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카페공화국이라는 별명이 있다. 전국 카페 수가 10만 개를 돌파하면서, 치킨집과 편의점을 합친 것과 비슷할 정도로 한국에는 카페가 많다. 2020년 기준 한국인이 1년에 마시는 커피는 367잔으로, 전 세계 평균인 161잔의 2배가 넘는다. 인구 100만 명 당 커피 전문점 수는 한국이 1384개로, 미국의 185개와 비교하면 가히 압도적이다.
왜 한국은 이렇게 카페가 많은 것일까? 홍익대 건축학과의 유현준 교수님은 한국이 유독 카페, 노래방, 피시방 등의 공용 공간이 많은 이유를 사적 공간의 부족으로 꼽았다. 국토에 비해 인구 밀도가 높은 우리나라는 대부분 집이 작거나 부모와 사는 경우가 많아 집으로 초대해 놀기가 어려워 카페나 노래방, 모텔 등을 필요로 하게 된다. 반대로 국토가 넓은 미국은 집이 넓거나 부모와 따로 사는 경우가 많아 집으로 초대해 넷플릭스를 보거나 홈파티를 여는 문화가 발달했다는 것이다.
이유야 어찌 됐든 한국의 카페 문화는 특이하다. 필자 역시도 카페 탐방을 좋아하기 때문에, 이번엔 한국의 카페 문화가 어떻게 시작되었고 발달하게 되었는지 여러 회차에 걸쳐 살펴보려고 한다. 그 시작은 단연 스타벅스다.
원두커피가 믹스커피에 비해 유리한 것은?
믹스커피 맥심 (이미지 출처: 쿠팡) 카페 문화가 발달하기 전 2000년대 초, 한국의 커피 산업은 믹스커피가 점령한 상태였다. 미군들이 들고 온 인스턴트커피가 산업화가 이뤄지던 시절 한국의 '빨리빨리' 문화와 맞물려 한국인을 사로잡은 것이다. 이런 한국에 원두커피를 기반으로 카페 사업을 시도한 회사는 스타벅스가 처음이 아니었다. 국내에선 쟈뎅이라는 브랜드가 생겨났고, 일본에서는 도토루라는 프랜차이즈가 한국에 진출했다. 그러나 둘 다 믹스커피를 이기지 못하고 결국 국내 카페 산업에서 발을 빼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원두커피가 믹스커피를 이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단순히 원두커피가 더 품질이 좋고 맛있다는 이유로는 부족해 보인다. 그랬다면 스타벅스 이전에 들어온 커피전문점들도 성공했어야 했고, 믹스커피에 입맛이 맞춰진 한국인에게 원두커피의 맛은 생소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스타벅스가 앞선 카페들보다 커피가 훨씬 맛있었던 것일까? 그런 분석은 아무래도 주관적이라 설득력이 높지 못하다. 그러니 구조적으로 원두커피는 믹스커피에 비해 어떤 장점이 있을지 좀 더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자.
'공간'을 제공할 수 있는 원두커피
우선 커피가 속한 F&B(Food and Beverage) 산업이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는지 살펴보자. F&B 산업은 크게 식음료를 제조·유통만 하는 형태와, 식당에서 식음료를 직접 판매하는 외식업으로 나눌 수 있다. 사실 음료의 경우 외식업에 유리하지 않다. 생각해 보면 음식은 대부분의 종류에서 전문 식당이 있지만, 커피나 술을 제외한 음료 전문 매장을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음료는 메인메뉴보단 사이드메뉴에 가까우니 당연히 그렇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음료는 왜 외식업이 가능할 정도로 메인메뉴가 되지 못했을까? 그리고 그 와중에 커피와 술은 왜 전문점이 생겨날 수 있었을까?
