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젊은 어머니의 단단한 침묵

2. 슬픔을 말로 하지 않고 생활로 견뎌낸 어머니의 첫 모습

by 황희종

아버지를 떠나보낸 뒤, 집안에는 유난히도 적막이 내려앉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어머니는 그 적막을 깨는 법이 없었다.
눈물로 방바닥을 적시는 모습도, 한숨을 길게 토해내는 모습도
그때의 나는 본 기억이 거의 없다.

어머니는 슬픔을 말로 표현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대신 생활로 견디는 사람이었다.


아침이면 늘 하던 대로 새벽 첫 빛이 들기도 전에 일어나셨다.
얼굴이 부어 있고, 체온이 내려앉은 듯 움직임은 느렸지만
어머니는 평소와 다름없는 일상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전날 밤 어떤 슬픔이 있었던들, 그다음 날의 일과가 바뀌는 법은 없었다.

아궁이에 불을 붙이고, 물 한 대야를 데우고,
두 아이가 먹을 아침을 준비하고,
겨우내 굳어버린 빨랫감을 손으로 비비며
어머니는 마치 스스로를 일상 속에 묶어두려는 듯 움직였다.


그 모습을 본 나는 한 가지를 알게 되었다.
어머니는 일상을 지키는 것이 곧 마음을 지키는 길임을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말로 슬픔을 털어놓지 않아도,
그저 불을 지피고 밥을 짓고 우리를 챙기는 그 하루하루가
어머니가 견디는 방식이었다.

점심 무렵이면 문득 어머니의 손등이 내 눈에 들어왔다.
밀가루처럼 하얗게 일어난 피부 위로
작게 갈라진 상처들이 수없이 박혀 있었다.


그 손으로 우리를 먹이고 집을 지켜냄으로써
어머니는 슬픔을 덜어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머니는 누구에게 하소연하는 법이 없었다.
친정도 멀었고, 기댈 어른도 없었다.
형과 누나는 각자의 자리에서 살아내야 했고,
군북 집은 어느새 어머니와 두 어린아이만의 공간이 되었다.

그 작은 집에서 어머니는
말 대신 행동으로 슬픔을 견디고,
눈물 대신 침묵으로 하루를 이어갔다.


나는 그 침묵 속에 담긴 무게를 그때는 알지 못했다.
슬픔이 깊을수록 사람은 말을 잃는다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고 해서 슬픔이 작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오히려 말없이 살아내는 그 시간이
얼마나 고단하고도 외로운 싸움이었는지를.

세월이 한참 흐른 뒤에서야 깨달았다.
어머니의 침묵은 ‘지나가기 위한 침묵’이 아니라
버티기 위한 침묵이었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 버티는 시간들이
우리 가족을 다시 일으켜 세운 어머니의 첫 번째 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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