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균형과 결실, 그리고 새로운 출발
1995년 중간고사를 마친 뒤, 숨 가쁜 학업 속에서도 잠시 숨을 고를 수 있는 여유가 찾아왔다.
그때 나는 새로운 활력소를 찾았다. 바로 골프였다.
처음에는 어렵기만 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PGA 경기 중계를 보며 자세를 익히고, 매일 새벽 연습장으로 향했다.
꾸준히 연습한 끝에 싱글 스코어를 기록할 만큼 성장했다.
공을 치며 쌓인 땀방울 속에는 긴장과 피로가 씻겨 내려갔다.
틈틈이 시카고, 스프링필드, 피오리아 등 근교를 여행하기도 했다.
짧은 휴식이었지만, 낯선 미국 땅에서의 삶에 숨결을 불어넣어 주었다.
학업과 생활, 가족과 나 자신 사이의 균형이 비로소 잡혀가는 느낌이었다.
1996년 봄 학기는 다시 치열했다.
영어 듣기와 회화 수업을 병행하면서도 대학 선행 학습 세 과목을 악착같이 이수했다.
그러다 여름방학이 되자 가족과 신혼부부 유학생 한 가족이 함께
두 대의 차에 몸을 싣고 15박 16일의 서부 여행을 떠났다.
요세미티, 그랜드캐년, 라스베이거스.
모두에게 낯설고 벅찬 여정이었지만, 철저히 계획을 세우고 원칙을 지켜 무사히 완주했다.
여행 중 아내가 열사병으로 쓰러지는 아찔한 일도 있었지만
빠르게 회복해 다시 길 위에 설 수 있었다.
그 여행은 치열한 일상 속에서 얻은 가장 값진 휴식이었다.
삶은 공부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는 것을,
그 여름 햇살 아래에서 배웠다.
1996년 여름 학기, 나는 석사 과정 첫 강의로 공공정책학 수업을 들었다.
그러나 세 시간 동안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교수와 학생들의 빠른 말, 논리적인 토론의 흐름을 따라갈 수 없었다.
수업이 끝난 뒤, 절망감에 담당 교수를 찾아갔다.
“이대로는 안 되겠습니다.”
교수님은 조용히 내 이야기를 들은 뒤 말했다.
“자네는 수학적인 감각이 뛰어나니, 경제학이 더 적합할 수 있네.”
그 한마디가 내 인생의 방향을 바꾸었다.
미국 대학의 유연한 시스템 덕분에
나는 경제학으로 전공을 변경할 수 있었다.
전공을 바꾸자 학업은 훨씬 잘 맞아떨어졌다.
같은 과에 한국 유학생도 있어 공부 환경이 한결 편해졌다.
그 여름까지 어학연수 과정을 마치고, 대학 선행 학습 다섯 과목과 대학원 한 과목을 이수했다.
학업의 방향이 분명해지자 마음이 가벼워졌다.
내 인생의 두 번째 학창시절이
이제 비로소 제 속도를 찾은 듯했다.
이후의 시간은 그야말로 전력 질주였다.
1996년 가을 학기와 1997년 봄 학기, 두 학기 동안 각각 네 과목씩 수강했다.
마지막 여름 학기 한 과목까지 포함하면
누구보다 많은 과목을 소화해야 했다.
그러나 수학적 사고에 강했던 나는 과제와 시험을 무리 없이 따라갔다.
학업이 익숙해지자 공부는 더 이상 고통이 아니라 즐거움이 되었다.
학기 중에도 가족과 여행을 다녔다.
중부의 작은 도시들을 돌며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고,
한 번은 아내가 허리를 삐끗하는 사고가 있었지만
다행히 보험 덕분에 큰 부담 없이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가족은 여전히 내 삶의 중심이었고, 나의 원동력이었다.
학업과 취미, 가족 사이의 균형이 맞아가며
삶의 무게가 더 단단해졌다.
1997년 5월 1일, 마침내 졸업식 날이 다가왔다.
마지막 한 과목이 남아 있었지만
그날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고등학교 시절 내신 하위권으로 대학 문턱조차 넘지 못했던 내가,
낯선 미국 땅에서 어학연수와 대학 선행 학습,
그리고 정규 석사 과정을 모두 마쳐 학위를 받게 된 것이다.
그 학위는 종이 한 장이 아니었다.
나의 집념과 가족의 희생, 그리고 포기하지 않은 시간이 만든 인생의 증표였다.
석사 학위 취득의 감동이 채 가시기도 전에
나는 또 하나의 결심을 했다.
이번에는 아내의 차례였다.
유학 동안 묵묵히 내 곁을 지켜준 아내가
스스로 대학에 도전하기로 한 것이다.
나는 전폭적으로 지지했다.
그동안 나의 꿈을 위해 헌신했던 아내가
이제 자신의 길을 찾을 차례였다.
아내와 두 아들은 먼저 귀국해 비자 준비를 하기로 했다.
나는 남은 학기를 마친 뒤 귀국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그 결정이 쉽지는 않았다.
사랑하는 가족을 낯선 땅에 두고
혼자 비행기에 오르는 일은 가슴을 찢는 듯 아팠다.
피오리아 공항에서 가족과 작별하던 그날,
아내는 짧게 말했다. “당신 덕분에 나도 용기를 냈어요.”
그 한마디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홀로 귀국길에 오르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이별은 언제나 슬프지만,
그 슬픔 속에서도 새로운 시작의 숨결이 있었다.
가족 모두에게 또 다른 성장이 기다리고 있음을
나는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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