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일, 절망을 딛고 희망으로
1977년 봄, 고등학교 졸업 후의 시간은 저에게 방향을 잃은 고독한 항해와 같았습니다. 친구들은 대학 진학과 재수를 위해 각자의 길을 찾아 떠날 때, 저는 건강은 차츰 회복했지만 미래는 여전히 불투명했고, 취업의 길을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어머니께서는 마지막 희망을 걸듯, 서울 누나 집에서 대학 갈 공부를 하라는 권유를 하셨습니다. 좁은 집에 시집 식구 등 여섯 명이 북적이는 환경, 저는 비좁은 다락방에서 지내며 단과반 재수 학원을 다녔습니다. 조카들을 돌보고 집안일을 거들면서 고단한 하루를 시작했지만, 단 한 달 만에 끊긴 어머니의 지원은 더 이상 기댈 곳이 없다는 냉혹한 현실을 직시하게 했습니다. 벼랑 끝에 몰린 저는 결국 모든 것을 걸고 공무원 시험에 도전하기로 결심합니다.
당시 7급 공무원 시험까지 남은 시간은 지방직이 54일, 국가직 시험은 80여 일. 막막함 그 자체였지만, 학원 상담 선생님의 진심 어린 격려가 무너졌던 용기를 다시 일으켜 세웠습니다. "올해는 경험을 쌓고 내년에는 해볼 만해요. 포기하지 마세요." 그 조언은 저에게 단순한 위로가 아닌, 나 자신을 다시 믿고 일어설 수 있는 마지막 불씨가 되었고, 저는 그 불씨를 안고 마산으로 내려왔습니다.
54일간의 사투는 오직 책상 위에서 치러진 필사의 전쟁이었습니다. 매일 아침 도서관으로 출근하듯 향했고, 밥 먹는 시간 외에는 오직 책상에 그림자처럼 붙어 있었습니다. 주위의 "2~3년은 걸릴 것"이라는 회의적인 시선에도 불구하고, 저는 홀로 그 비웃음을 무릅쓰고 더욱 절실하게 몰입했습니다. 특히 생소했던 행정법과 행정학 교재는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10번 이상 반복했습니다.
기적은 하늘에서 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기적은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오직 공부에만 전념한 책상 위에서, 그리고 매일 도서관으로 향했던 발바닥의 끈기에서 온다는 믿음 하나로 버텼습니다.
시험을 마친 후, 먼저 치렀던 지방직 시험 합격자 명단에서 제 이름을 찾지 못해 낙담했지만, 이내 직원의 축하를 받으며 극적으로 합격 사실을 확인하는 감격적인 순간이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한 달 뒤 국가직 시험에서도 합격자 명단을 확인했을 때, 저는 불과 54일에서 80여 일 남짓한 짧은 시간 동안 두 번의 시험에 모두 합격하는 '놀라운 성취'를 이루어냈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어머니, 동생, 형을 부둥켜안고 함께 기쁨의 눈물을 흘리던 그날의 감격은 제 삶의 가장 위대한 순간 중 하나입니다. 면접장에서 밝혔던 진솔한 각오와 『월간 고시』에 실렸던 합격 수기는 그 치열했던 시간을 증명했습니다.
1978년 1월, 저는 모두가 만류했던 국방부를 희망 부처로 선택하며 첫 공직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이 짧은 54일간의 여정은 저에게 불가능해 보이는 것도 강한 믿음과 끈기 있는 실천으로 나아갈 때, 마침내 문을 열어준다는 값진 깨달음을 안겨주었습니다.
[함께 생각하기] 당신이 '모든 것을 걸고' 극한의 집중력을 발휘했던 경험은 언제였나요? 그리고 그 끈기와 실천이 당신의 삶을 어떻게 바꾸어 놓았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