의 공보관님은 젊은 신입인 나를 깊이 신뢰했고, 기자들에게 '200대 1 경쟁률을 뚫은 최연소 공무원'이라며 자랑스럽게 소개해 주셨습니다. 당시 나는 국방부의 '입'과 '귀'가 되어 언론이라는 낯선 세계와 마주하게 되었는데, 보도자료를 전달하고 때로는 기자에게 직접 기사를 구술해주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나의 경상도 사투리가 예상치 못한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기사를 구술하며 특정 부분을 강조했던 억양이 오해를 불러일으켜, 결국 해당 언론사가 기사를 내보내지 못하는 아찔하고 당황스러운 경험을 했습니다. 이 작은 해프닝은 나에게 공적인 자리에서의 소통이 얼마나 중요하고 섬세한 일인지를 뼈저리게 느끼게 했습니다.
이후 나는 매일 밤 뉴스를 따라 읽고 선배들의 말투와 억양을 세심하게 관찰하며 고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습니다. 공식적인 정보를 전달하는 데 있어 아무리 작은 말 한마디, 억양 하나라도 얼마나 신중하고 정확해야 하는지를 절감한 시간이었습니다. 공보관실은 전화기와 타자기 소리, 그리고 마감 시간을 재촉하는 기자들의 발걸음으로 늘 분주했으며, 나는 그 활기찬 소통의 중심에서 점차 나의 자리를 잡아갔습니다.
이 모든 '첫걸음'의 경험은 나에게 성실함과 끊임없는 자기 훈련이야말로 공직자로서 부끄럽지 않게 살기 위한 모든 시작이었음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서툴지만 치열했던 그 첫 마음이 지금의 나를 있게 한 가장 단단한 초석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