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들어 다시 생각하는 아버지(2)

내가 아버지가 되어 보니 비로소 알게 된 것들

by 황희종

젊은 시절에는 이해하지 못했다.

왜 아버지는 늘 말이 적었는지,

왜 웃는 얼굴보다 굳은 표정이 더 익숙했는지.
그저 세상과 조금 거리를 두는 사람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내가 아버지가 되어보니,
그 침묵이 사랑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는 것을
이제야 알 것 같다.

자식이 아플 때의 불안,
학비를 마련해야 할 때의 막막함,
그리고 아무 일 없는 날에도
‘혹시 내일은 무슨 일이 생길까’ 하는 끝없는 걱정들.
그 모든 것이 아버지의 무표정 뒤에 숨어 있었다.
말보다 책임으로, 웃음보다 인내로 가족을 지켜온 사람.
그것이 아버지였다.


나는 젊은 시절, 아버지가 조금 더 감정을 표현해 주길 바랐다.
때로는 어깨를 두드려주고,
“괜찮다” 한마디 해주길 기다렸다.
하지만 아버지는 늘 똑같았다.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일터로 향했고,
저녁이면 묵묵히 밥을 드시고 방 안으로 들어가셨다.
그 침묵이 서운했다.
그때는 그것이 무심함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내가 아버지가 되고,
두 아들을 키우며 함께 걷고 이야기하는 시간이 쌓이자
이제야 그때의 공백을 이해하게 되었다.


나는 아버지에게서 받지 못한 것을
내 아들들에게만큼은 남기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과 자주 대화하고,
서로의 생각을 주고받으며
서로를 이해하는 시간을 늘려갔다.
때로는 친구처럼 웃고,
때로는 인생의 길을 함께 고민하며,
그들의 눈높이에서 멘토가 되려 애쓴다.
그것이 나에게 주어진 또 하나의 숙제,
아버지를 닮되, 그 한계를 넘어서는 길이다.


아버지가 떠난 뒤,
우리에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집도, 재산도, 유산도 없었다.
오히려 병환 중에 빌려 쓴 빚이 남았고,
그 빚을 갚기 위해 어머니는 하루하루를 버티셨다.
그러나 지금 돌아보면,
그 ‘없음’이야말로 나를 강하게 만든 씨앗이었다.
없다는 건, 내가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었고,
아버지가 남긴 가르침은 바로 그것이었다.

어느 날 문득 거울 속의 나를 보았다.
눈가의 주름, 흰머리
낯설지 않은 표정.
그곳에는 오래전 나를 바라보던
아버지의 얼굴이 겹쳐 있었다.


그 순간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나는 결국, 아버지를 닮아 살아가고 있구나.’

아버지가 경제적으로 남긴 것은 없었지만,
그분의 삶은 나에게 가장 큰 유산이었다.
책임과 성실, 그리고 가족을 향한 묵묵한 헌신.
그것이 내 안에 여전히 살아 있다.
그분의 삶은 나의 나침반이 되었고,
이제는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길을 보여주어야 할 나이가 되었다.

세월이 흘러서야 깨달았다.
사람의 사랑은 말보다 오래 남고,
침묵 속에서도 가장 강하게 빛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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