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톤 화물차로 다시 시작한 삶

도로 위에서 배운 자존의 감각

by 황희종

손해평가사 시험을 내려놓은 뒤,
나는 한동안 아무 일도 하지 못한 채 시간을 보냈다.
사람들은 은퇴 후의 삶을 여행과 취미로 채웠지만,
그 방식은 나와 잘 맞지 않았다.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생각보다 큰 공포로 다가왔다.


나는 여전히 사회와 연결되어 있고 싶었다.
하루의 끝에 “오늘 나는 무엇을 했는가”라는 질문에
답할 수 있기를 바랐다.


그때 떠올린 선택이 1톤 화물차 개인 운송이었다.
완전히 낯선 세계였다.
아내는 반대했다.
위험하고 힘들며,
굳이 그 나이에 왜 그런 일을 하느냐고 했다.
며칠을 두고 설명했다.
다시 하루의 리듬을 찾고 싶어서라고.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던 아내의 표정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자격시험을 보고,
적성검사를 받고,
영업용 번호판을 알아보고,
중고 화물차를 고르는 과정은
생각보다 복잡했다.
공직에서 수없이 많은 제도를 다뤄왔지만,
이 준비는 전혀 다른 종류의 공부였다.
나는 다시 초보자가 되었고,
그 사실이 오히려 마음을 가볍게 했다.


첫 운송은 2023년 11월 14일이었다.
파주에서 합판 여러 장을 싣고 김포까지 달렸다.
운임의 크기보다 그날의 감정이 더 또렷했다.
나는 다시 ‘일하고 있었다’.
다시 사회의 한 자리에 내 몸을 얹고 있다는 감각이
손끝에 남아 있었다.


그렇게 도로 위의 시간이 이어졌다.
수도권 곳곳의 중소기업 현장을 다니며
나는 새로운 리듬에 익숙해졌다.
말수가 적은 사장님들,
짧은 인사,
서류 대신 눈빛으로 주고받는 신뢰.
그 세계에는 불필요한 말이 없었고,
일의 결과만이 남았다.


그 시간 속에서 김포에서 만난
여든셋의 사장님이 기억에 남는다.
그는 오랫동안 이 일을 해왔다고 했다.
주차 요령과 밧줄 매는 법을 말보다 몸으로 보여주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나는 그에게서 직함이 아니라 태도로
일을 이어온 사람의 모습을 보았다.


1년 4개월 동안 나는 453건의 운송을 했고,
주행거리는 4만 킬로미터가 훨씬 넘었다.
숫자는 남지만,
그보다 또렷이 남은 것은 하루하루 책임을 다했다는 감각이었다.


이 시간은 단순한 노동이 아니었다.
공직이 아닌 자리에서 나는 다시 자존을 세웠다.
누군가의 지시가 아니라 내 판단으로 움직이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단순하고 정직한 관계를
다시 배웠다.


1톤 화물차의 운전석은 분명히 좁았다.
그러나 그 안에서 나는 다시 한 번
확장되고 있었다.
삶은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사실을
나는 도로 위에서 배웠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내려놓은 자리에서 다시 배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