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재와 그리움이 남긴 것, 빈자리의 무게
아버지는 결국 우리 곁을 떠나셨다.
1971년 초겨울, 다시 일어서지 못하는 병환으로 쓰러지셨다.
군북의 좁은 셋방에서 두 달을 지내시다,
운명을 아셨는지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조용히 말씀하셨다.
“여긴 너무 춥다. 고향 쪽으로 가자.”
그 말에는 이미 이별의 예감이 배어 있었다.
1971년 12월의 찬바람이 군북역을 휘돌던 날,
아버지는 낡은 외투 주머니에서 동전 몇 닢을 꺼내
내 손에 쥐여 주셨다.
“밥 잘 챙겨 먹고… 공부 열심히 해라.”
그 말과 함께 마른 얼굴 위로 조용히 눈물이 흘렀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때의 내 손은 너무 작았고,
그 동전은 이상하리만큼 따뜻했다.
아버지는 어머니와 함께 고향 근처 이모님 댁으로 향하셨다.
그날 이후 군북의 셋방에는
나와 여덟 살 동생만 남았다.
방 안에는 사람의 온기가 사라졌고,
밤이면 시계 초침 소리만 또렷하게 들렸다.
그때 처음 알았다.
사람이 떠난다는 건, 집 안의 시간까지 멈추게 하는 일이라는 것을.
그 겨울이 지나고,
1972년 3월, 아버지는 고향 근처 이모님 집 옆에서
조용히 세상을 떠나셨다.
그때 아버지는 마흔아홉이었다.
지켜보는 자식도, 이별의 인사도 없었다.
다만 어머니가 들려준 한마디.
“아버지는 끝까지 자식 걱정만 하셨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세상이 너무 넓고, 너무 낯설게 느껴졌다.
그날 이후,
나는 스스로 어른이 되어야 했다.
학교가 끝나면 시장 심부름을 하고,
밤이면 어린 동생 곁을 지켰다.
아버지의 빈자리가 너무 커서
그 공백이 나를 끌어당겼다.
그리움은 슬픔이 아니라,
나를 단단하게 만드는 무게가 되었다.
세월이 흘러 돌아보면,
그때의 그 겨울이 내 인생의 첫 전환점이었다.
세상이 아무 말도 해주지 않을 때,
스스로 길을 찾아야 한다는 걸
나는 열네 살 그 봄에 배웠다.
“부재는 사라짐이 아니라,
우리가 일어서야 할 자리를 알려주는 신호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