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코 의미 없는 일은 없다. 아니더라도 그렇게 믿고 살아가려 한다.
2022년 5월 13일에 적은 글을 조금 수정해서-.
작년에 들었던 한 수업은 나에게 있어서 특별했다. 특별한 이유는 셀 수 없이 많지만, 그중에서 한 가지를 뽑자면 교재를 읽고 든 생각을 질문과 그에 대한 답변으로 정리해서 강의 카페에 회원공개로 리포트를 올리는 것이었다. 나는 다른 사람의 글을 읽는 것을 좋아하기에 시간이 날 때마다 강의 카페에 들어가서 다른 사람의 리포트를 읽곤 했다.
평소 수업에 열심히 참여해서 기억에 남는 분이 있었다. 그날 그분의 리포트를 읽는데 충격을 받았다. '아, 이 사람은 정말 진솔하게 자기 경험을 쓰고 있구나!' 보면서 감동을 받았다. 그리고 나와 같은 경험을 많이 한 것 같아서 씁쓸하고 동정심도 갔다. (지금 다시 생각하면 비슷한 경험을 했기에 깊게 공감하고 큰 감동을 받은 것 같다.) 그래서 나도 진짜 솔직하게 내 경험을 담은 글을 쓰고 싶어서 2021년 겨울에 본 내 수능 후기를 적는다.
나의 마지막 입시 이야기이다. 적으면 뭔가 후련해질 것 같아서. 적고 나서 올릴 때 정말로 후련할지는 모르겠지만.
2020년부터 갑자기 몸이 많이 안 좋아졌다. 원래 좋지 않았던 몸이지만, 일상생활이 힘들 정도로 몸이 많이 안 좋아졌다. 기침이 하루종일 나왔다. 기침이 하루종일 안 멈춰서 그냥 하루종일 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국어 한지문을 풀다가 기침이 나오면 2시간 동안 누워서 기침만 하다가 지쳐서 다시 자고, 일어나서 기침하다가 다시 자고, 몸이 조금 나아져서 살 만하면 바짝 독서실을 다녔다. 그러다가 기침이 다시 심해지면 집에 박혀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내가 어떻게 버텼는지 모르겠다.
원인은 알 수 없었다. 여수에 있는 호흡기내과, 이비인후과는 다 돌아다닌 것 같다. 그래도 안되니까 순천에 있는 병원에도 가봤다. 병원들을 다녀도 원인을 찾기 힘들었다. 그래서 그냥 처방받은 약을 한주먹씩 먹고 잠에 깨있을 때는 약기운에 헤롱거렸다. 엄마아빠는 출근하기 전에 내 코 밑에 손가락을 한 번씩 대보고 출근을 하셨다. 약기운 때문에 곤히 자는 건지 확인하려고 하신 것 같다. 그때 엄마아빠의 마음은 어땠을까.
아무튼 몸상태가 너무 안 좋으니까 2021년에 대학을 다닐 수 없을 것 같기도 했고 서울에 있는 대학병원에 다니면 치료가 되지 않을까, 그러면 공부를 제대로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2021년에 다시 수능을 준비했다. 하지만, 서울에 있는 대학병원을 다녀도 낫지 않았고, 그 해 수능까지 몸상태가 좋아지질 않았다.
그래서 도저히 다른 수험생들과 같은 교실에서 수능을 볼 수 없겠다고 판단한 나는 교육청에 연락을 했다. 나의 상황을 설명하면서 편의를 봐주실 수 있겠냐고 물어봤다. 그러면서 병원에서 지금까지의 내 몸상태를 적은 진단서를 교육청에 제출했다. 교육청에서는 내 편의를 봐주겠다는 학교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때부터 우리 가족은 긴장을 했고 간절히 기도를 했다. 제발 편의를 봐준다는 학교가 나오길!
하늘이 도운 건지 딱 한 학교에서 내 편의를 봐주겠다고 연락이 왔다. 우리 집에서 차 타고 30분 정도 걸리는 먼 동네의 학교였다. 그래도 너무 감사했다.
