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땅에서의 적응, 다시 새롭게 배우다
1995년 8월 10일, 가족과 함께 김포공항(인천국제공항 개청 전)에서 시카고행 비행기에 올랐다.
겉으로는 설렘을 가장했지만, 마음속에는 막중한 책임감이 짓눌러 앉아 있었다.
낯선 땅에서 아내와 두 아들을 책임져야 한다는 현실이 기대로만 채워지지 않았던 것이다.
시카고 공항에 도착해 피오리아행 국내선으로 갈아타는 과정은 그야말로 혼돈이었다.
복잡한 환승 절차와 낯선 영어 안내 방송, 그리고 한마디 말조차 통하지 않는 상황 속에서
가족과 함께 서성이다 가까스로 대한항공 사무실의 도움을 받아 다음 비행기에 몸을 실을 수 있었다.
밤늦게 도착한 피오리아 공항에는 한인 유학생이 마중을 나와 있었다.
그의 안내로 밤 12시에 학교 오피스룸에 도착했다.
시차로 잠을 설치고 아침 일찍 식당을 찾았으나 방학 중이라 문을 연 식당이 없었다.
무더운 날씨 속에 에어컨에만 의지한 채, 자동차도 없고 가족 모두 오피스 룸에 갇혀 꼬박 하루를 굶어야 했다. 우리를 안내해 주기로 했던 학생이 여행을 가서 돌아오지 않아 차질이 발생한 것이다.
지쳐 잠든 가족을 바라보며 스스로를 다독이던 그때,
금융감독원에서 온 유학생이 저희들이 도착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왔다
그의 집에서 먹은 김치와 된장국은 단순한 ‘한 끼 식사’가 아니었다.
이틀 동안의 불안과 낯섦을 녹여주는 구원이자, 앞으로 버텨낼 용기의 시작이었다.
이틀 만의 첫 식사 후, 나는 그분의 아내로 자동차를 사고, 학교 외부에 아파트를 얻었다.
우리는 그분의 따뜻한 안내로 낯선 미국 매콤이라는 도시에서 작은 ‘한국’을 세워갔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나는 조건부 입학자였기에 정규 과정 전에 어학연수를 받아야 했다.
첫 시험에서 듣기와 회화 점수가 낮아, 4단계 중 3단계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다.
이대로라면 2년 안에 석사 학위를 마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시간은 돈이었고, 경제적 여유도 없었다.
나는 이 시간을 ‘인생의 마지막 기회’라 여기며 밤을 새워 공부했다.
영어 문장 하나를 익히는 데도 땀을 흘렸고,
심장이 터질 듯 긴장된 대화 속에서도 한마디를 더 배우기 위해 발버둥 쳤다.
어학연수 한 학기를 마치고 교수님을 찾아가
“2년 안에 석사 과정을 끝내야 하는데, 이대로는 불가능합니다.”
교수님은 나의 절실한 사정을 듣고, 이례적으로 ‘맞춤형 커리큘럼’을 제안했다.
다음 학기에 영어 수업과 함께 대학 선행학습을 병행할 수 있도록 조정해 준 것이다.
그 덕분에 2년 안에 학위를 취득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나의 열정과 진심이 만들어낸 첫 번째 기적이었다.
시간표는 빽빽했고, 과제는 산더미였다.
그러나 한 번도 흔들리지 않았다.
언어의 벽을 넘어, 매일 새벽 불을 밝히며 한 걸음씩 나아갔다.
남들보다 빠르게, 더 절실하게 살아야 했다.
그 치열한 과정이야말로 내 인생의 가장 뜨거운 배움의 시간이었다.
그 무렵, 가장 큰 힘은 가족이었다.
아내는 낯선 환경 속에서도 생활의 중심을 잡아주었고,
두 아들은 놀라울 만큼 빨리 학교생활에 적응했다.
주 1회 미국인 대학원생에게 영어 과외를 받으며
아이들의 발음과 표현이 눈에 띄게 달라지는 모습을 보는 것이 큰 기쁨이었다.
나는 오직 학업에 집중했고,
아내는 묵묵히 생활을 지탱하며 가족의 리듬을 만들었다.
겨울이 되어 학교 기숙사로 옮기며 비로소 안정된 생활이 시작되었다.
낯선 땅에서의 어려움 속에서도 가족이 함께였기에,
나는 흔들리지 않고 버틸 수 있었다.
이 시기의 삶은 단순히 ‘유학 생활’이 아니었다.
한 인간이 새로운 언어와 문화,
그리고 자신 안의 한계를 마주하며 다시 성장하는 과정이었다.
낯선 미국의 작은 대학도시 매콤에서,
나는 인생이 다시 시작될 수 있다는 사실을 배웠다.
두려움보다 책임이, 불안보다 사랑이 더 강할 때
사람은 어떤 환경에서도 배움을 멈추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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