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도의 변화는 사람의 의지에서 시작된다
1997년 귀국 후 다시 국방부로 돌아와, 수년간 조달과 군수행정의 현장에서 혁신을 추진했던 시간은 제 삶의 큰 훈련장이었다. 그리고 2003년, 나는 새로운 출발선 앞에 섰다.
서기관 승진 4년 차, 과장 승진을 앞두고 서기관 시절의 업무 성과를 통해 충분히 평가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현실은 또 달랐다.
“과장으로서는 나이가 어리다”, “유학을 다녀온 공백이 있다”는 여론으로 나를 배제하려는 이야기들이 들려왔다.
다행히 나를 잘 아는 국장님과 과장님, 그리고 함께 일했던 직원들은 “결국은 실력과 평판이 이긴다”며 조용히 격려해 주었다.
새로 들어선 정부는 인사제도 혁신의 일환으로 국·과장 승진 인사에 ‘다면평가’를 도입했다.
상급자·동료·하급자의 평가를 종합해 리더십과 역량을 검증하는 새로운 제도였다.
나는 그 평가에서 당당히 1위를 차지했다.
일부에서는 결과를 믿지 못해 재평가를 지시했지만, 결과는 동일했다.
결국 사람들의 신뢰와 공정한 평가가 저를 증명해 주었다.
2003년 초, 나는 마침내 과장으로 승진했다.
보직은 모두가 기피하던 ‘한직’, 기획관리관실 행정관리과장이었다.
직원은 6명뿐이었고, 퇴직을 앞둔 과장이 잠시 머무는 자리라 불리던 곳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 ‘조용한 자리’에서 변화를 준비했다.
행정관리과는 문서·기록 관리와 제도개선 업무를 맡고 있었다.
나는 이곳에서 국방 행정의 기초를 튼튼히 세우는 일, 다시 말해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시스템을 정비하고, 낡은 규정을 바로잡으며 미래의 변화를 위한 기반을 다지는 일에 몰두했다.
이 시기 정부는 참여정부의 국정과제 중 하나였던 ‘정부업무혁신’을 각 기관에 내렸다.
대부분의 부서는 추가 업무 부담을 이유로 난색을 표했다.
그러나 나는 국장님과 상의 끝에 과감히 자원했다.
“이왕 맡을 거라면, 조용한 자리에서부터 변화를 시작하자.”
그 결심이 훗날 국방부 전체 혁신의 시발점이 되었다.
행정관리과장으로서 나는 규제개혁과 기록관리 혁신을 국방 행정의 두 축으로 삼았다.
첫째, 군사시설 보호구역 제도와 군수품 납품업체에 대한 보안측정 제도 등 국민의 일상에 불편을 주는 규제를 현실에 맞게 정비했다.
안보와 국민의 삶이 충돌하지 않도록 균형을 잡는 것이 핵심이었다.
둘째, 기록관리 혁신이었다.
모든 행정기관이 마찬가지겠지만, 국방부 역시 한 해가 지나면 문서를 문서고로 이관하고, 보존연한이 지나면 폐기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문서가 제대로 분류·보관되지 못한 채 쌓이거나, 일부는 관리 미흡으로 사라지는 문제가 반복되고 있었다.
나는 이를 바로잡기 위해 정부의 ‘전자기록관리시스템 도입 계획’에 발맞추어 국방부의 시스템 전환을 재빨리 추진했다.
‘좋은 기록이 좋은 정책을 만든다’는 믿음 아래, 기록관리전문가를 채용하고 예산을 확보하며 전자화 작업을 직접 이끌었다.
그 결과 국방부의 기록관리 체계는 보다 투명하고 효율적인 구조로 전환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무렵, 나는 국방 행정의 시야를 한층 넓혀준 특별한 경험을 했다.
2004년, 이라크 아르빌 지역에 파병된 ‘자이툰 부대’를 국방업무평가위원들과 함께 직접 방문한 것이다.
당시 누구도 위험 지역 시찰을 상상하지 못했지만, 나는 “현장을 보지 않고는 진실을 평가할 수 없다”라고 판단했다.
쿠웨이트에서 아르빌로 향하던 급강하 수송기 안의 숨 막히는 순간,
그리고 사막의 뜨거운 바람 속에서 묵묵히 임무를 수행하던 장병들의 눈빛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그들은 말이 아닌 행동으로, 대한민국 국군의 사명과 국방의 본질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 현장 경험은 내 마음속에 또 하나의 확신을 새겼다.
튼튼한 안보와 강한 국방을 위해서는 반드시 혁신이 뒤따라야 한다.
누구나 기피하던 부서의 작은 변화가 조직의 체질을 바꾸고,
그 변화가 다시 사람을 성장시킨다.
그것이 내가 국방 행정의 중심에서 배운 가장 값진 진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