(이 상황에서 가까운 학교에서 편의를 안 봐준다고 하는 건 너무 이기적이다.)
2021년 11월 18일
대망의 수능날이다.
아빠가 수능장까지 차로 태워다 주셨다. 그때의 나는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그냥 현실이 아닌 것 같았다.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다. 긴장해야 할 딸은 긴장을 안 하고 옆에 있는 아빠가 훨씬 긴장한 상태였다. 이때 라디오에서 수능을 응원한다고 가호의 '시작'을 틀어주었다. 나는 아직까지 이 노래를 잘 못 듣겠다. 그때의 힘든 감정들이 스쳐 지나가서 듣기가 힘들다.
수능장에 도착하고 로비에 들어가면서 안내 선생님께 교육청에 미리 연락드렸다는 말을 전했다. 그러니 선생님은 자기를 따라오라고 하면서 꼭대기층으로 올라갔다. 그러면서 내가 수능 볼 교실문 앞에서 여기라고 말을 하시고 내려가셨다. 꼭대기층의 다른 교실들과 떨어진 화장실 옆의 교실이었다. '여기서 수능을 본다고?'라는 생각이 들만한 생소한 위치의 교실이었다.
교실문을 열고 모든 게 장난이고 거짓말인 줄 알았다. 교실 한가운데에 책상 한 개만 덩그러니 있었다. 그냥 보자마자 웃었다. 이 정도로 편의를 봐주실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코로나 확진자나 확진 의심자와 같이 수능을 보는 줄 알았다.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나에게 신경을 많이 써주셔서 감사했다. 오로지 나만을 위한 교실이었다.
이렇게 기분이 이상하게 붕 뜬 사이 시험령이 울렸다. 감독관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여기서 또 한 번 놀랐다. 수험생은 나 혼자인데 감독관 선생님이 두 분이셨다. 심지어 한 분은 내가 나온 고등학교의 국어 선생님이셔서 깜짝 놀랐다. 아는 분이라 마음이 더 놓였다. 그리고 여수가 좁기는 좁구나하는 생각도 들었다. 교실의 앞과 뒤에 한분씩 계셨다. 그렇게 철통보안 속에서 수능을 쳤다. 수험생 한 명에 감독관 2명이라 2배는 더 긴장이 됐던 것 같다.
(위 사진에서 뒤에 감독관 선생님 한 분 더 계시면 내가 수능 본 환경과 똑같다.)
아침에 약을 먹고 등 뒤에 패치를 붙여서 기침은 많이 했지만, 흉통이 있지는 않았다. 막 기침해도 아프지는 않았다. 다행이긴 한데, 시험 보는 내내 속이 울렁거렸다. 화장실 가서 좀 게워내고 다시 들어오고 물 마시고를 반복했다. 이때 감독관 선생님들이 신경을 많이 써주셨다. 지금 생각해도 너무 감사하다.
근데 다른 애들이 내가 수능 보는 교실이 신기했는지(나조차도 신기했으니 이해가 간다.) 쉬는 시간마다 내가 있는 교실 문을 열었다 닫았다를 반복했다. 완전 동물원의 원숭이가 된 느낌이었다. '나 삼수생이니까 예민하게 만들지 말고 꺼져.'라고 하고 싶었지만 나는 교양 있는 삼수생이었기에- 그냥 참았다. (사실은 그냥 소심한 삼수생이다.)
솔직히 몸이 안 좋아서 멘털이 다 터졌다. 겨우겨우 시험을 봤다. 그래도 중간에 영혼 날아갈 뻔한 거 잡고 끝까지 시험을 봤다. 망했다는 느낌이 막 올라왔다. 꾹 참고 봤다. 엄마아빠 생각을 하면서.
어찌어찌하다 보니 수능이 끝났다. 그냥 모든 게 다 허무했다. 수능을 보면서 가장 크게 느낀 것은 '내가 여기서 더 한다고 잘 볼 수 있을까?'에 대한 답은 'no'라는 것. 그리고 이 수능이 뭐라고 지금까지 마음고생을 그렇게 심하게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울컥했다.