이를 알아보기 위해 사람들이 외식을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자세히 살펴보자. 크게 다음과 같이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1] 식사에 관한 측면
1) 식당에 가서 먹는 게 더 맛있어서
2) 직접 요리를 하는 게 번거롭거나 어려워서
[2] 식사 외적인 측면
1) 취식 외에 다른 행위(Ex. 대화)를 같이 할 공간이 필요해서
2) 음악, 인테리어, 다른 손님 등으로 인한 집이나 사무실과는 다른 분위기가 필요해서
이 중 [1]의 이유를 충족시키기 위해선 본질적으로 제조 과정에 '변수'가 많아야 한다. 어떤 원재료를 쓰느냐, 얼마나 숙성을 시켜야 하냐, 조리사의 역량이 뛰어나냐 등의 변수에 따라 맛이 달라질 수 있어야 직접 요리를 해서 먹는 맛과 식당에서 먹는 맛이 차이가 날 수 있다. 또한 변수가 많은 음식이어야 조리의 과정이 복잡하기 때문에 직접 요리를 하는 것에 번거로움이 커진다. 음식은 보통 변수가 많지만, 음료는 비교적 변수가 적고 레시피만 안다면 동일한 결과물을 내기 용이하다. 그렇기 때문에 음료는 전문점을 내기보단 대량생산을 통한 제조업으로 운영되기 쉽다.
그러나 음료 중에도 변수가 많은 제품들이 있다. 바로 술, 차, 커피다. 이 음료들은 원두, 보리, 찻잎 등의 종류에 따라 맛이 달라지고, 얼마나 오래 숙성시켰느냐에 따라도 맛이 달라지고, 어떻게 음료를 내렸느냐에 따라도 맛이 달라진다. 이들은 전문점을 만들어도 충분히 사람들이 찾아오게 만들 수 있는 특성이 있다.
심지어 이들은 음식에 비해 [2]의 이유도 충족시키기 쉽다. 음식은 부피가 커서 자리를 많이 차지하고, 음식을 수저로 들어야 하고 입으로 계속 음식을 씹어야 하는 등 취식에 많은 행동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취식 이외에 다른 행위를 같이 하기 쉽지 않다. 그러나 음료는 자리도 많이 차지하지 않고, 마시기만 하면 되니 가볍게 먹을 수 있어 대화나 업무 등 다른 행위를 같이 하기가 쉽다. 카페인, 알코올 등의 성분으로 인한 효능과 향과 산미를 기반으로 한 독특한 맛은 일상과 다른 분위기와 이어지기도 쉽다.
이 지점에서 원두커피가 믹스커피를 이길 가능성이 있는 요소가 나온다. 애초에 완제품으로 설계된 믹스커피는 조리 과정에 변수가 거의 없어, 커피임에도 불구하고 외식에 적합하다는 커피의 이점을 살릴 수 없다. 반면 원두커피는 [1]에서 살펴봤듯 식당까지 사람들을 방문하게 만들 요소도 충족하고, [2]에서 살펴봤듯 식당이 가질 수 있는 취식 외적인 요소와도 잘 어울린다. 다시 말해서, 원두커피는 믹스커피는 본질적으로 가질 수 없는 '공간'을 활용할 수 있다.
고급 브랜딩에 유리한 원두커피
F&B 산업을 분석해 보면, 원두커피만이 가질 수 있는 특징이 공간 이외에도 하나 더 있다. F&B 산업은 사실 브랜드의 고급화가 쉽지 않다. 브랜드 가치가 높으려면 브랜드를 노출할 수 있는 요소가 많아야 한다. 그래야 남에게 과시할 수도 있고, 브랜드 이미지를 고객이 느끼기도 쉽기 때문이다. 차와 전자기기, 옷은 브랜드를 노출할 수 있어 남에게 나의 취향을 드러내거나 소비력을 과시할 수 있다. 나이키 브랜드가 그려져 있는 신발을 신으면 내가 스타 스포츠 선수가 된 듯한 열정과 도전정신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음식은 브랜드를 노출하기가 어렵다. 음식에 로고를 그려놓을 수도 없는 노릇이며, 수저는 로고를 그리기엔 너무 작고, 그릇은 음식에 가려져 브랜드가 잘 안 보인다. 어떻게든 로고를 그려놓는다고 하더라도, 식당 밖을 나서는 순간 브랜드는 더 이상 노출되지 못한다. 음료는 반면 컵, 캔 등 음료에 가려지지 않는 용기에 담기 때문에 브랜드를 노출시키기 쉽다. 휴대도 용이하기 때문에 식당을 벗어나더라도 브랜드가 노출될 수 있다.
글로벌 100대 브랜드 (출처: interbrand) 실제로 브랜드 노출과 브랜드 가치의 상관관계를 살펴보자. 브랜드 컨설팅 전문업체 인터브랜드가 발표한 Top 100에 올라온 F&B 브랜드는 코카콜라(7위), 맥도널드(11위), 펩시(32위), 버드와이저(44위), 네스카페(45위), 스타벅스(51위), 레드불(64위), 네슬레(67위), 켈로그(78위), 코로나(80위), 헤네시(93위), KFC(94위), 하이네켄(95위)의 13개다. 이 중 10개(77%)가 음료 회사며, 나머지 3개마저도 포장을 통해 브랜드 노출이 가능한 패스트푸드거나 과자다.
