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국방 문민화, 벽을 넘어선 혁신

문민화는 제도가 아니라 시대의 철학이었다.”

by 황희종

국방의 문민화는 단순히 군의 일부 업무를 민간 공무원이 맡는 제도적 변화가 아니었다.
그것은 수십 년간 이어져 온 ‘군 중심주의’의 벽을 허물고,
국방 행정을 효율적이고 투명한 체계로 바꾸려는 거대한 개혁이었다.


당시 국방부는 명령과 위계의 문화가 행정을 지배하고 있었다.
민간 공무원의 역할은 보조에 머물렀고, 주요 결정권은 늘 군에 있었다.
이 구조 속에서 전문성과 투명성은 늘 한계에 부딪혔다.

2004년 10월 1일, 노무현 대통령은 국군의 날 경축사에서 선언했다.
“국방도 행정이다. 전문가가 있어야 하고, 민이 중심이 돼야 한다.”

이 한마디는 국방 운영의 기준을 뒤바꾼 역사적 메시지였다.

이후 장관은 “국장급 이상 전원, 과장급 이하 75% 이상 문민화, 목표는 2년 내 달성”이라는
강력한 지시를 내렸다. 조직 전체의 거센 저항이 예상되었지만,
나는 그 변화가 시대의 요구이자 반드시 가야 할 길임을 확신했다.
군 중심의 행정 구조를 바꾸는 일은 단순한 제도가 아니라 사회적 신뢰의 문제였다.


그러나 국방부 안에서 ‘문민화’라는 말은 낯설고 불편했다.
“민간인은 군을 모른다”는 인식이 뿌리 깊었다.
작은 제도 하나를 바꾸기 위해서도 수많은 회의와 설득이 필요했다.
때로는 갈등이 있었지만, 결국 변화는 누군가의 불편을 감수할 때 시작된다고 믿었다.


민간 출신 과장이 일부 부서에 임명되자 서서히 공감대가 생겼다.
비록 작은 균열이었지만, 그 균열은 국방 행정의 판을 바꾸는 첫걸음이었다.

나는 제도의 변화와 사람의 인식 개선을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먼저 부서 구조를 면밀히 분석해 민간 공무원이 주체적으로 설 수 있는 체계를 설계했다.
군이 독점하던 보직을 단계적으로 일반직으로 전환하고, 인사체계를 현실화했다.

또한 부서를 직접 돌며 문민화의 의미를 설명했다.

교육과 워크숍을 열어 실무자들이 변화를 스스로 체감하도록 했다.
제도가 완벽해도 사람이 수용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기 때문이다.

나는 장관의 ‘2년 내 전환’ 지시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판단해
대신 ‘5개년 단계적 전환계획’을 제안했다.
이 안은 정식으로 채택되어 훗날 국방개혁법에도 반영되었다.
문민화는 명령이 아니라 제도와 문화의 병행으로 완성되어야 했다.

하지만 진짜 어려움은 ‘무늬만 문민화’였다.

민간 공무원이 배치돼도 의사결정에 참여하지 못하는 일이 많았다.
나는 매뉴얼을 개정해 민간 공무원의 권한과 책임을 명확히 규정하고,
그들이 단순 보좌가 아닌 실질적 파트너로 존중받도록 했다.

직접 부서를 찾아 실태를 점검하고,
성과가 뛰어난 민간 공무원 사례를 적극 알리며

조직 전체의 긍정적 변화를 이끌었다.
형식적 변화에 머물던 문민화가 점차
국방부의 실제 문화로 뿌리내리기 시작했다.


국방 문민화의 가장 큰 성과는 ‘다양한 시각의 유입’이었다.
군 중심의 시야에 사회적 가치와 시민의 관점이 더해지며
정책은 균형을 얻고 행정은 투명해졌다.
국민의 신뢰 또한 눈에 띄게 높아졌다.


이 변화는 제도를 고치는 일이 아니라
사람의 생각을 바꾸는 일이었다.
문화를 바꾸는 일은 언제나 더디지만,
그 중심에는 사람의 신념이 있었다.

나는 그 신념을 믿었다.

그리고 그 믿음이 국방 행정을 바꾸고,
민간 전문성 시대의 문을 여는 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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