머릿속이 한창 복잡할 때 감독관 선생님이 12년 동안 너무 수고했다고 해주셨다. (14년이에요.. 선생님..) 근데 그 말이 왜 엄마아빠가 수고했다고 한 것보다 더 마음에 남는지- 그 선생님은 그날 처음 보는 선생님이었는데.
위 사진은 내가 남겨두고 온 자릿세이다. 수능날 자릿세라고 작은 간식을 주는 것은 내 로망이었다. 포스트잇을 가져오지 않아서 급하게 요점정리 노트의 귀퉁이를 찢어서 감사인사를 짧게 쓰고 남겨두고 왔다.
나오고 나서, 올해 같이 수능을 본 친구에게 연락을 했다. 친구는 후련하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뭔가 복잡했다. 아, 그리고 나의 수능 로망은 한 개가 더 있었다. 수능 끝나고 집 가는 버스에서 데이식스의 '한 페이지가 될 수 있게'를 듣는 것이었다. 버스를 타고 노래를 들으려고 했는데 몸이 너무 안 좋아서 아무 정류장에서 내리고 길에 주저앉아서 나 좀 데리러 오라고 부모님한테 전화를 했다.(부모님은 처음부터 데리러 오겠다고 했는데 내가 버스 타고 집에 갈 거라고 우겼었다. 역시 어른의 말을 들어야 하나 보다.)
그렇게 나의 마지막 입시는 끝이 났다.
결과는 내 기준 처참히 망했다. 수능은 11월 중순에 끝났는데 2월까지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할 만큼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래서 안 빠지던 살도 쏙 빠졌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여기는 안 간다고 재수해 버린 학교를 삼수해서 가는 게 너무 힘들었던 것 같다. 그냥 그때 갔어야 하는데 괜한 오기를 부려서 이렇게 됐다는 생각을 매일 했다. 그리고 날 믿어준 엄마아빠한테 뒤통수를 쳤다는 생각에 괴로웠다. (지금은 이런 생각 많이 하지 않으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현재는 병명도 알고 좋은 교수님을 만나서 치료를 받고 있다. 확실히 많이 나았다. (썩 좋은 건 아니지만 전에 비하면 다시 태어난 수준..) 겉으로 보면 티가 거의 안 날 것이다. 아프면서 느낀 건 예전의 평범한 일상이 너무 소중하다는 것.
여담으로, 기침 질환을 가진 카페에서 알게 된 분이 있는데 그 분과 작년 3월에 전화를 했다. 전화하면서 수능 봐서 대학교도 가고 몸도 예전에 비해 많이 나아졌다고 전해드렸다. 그러니까 너무 고생했다고 해주셨다. 어떻게 아픈데 공부도 했냐면서 기특하다고 수고했다고 해주셨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눈물이 맺혔고, 전화를 끊고 나서 울었다. 얼굴도 모르는 남이 나의 힘듦을 이해해 주고 그런 말을 해주니까 더 눈물이 났다.
여담을 한 개 추가하자면, 저번주에 좋아하는 교수님께 상담을 신청했다. 상담 시간에 이런저런 나의 고민들을 털어놓았다. 그러자 교수님은 이렇게 말해주셨다. '현지야, 세상에 의미 없는 일은 없어.'라고. 내가 겪은 아팠던 일들도 돌아보면 모두 의미 있는 일이라고. 그 과정에서 배워나가는 것이 반드시 있을 것이라고. 나의 마지막 입시도 돌이켜보면 나에게 배움을 주었고 나를 더 성장시켰다. 그래서 나는 이를 부정적으로만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이렇게 글로 적어 내려 갈 수 있는 것 같다.
결코 의미 없는 일은 없다. 아니더라도 나는 그렇게 믿고 살아가려고 한다.
내가 직접 경험해 봤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