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과 가족의 힘으로 성장하다
1997년 8월, 미국 유학을 마치고 가족을 남겨둔 채 홀로 귀국했다. 공항을 나서는 순간, 낯선 땅에서 함께한 시간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다시 국방부 군수국 조달관리과. 익숙하면서도 냉정한 현실의 무게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곳은 군수품 조달의 심장부였다. 수많은 이해관계와 민원이 얽힌 복잡한 조직 속에서 나는 다시 시작해야 했다.
처음 맡은 일은 전군 재물조사와 폐군수품 관리였다. 보고서로만 이해할 수 없다고 판단한 나는 직접 현장을 찾았다. 지침대로 관리가 이루어지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부대를 불시에 점검했고, 그곳에서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했다. 일부 부대에서 장비를 돌려 채우며 형식적으로만 조사를 마무리하는 부실한 관행을 목격했다. 국민의 세금으로 마련된 군 자산이 제대로 관리되지 않는 현실에 나는 단호히 맞섰다. 전면 재조사와 책임자 문책을 요구하며, 첫 번째 혁신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그 후 조달정책 담당으로 자리를 옮긴 나는 그동안 ‘중소기업 보호’라는 명분 아래 중소기업단체와의 수의계약으로 조달하는 품목을 경쟁계약으로 전환했다. 중소기업 단체의 항의가 이어졌지만 나는 물러서지 않았다. 품질 평가와 과거 계약 이력, 시장분석을 근거로 경쟁체계의 필요성을 집요하게 설득했다.
또한, 오랫동안 방산물자로 지정되어 비효율을 낳던 일부 품목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다. 특히 발전기와 같은 장비는 시중 상용품이 더 우수하고 가격도 저렴했다. 나는 이를 근거로 방산물자 지정 해제와 상용품 경쟁조달 전환을 제안했다. 당시 해당 업체의 강력한 로비와 내부 반대가 있었지만, 새로 부임한 국장님의 이해와 결단 덕분에 지정 해제가 이루어졌다. 그 결과, 많은 예산이 절약되고 수리부속의 조달 또한 훨씬 원활해졌다.
조직 내부의 불편함보다 국민 세금의 가치를 지키는 것이 공직자의 본분이라 믿었기에, 나는 어느 쪽에서도 물러서지 않았다.
이 무렵, 나는 또 하나의 변화를 준비하고 있었다. 바로 전자입찰 제도 도입 계획이었다. 감사 경험이 풍부한 과장님이 부임하면서 나는 제도 설계와 추진 전략을 세우는 작업을 맡았다. 퇴근 후에는 조달본부로 내려가 실무자들과 시스템 구축 방향을 논의하며 디지털 조달의 미래를 그렸다. 전자입찰은 계약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높이는 핵심적인 제도라 믿었기 때문이다.
이후 나는 보직이 변경되어 직접 완성 단계까지는 함께하지 못했지만, 그때 세워둔 기본 구상과 시스템 구조가 그대로 이어져 2003년, 국방부 전자입찰 시스템이 정식 개통되었다. 그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마음속 깊이 벅찬 감정을 느꼈다. 비록 자리를 옮겼지만, 그 변화의 씨앗을 뿌렸다는 사실이 지금도 가장 자랑스러운 기억으로 남아 있다.
1997년 말, 한국은 IMF 외환위기라는 국가적 시련을 맞았다. 뉴스마다 ‘금 모으기’와 ‘구조조정’이라는 단어가 흘러나왔다. 미국에 남겨둔 가족이 늘 마음의 짐이었다. 환율 폭등으로 생활비 송금이 거의 불가능해지면서 아내와 두 아들의 생활도 한계에 다다랐다. 정부는 해외 체류 가족의 귀국을 권고했고, 결국 아내는 눈물을 머금고 귀국을 결심했다.
1998년 1월, 찬바람이 매서운 겨울 아침. 김포공항에서 다시 만난 가족은 지쳐 있었지만 반가움으로 서로를 꼭 껴안았다. 6개월간의 긴 이별 끝에 다시 함께하는 순간, 나는 그 어떤 성취보다 큰 위안을 느꼈다. 세상에 불안이 가득해도 함께 밥을 먹고, 함께 웃을 수 있는 가족이 있다는 사실이 가장 강력한 생존의 힘이었다.
그해 연말, 서기관 승진 명단이 발표되기 전까지 조직 내부는 또 다른 소용돌이에 휩싸여 있었다. ‘나이가 어려서’, ‘유학을 다녀와서’라는 이유로 나의 승진을 반대하는 소문이 돌았다. 내가 쌓은 경험과 성과가 오히려 불이익의 근거가 되는 현실은 납득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나는 항변하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내 자리를 지켰다. 그리고 1999년 1월 23일, 서기관 임명장을 받았다. 그날, 책상 위에 조용히 손을 얹고 속삭였다. “흔들렸지만, 무너지지 않았다.”
새로운 직책은 또 다른 시작이었다. 장비탄약과 총괄담당으로 일하며 무기체계 정비와 대규모 예산을 다루었다. 군 출신 장교들과 함께 일하며 행정 절차에 익숙하지 않은 그들을 도왔다. 그들의 현장 경험과 나의 행정 감각이 맞물릴 때 비로소 효율적인 시스템이 완성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2001년, 군수기획과로 옮긴 나는 군수 행정의 제도적 틀을 바로 세우는 일에 몰두했다. 법령, 예산, 규정 하나하나를 살피며 비효율과 관행을 걷어내려 했다. 그중 가장 큰 과제는 ‘군수품 관리법’의 전면 개정이었다. 그러나 조직의 관성은 거대했다. 새로 온 국장의 “왜 굳이 복잡한 일을 하느냐”는 반대에 결국 초안을 후임자에게 넘기며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나는 그 과정을 통해 진정한 혁신은 완성보다 ‘도전’에 있다는 것을 배웠다. 비록 끝까지 이루지 못했더라도 그 시도 자체가 변화를 향한 발걸음이 된다. 그 발걸음이 쌓여 언젠가 길이 된다. 그리고 그 길 위에서 나는 ‘혁신가로서의 나’를 조금씩 완성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