그런데 노출만 잘 된다고 브랜드가 고급화되는 것은 아니다. 가장 순위가 높은 코카콜라를 우리는 고급스럽다고 인식하지는 않는다. 노출이 많이 될 뿐만 아니라, 실제로 제품이 높은 가치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음식은 고급스러운 원재료나 전문 요리사의 조리를 통해 제품의 가치를 높일 수 있지만, 음료는 앞서 살펴봤듯이 제조 과정에서 부가가치를 창출할 변수가 적어 제품의 고급화가 어렵다.
살펴보니 음식은 제품의 고급화가 가능하지만 브랜드 노출이 어렵고, 음료는 브랜드 노출이 쉽지만 제품의 고급화가 어렵다. 이 때문에 F&B는 기본적으로 브랜드의 고급화에 불리하다. 그러나 음료지만 변수가 많아 고급화가 가능했던 제품들이 있었다. 바로 술, 차, 커피다. 그렇다. 커피는 F&B 내에서 높은 빈도의 브랜드 노출과 제품의 고급화가 동시에 가능한 몇 안 되는 제품이다.
그리고 이러한 커피의 특징을 믹스커피는 역시나 활용할 수 없다. 조리의 변수를 없앤 완제품은 제품의 고급화가 어렵기 때문이다. 원두커피는 믹스커피가 가질 수 없는 '브랜드의 고급화'를 활용할 수 있었다.
스타벅스 굿즈 (출처: 스타벅스 코리아 홈페이지) 커피에 유독 굿즈가 많은 것도 커피가 브랜딩에 유리하다는 방증이다. 매년 행사마다 대박을 치는 스타벅스의 굿즈는 말할 것도 없고, 맛으로 승부한다는 블루보틀마저 굿즈가 매출 비중의 40% 이상을 차지한다. 다른 프랜차이즈나 개인 카페들도 로고를 그려 넣은 텀블러와 컵을 판매하곤 한다. 생각해 보면 이렇게까지 굿즈 사업이 발달한 F&B는 잘 없다. 최근에야 노티드, 새우깡, 카스 등에도 굿즈가 있기는 하지만 이들도 비슷한 논리가 적용되는 제품들이다.
스타벅스의 '공간'과 '브랜딩' 전략
지금까지 '공간'과 '고급 브랜딩'이 믹스커피와의 차별점이 될 수 있는 요소임을 살펴보았다. 이제 이 원두커피의 장점들을 어떻게 살릴 수 있을지 생각해 보자.
먼저 공간은 어떻게 활용해야 할까? 단순히 장소 제공의 가치만으로도 믹스커피를 이길 수 있다면 당시 커피를 팔던 다방도 믹스커피에 밀려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다방은 믹스커피의 등장 이후 몰락의 길을 걸었다. 좀 더 구체적이고 양질의 가치를 공간을 통해 제공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앞서 '[2] 식사 외적은 측면'에서 살펴본 공간의 이점은 1) 취식 이외의 다른 행위, 2) 공간의 분위기였다.
1)을 구체적으로 다시 나눠보면 다음과 같다.
타인과의 상호작용 (Ex. 같이 온 사람과의 대화, 종업원의 고객 응대 등)
자신의 개인적인 용무 해결 (Ex. 업무, 공부 등)
이런 공간만의 이점을 살리기 위해 스타벅스는 고객의 닉네임을 부르며 음료를 제공하는 등 종업원과 손님의 상호작용에 힘썼고, 개인적인 용무를 볼 수 있도록 무료 초고속 무선인터넷과 콘센트를 모든 매장에서 제공한다.
2)는 다소 주관적인 영역이지만 구체적으로 좋은 분위기를 제공해 보려 노력해 보자. 분위기는 감각을 통해 인식할 수 있고, 감각은 오감으로 나눌 수 있다. 그중 미각은 공간이 아닌 취식에서 좌우되는 요소이므로 제외하고 생각해 보자. 살펴보면 스타벅스는 각 영역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노력을 해왔다.
