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시간은 그렇게 나에게 흘려왔다.

4. 끝내 말하지 못한 고마움

by 황희종

서울에서의 삶은 늘 바빴다.

일은 끝이 없었고, 시간은 늘 부족했다.

어머니는 그 바쁨 속에서 점점 뒤로 밀려났다.

명절에 얼굴을 보고,

생일이면 전화 한 통을 드리고,

용돈을 조금 보내는 것으로

자식의 도리를 다했다고

스스로를 설득하며 살았다.

가끔 안부 전화를 드리면

어머니의 대답은 늘 같았다.

“아픈 데 없다.”

“나는 잘 있으니까 너는 네 일 잘하고

애들 잘 키워라.” 그 말이 전부였다.

어머니의 하루가 어떤지,

어디가 불편한지 더 묻지 않았다.

묻지 않는 것이 어머니를 덜 힘들게 하는 일이라

스스로 위로했다.


그 사이 어머니는 늙어가고 있었다.

조용히,

말없이,

혼자서.


어느 여름날,

휴가를 내어 어머니를 찾았다.

반갑게 이야기를 나누다가

문득 어머니가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언제 오셨습니까?”

순간 말문이 막혔다.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잠시 뒤

어머니는 다시 맑은 정신으로 돌아와

아무 일 없다는 듯 말을 이었다.

그 반복되는 순간들이 더 아팠다.

오랜 시간 혼자 지낸 결과였을 것이다.


형과 의논해 병원 치료를 받도록 하고

나는 다시 서울로 올라왔다.

늘 그랬듯, 내 자리로 돌아갔다.

그로부터 얼마 뒤 다시 뵌 어머니는

나를 전혀 알아보지 못했다.

“누구세요?”

그 질문 앞에서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울며 서울로 돌아오는 길,

발끝이 얼마나 무거웠는지 모른다.

차 안에서 한참을 울었다.

대성통곡을 해 보았지만 그 미안한 마음을

어디에도 내려놓을 수 없었다.


그리고 두 달 뒤, 2006년 4월의 어느 밤,

형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말이었다.

서울을 출발해 내려왔지만 어머니는 이미

하늘나라로 가신 뒤였다.

일흔넷.

아직은 한참 더 살아도 될 나이였다.

아버지를 떠나보낸 뒤

서른네 해 동안

혼자서 자식들을 키웠지만 자식들은 하나둘 떠났고

어머니는 긴 시간을 홀로 견뎌야 했다.

마지막에는

형이 곁에서 모셨지만 그 시간마저 길지는 않았다.

지금에 와서야 안다.

어머니가 끝까지

아프다는 말을 하지 않았던 이유를.


자식의 삶을

끝내 흔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그렇게 자식에게서 멀어지며

자식을 지켜낸 사람이었다.

나는 살아 있는 동안

고맙다는 말을 끝내 다 하지 못했다.


그래서 지금 이 글로 대신한다.

어머니,

늦어서 미안합니다.

그리고

정말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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