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격증보다 더 값진 깨달음
퇴직 이후의 시간은 생각보다 길었고,
아무 계획 없이 보내는 하루는
의외로 마음을 무겁게 했다.
일하지 않는다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일일 줄은 미처 알지 못했다.
금오공과대학교 초빙교수 활동을 마친
2022년 늦가을의 어느 날,
퇴직한 국방부 후배에게서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손해평가사 자격을 취득해 활동하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 말이 이상하게 오래 마음에 남았다.
그 무렵의 나는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동네를 산책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겉으로 보기엔 여유로웠지만,
마음 한켠에는
‘이렇게 지내도 괜찮은 걸까’ 하는
작은 불안이 자주 고개를 들었다.
그래서 나는
새로운 도전을 하나 꺼내 들었다.
손해평가사 시험이었다.
책을 사고,
인터넷 강의를 들으며
다시 학생이 되었다.
노트를 펼치고, 문제를 풀고,
계산식을 따라가며
오래 잊고 지냈던 공부의 리듬을
조심스럽게 되찾아 갔다.
그 시간은
결과와 상관없이
나 자신에게 꽤 성실한 시간이었다.
이듬해 봄,
1차 시험은 무사히 통과했다.
짧은 안도감과 함께
‘나도 아직 할 수 있구나’라는
소소한 자신감이 생겼다.
그러나 여름에 치른 2차 시험은
달랐다.
복잡한 계산 문제 앞에서
나는 여러 번 손을 멈췄고,
결국 불합격 통보를 받았다.
의외로 마음은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
실망보다 먼저 떠오른 것은
담담한 질문 하나였다.
나는 정말 이 일을 계속하고 싶은가.
재도전의 기회는 있었다.
그러나 손해평가사의 실제 업무 환경을
하나씩 들여다보며
생각은 조금씩 달라졌다.
장기 출장,
계절에 따라 들쭉날쭉한 일감.....
그 모든 것이
지금의 나와 꼭 맞는 옷은 아니라는
느낌이 분명해졌다.
그래서 나는
이 도전을 내려놓기로 했다.
못해서가 아니라,
맞지 않아서였다.
그 차이는
생각보다 컸다.
비록 자격증은 손에 쥐지 못했지만,
이 과정은 헛되지 않았다.
농작물 피해와 자연재해,
보상과 평가의 구조를 이해하게 되었고,
무엇보다
내 안에 여전히
도전하려는 마음이 살아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실패는 언제나 아프지만,
모든 실패가 좌절로 남는 것은 아니다.
어떤 실패는
다음 길을 보기 위해
필요한 정리의 시간이다.
손해평가사 시험 도전은
나에게 그런 실패였다.
그때 나는 알게 되었다.
도전은 결과가 아니라,
나 자신을 다시 확인하는 과정이라는 것을.
그리고
다음 길로 나아갈 준비가 되었는지를
조용히 묻는 질문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