시각: 따뜻한 색상의 조명, 고급스러운 인상의 원목 테이블, 커피를 내리는 바리스타의 모습 등
청각: 음악 전문 회사의 인수, 편안한 분위기로 선별된 재즈, 팝, 클래식 음악
후각: 커피 향기로 가득한 매장
촉각: 아늑하고 편안한 소파와 의자
이렇게 그 유명한 스타벅스의 '제3의 공간' 전략이 등장했다. 공간을 가지고 있는 비즈니스는 카페가 아니어도 많지만, 공간을 활용하는 전략이 카페인 스타벅스에서 탄생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커피는 다른 제품들에 비해서도 특히나 공간과 합이 좋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믹스커피는 이를 전혀 살리지 못하는 비즈니스 형태였고, 스타벅스 이전의 다방과 카페들은 커피의 장점을 살리는 방법이 '공간'임을 파악하지 못했다.
* 스타벅스마저도 핵심이 '공간'에 있었음을 잊은 적이 있다. 스타벅스는 2008년에 전년 대비 주가와 영업익이 절반 가까이 감소하면서 큰 위기를 겪었다. 당시 CEO로 복귀한 하워드 슐츠는 공간의 가치를 잃어버린 것을 문제로 지적했다. 매출 증진을 위해 판매하던 치즈 샌드위치의 강한 냄새는 커피 향기를 해쳤고, 빠른 커피 공급을 위해 미리 원두를 분쇄해 놓는 방식은 손님들이 바리스타와 상호작용할 수 있는 시간을 없앴다. 슐츠가 이런 부분들을 예전의 방식으로 되돌리자 스타벅스는 다시 성장할 수 있었다.
'고급 브랜딩'도 살펴보자. 브랜드 가치를 높이기란 말처럼 쉽지가 않다. 원두커피가 브랜드의 고급화에 유리하다고 해서 원두커피를 팔면 저절로 브랜드가 잘 되지는 않는다. 신생 브랜드가 브랜드를 통해 가치를 창출하려면 먼저 1. 사람들이 브랜드를 인지하게 만들 수 있어야 하고, 2. 브랜드의 이미지를 사람들에게 인식시킬 수 있어야 한다. 전자에 중요한 것이 이슈화/마케팅 역량, 후자에 중요한 것이 브랜드 경험 일관성이 되겠다.
앞서 언급했었듯 스타벅스 이전에도 브랜드를 가진 카페가 등장했었다. 국내 브랜드인 쟈뎅과 일본 브랜드인 도토루다. 이들은 사람들에게 브랜드를 인지하게 만들 역량이 부족했다. 쟈뎅은 국내에서 만들어진 신생 브랜드였기 때문에 이슈화가 될만한 요소가 부족했으며, 도토루가 한국에 진출했던 1988년은 한국의 해외여행 자유화 이전이었기 때문에 이미 가지고 있던 브랜드 파워를 사람들이 인지하기가 어려웠다.
반면 스타벅스는 신세계라는 대기업을 뒤에 업어 국내에서 이슈화되거나 홍보를 하기에 충분한 배경을 갖췄고, 해외여행 자유화가 이루어진 1989년보다 10년이 더 지난 후 한국에 들어왔기 때문에 해외여행을 다녀온 사람들로부터 브랜드가 알려지기에도 충분한 상황이었다.
이화여대 앞의 스타벅스 코리아 1호점(출처: 스타벅스 코리아 홈페이지) 1호점을 이화여대 앞에 낸 것도 굉장히 전략적이었다. 당시 이화여대 앞은 번화가일 뿐만 아니라, 패션의 메카로서 소비자들의 반응을 살피기 위한 매장이 많았다. 대학생을 필두로 한 젊은 고객이 많은 곳이자 패션의 트렌드를 선도하는 장소였기 때문에 사람들이 새로운 브랜드를 받아들이기에 유리했을 것이다. 또한 외식업에선 다른 고객들에 비해 젊은 여성 고객층이 입소문이 나기에도 유리하다. 젊은 여성층은 새로운 장소를 발굴하고, 이를 SNS에 올리거나 주변 사람들을 함께 데리고 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여러모로 이화여대 앞에 1호점을 낸 것은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기에 적절했다.
스타벅스는 브랜드 인지도뿐만 아니라, 사람들에게 어디서든 동일한 브랜드 경험을 제공하는 데에도 많은 신경을 썼다. 스타벅스는 1천900개가 넘는 매장을 운영하는 지금까지도 모든 매장을 직영점으로 운영하고 있다. 직영점은 브랜드 본사가 직접 직원을 뽑고 관리 및 운영을 하기 때문에 일정 수준 이상의 퀄리티를 보장하고 매장별로 동일한 경험을 제공할 수 있다. 스타벅스는 직원 또한 아르바이트를 고용하지 않고 모두 정식 직원으로 고용하며, 직원들은 모두 철저한 교육을 받고 업무를 시작한다. 원두 역시 동일한 브랜드 경험을 위해 '강배전' 원두를 택했다. 강배전은 강하게 볶은 원두를 말하는데, 원두의 본래 향을 살리기 어려운 대신 맛이 강렬하기 때문에 커피를 내릴 때마다 일정한 맛을 내는데 유리하다. 이 때문에 스타벅스 커피는 탄맛으로 유명하지만 매장별로 커피맛의 편차가 적다.
카페베네 로고 브랜드 인지도와 일관성을 모두 잘 챙기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이들을 모두 챙기지 못한 대표적인 사례가 카페베네다. 카페베네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드라마 PPL 광고와 스타마케팅을 통해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고 급속도로 성장했다. 이렇게 최단기 최대 매장 수 돌파라는 쾌거까지 이뤄낸 카페베네를 지금은 주변에서 보기가 쉽지 않다. 가맹점 위주로 급속하게 매장이 늘어나자 매장별로 맛과 경험의 편차가 컸다. 어디서는 커피가 괜찮아도 어디서는 커피 맛이 없으면 브랜드 전체의 이미지에 치명적인 타격을 준다. 부정적인 이미지 속에서 어디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카페가 되니 브랜드 가치는 낮아질 수밖에 없었다. 인지도에 기반해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한 카페베네는 현재는 매년 적자를 보고 있으며 매장 수는 1/3 수준으로 감소했다.
반면 인지도와 일관성을 모두 세심하게 신경 쓴 스타벅스는 강력한 브랜드 파워를 가지는 데 성공했다. 당시 스타벅스의 아메리카노 1잔의 가격은 2,500원이었는데, 이는 밥보다도 비싼 가격이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세이렌이 그려져 있는 커피컵을 들고 다니기 시작했다.
* 스타벅스도 브랜딩을 신경 쓰지 못한 사례도 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브랜드인 스타벅스도 사업에 실패한 나라가 있다. 바로 호주다. 호주는 커피의 나라로 불릴 만큼 커피가 유명한 곳이고, 당연히 스타벅스 진출 이전에도 카페 문화가 자리 잡아 있었다. 한국과는 달리 해외 브랜드라고 해서 브랜드 가치가 높게 다가오지 않는 환경이었던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스타벅스는 브랜드가 사람들 속에 자리 잡기도 전에 점포 수를 너무 많이 늘려 그저 그런 흔한 브랜드가 되어버렸다. 스타벅스가 한국에서 고급 브랜딩에 성공했던 것은 브랜딩에 유리한 제품으로 브랜딩을 잘하는 기업이, 브랜딩에 유리한 시점에 진출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스타벅스의 성공 요인으로 '공간'과 '브랜딩'을 살펴보았다. 과연 이 두 요인이 스타벅스를 성공으로 이끌었다고 할 수 있을까? 당시 사람들에게 스타벅스 커피를 산 이유를 직접 물어볼 순 없으니 데이터로 뒷받침할 순 없다. 그냥 스타벅스의 커피맛이 사람들을 사로잡은 것일 수도 있다. 다만 다음의 이유를 들어 충분히 다른 요인들에 비해 중요한 성공 요인이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1. 공간과 브랜딩은 커피에게 적합한 전략이었고, 믹스커피는 이를 활용할 수 없었다는 점
2. 스타벅스 이전에 두 요소를 잘 살린 카페는 없었고, 그들은 실패하고 스타벅스는 성공했다는 점
3. 스타벅스 역시도 두 요소를 신경 쓰지 못했을 때 위기를 겪었다는 점
스타벅스'만'이 할 수 있는 전략은?
그러나 '공간'과 '브랜딩'은 스타벅스의 차별점이라기보단 원두커피의 차별점에 가깝다. 이전까지는 해당 요인들이 중요한지 몰랐다 하더라도 스타벅스의 성공을 봤으니 이제는 이 둘을 살릴 수 있는 역량을 가진 원두커피 카페가 충분히 후발주자로 들어올만하다.
스타벅스 강남역신분당역사점 실제로 더 이상 '제3의 공간'은 스타벅스만의 전략이라고 보기엔 무색하다. 카페를 제3의 공간으로 활용하는 일은 굳이 스타벅스가 아니어도 가능하며, 편안하고 예쁜 분위기의 공간은 다른 카페들도 충분히 제공하고 있다. 서울시 한복판인 강남역엔 스타벅스지만 공간이 없는 테이크아웃 전문 매장도 있다.
브랜딩도 마찬가지다. 많은 해외 브랜드들이 국내에 진출하고 있으며, 투썸플레이스(CJ), 엔제리너스(롯데), 파스쿠찌(SPC) 등 대기업을 뒤에 업은 카페는 이제 흔하다. 폴바셋은 스타벅스와 동일하게 100% 직영점으로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스타벅스가 이런 상황에서 차별점을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커피에서 차별점을 낼 수 있는 요소를 한 번 살펴보자. 크게 음식과 음식 외적 요소로 나눌 수 있을 것 같고, 음식에는 '커피의 맛'과 '커피 외의 다른 메뉴'가, 음식 외적 요소에는 '공간' 정도가 있을 것 같다. 허나 이들은 모두 차별점이 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많은 매장 운영을 위해 대량 생산을 하면서도 일정한 맛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커피의 맛에 특별한 변화를 주기가 어렵다. 커피와 어울리는 다른 메뉴는 가벼운 식사나 디저트, 빵 정도가 있을 텐데 이것들은 다른 카페도 똑같이 팔면 된다. 그리고 판매를 시작하더라도 커피를 팔고 있는 던킨이나 맥도널드, 파리바게트와 같은 타 프랜차이즈와도 경쟁을 해야 한다. 공간에도 다른 카페들이 따라 하지 못할 만한 특별한 요소는 크게 없어 보인다.
그러나 차별점을 만들기 어려운 건 스타벅스뿐만 아니라 다른 카페들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스타벅스는 가장 먼저 시작했다는 선두주자라는 이점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선두주자로서 유리한 점은 무엇일까? 앞서 살펴본 '공간'과 '브랜딩' 중 공간은 쌓이는 가치가 아니기 때문에 후발주자도 똑같이 따라 하면 되므로 이점이 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브랜드 가치는 선두주자로서 먼저 쌓아 올린 것이 이점이 될 수 있다. 브랜드 가치가 더 높다는 말은, 유사한 서비스/재화를 제공받아도 우리 브랜드를 선택하게 만들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오프라인 사업이라는 특성상, 스타벅스가 더 좋은 브랜드라고 인식해도 다른 브랜드를 선택하게 만들 요소가 있다. 바로 '접근성'이다.
소비자들의 카페 이용 이유 (출처: 오픈서베이 카페 트렌드 리포트 2023) 실제로 카페에 접근성은 매우 중요한 요소로 보인다. 소비자 데이터 플랫폼 오픈서베이에 따르면, 스타벅스가 속한 대형·고가 커피 프랜차이즈를 방문하는 이유는 '집에서 가까워서(27.5%)'가 '기프티콘을 사용하기 위해서(34.1%)' 다음으로 많았다. 맛으로 승부하는 스페셜티 커피도 '집에서 가까워서(23.1%)'가 2위를 차지했는데, 이는 1위인 '음료가 맛있어서(24.4%)'와 1% 정도밖에 차이 나지 않았다. 가격으로 승부하는 저가 커피에서도 '집에서 가까워서(45.8%)'가 2위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스타벅스는 접근성을 적극적으로 공략하기 시작했다. 스타벅스는 유동인구와 접근성을 고려해 치밀하게 입지를 선정하기로 유명하다. 매장 수도 적극적으로 늘렸다. 이제는 좀만 걸어가면 스타벅스는 어디에서나 찾아보기 쉽다. 실제로 스타벅스 매장은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 중 국내에서 가장 많으며,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2017년에 매장접근성은 스타벅스가 카페 중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다.
그러나 접근성을 높이니 또 문제가 하나 생긴다.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흔한 브랜드가 되니, 브랜드 가치가 떨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브랜드 가치는 희소성이 있어야 높아진다. 이를 스타벅스는 또 영리하게 해결했다. 굿즈에 브랜드 희소성을 이양한 것이다. 스타벅스는 상품기획팀이 따로 있어 굿즈 개발에 많은 힘을 들이고 있으며, 매년 새롭게 기획되는 굿즈를 한정판으로 판매해 희소성을 높였다. 이런 스타벅스 굿즈는 잘 알다시피 매번 대란을 일으키고 있다. 심지어 굿즈를 얻기 위해 300잔의 커피를 산 뒤 굿즈만 챙기고 커피는 버린 사례까지도 있었다. 이처럼 굿즈는 단순한 이벤트가 아닌, 선두주자로서 브랜드 가치가 높은 스타벅스만이 할 수 있는 전략이었다.
차별점을 만들어낸 카페들의 등장
앞서 카페 사업에서 차별점을 만들기 어려움을 살펴보았었다. 그러나 사실 차별점을 만드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우리 기업만 할 수 있는 방향이 없다면, 방향은 같더라도 '정도'에서 차이를 주는 방법도 있다. 맛과 공간, 메뉴를 양질의 가치로 제공하는 일은 모두가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선택과 집중을 통해 한 가지 요소에 많은 투자를 들여 다른 카페들보다 높은 가치를 제공한다면 이는 차별점이 될 수 있다. 맛으로 대표되는 블루보틀이나, 디저트로 대표되는 투썸플레이스처럼 말이다.
스페셜티 커피 브랜드 '블루보틀' 실제로 이제는 블루보틀과 테라로사같은 스페셜티 카페들과 특색 있고 넓은 공간을 만들어낸 교외 대형 카페들이 많이 생겨났다. 그리고 이들은 명확한 차별점이 있기 때문에 스타벅스에 큰 위협이 될 수 있다. 심지어 맛과 공간은 브랜딩에도 유리하다. 스타벅스가 제품의 고급화를 통해 만들어낸 브랜딩으로 믹스커피를 이겼듯이, 스페셜티 커피 브랜드도 동일한 전략이 가능할 수 있다. 공간은 경험과 체험으로 가득하기 때문에 고객들에게 강한 브랜드 이미지를 남긴다.
스타벅스 더북한산점 (출처: 스타벅스 코리아 홈페이지) 이에 스타벅스는 각각에 대해 동일한 대응을 하고 있다. 고급 원두를 추출 및 판매하는 특수 매장인 '스타벅스 리저브'를 운영하기 시작했고, '더제주송당파크R점', '더북한산점', '더여수돌산DT점' 등 도심에서 벗어난 교외에 특색 있는 인테리어와 주변 자연환경과 조화를 이룰 수 있는 매장들도 만들어나가고 있다.
가치를 높이는 방향이 아니라 낮추는 방향도 가능하다. 메가커피나 컴포즈커피처럼 가치를 낮추고 낮은 가격으로 승부할 수도 있다. 고물가 시대에 저가 커피들도 충분히 스타벅스를 위협할 만하다. 실제로 스타벅스 커피값이 비싸다는 반응도 이제 종종 보인다.
과연 이런 상황 속에서 스타벅스는 계속해서 압도적인 1위를 유지할 수 있을까? 블루보틀과 같은 카페들은 어떻게 일정한 맛이 중요한 프랜차이즈임에도 불구하고 맛으로 차별점을 만들 수 있었을까? 접근성이 떨어지는 교외 카페들은 어떻게 고객을 끌어들일 수 있었을까? 저가 커피들은 어떻게 커피가 그렇게 싼 걸까? 스타벅스가 그만큼 많은 이익을 남기고 있는 걸까? 이런 물음들에 대한 답은 다음 회차들에서 좀 더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다.
지금까지 스타벅스는 한국에서 어떻게 성공할 수 있었는지 살펴보았다. 스타벅스는 공간과 브랜딩을 통해 믹스커피를 이겼고, 접근성과 굿즈를 통해 선두주자로서 높은 브랜드 가치라는 이점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그리고 현재는 스타벅스를 위협할만한 차별점을 만들어낸 카페들이 등장했다. 스타벅스를 방문하게 된다면 나는 지금까지 왜 스타벅스를 이용해 왔는지, 그리고 지금의 고객들이 스타벅스를 선택할 이유는 무엇일지 독자들도 고민해 봐도 좋을 것 같다는 말을 남기면서, 카페 산업 ep 1을 마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