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상적인 나의 2학년 개강, 3월
인상적인 일이 많은 3월이었다.
좋은 쪽으로도 나쁜 쪽으로도.
3월 새 학기의 시작은 마냥 좋지 않았다. 물론 개학을 즐거워하고 신나 하는 학생이 몇이나 될까. 하지만 유독 꺾인 상태로 출발을 했다. 정말 하고 싶었던 대외활동이 있었고 합격을 했다. 하지만 몸상태가 많이 안 좋아져서 결국 OT 한번 나가고 회의 한번 참여한 채로 취소해 버렸다. 취소할 때 대리님과 전화를 몇 통 했는데 눈물을 참느라 힘들었다. 그 대외활동은 전북 지역 학생들을 대상으로 뽑는 것이었는데 우리 과 선배 한 명도 있었다. (소수과인데 참 신기했다. 세상은 정말 좁구나!) 그 선배를 학교에서 마주칠 때마다 대외활동 생각이 나서 힘들었다. 그래서 좀 피해 다녔는데 티가 많이 났었던 모양이다. 이유는 말해줄 수 없었다. 너무 찌질하니까! 너무 부러워서 그랬다고 하는 것도 이상하기도 하고.
그리고 대외활동 이외에도 취소한 동아리도 있다. 슬펐다. 대외활동이랑 동아리 면접 준비를 열심히 했었고, 작년부터 너무 하고 싶었는데 상황이 안되어서 그냥 우울했다. 차라리 열정이 없었으면, 그냥 편한 상태만을 고집한는 성격이라면 좋았을걸. 왜 몸은 안 받쳐주면서 하고 싶은 일만 이렇게 많을까.. 하면서 계속해서 자책을 했다. 솔직히 말하면 아직도 자책을 하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저 때만큼은 아니다.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3월 중순에는 병원 예약이 되어있었다. 병원 가는 길은 들뜨면서도 기분이 가라앉는다. 들뜬 이유는 그래도 수도권이라고, 가는 길이 여행 같아서 기분이 좋다. 기분이 가라앉는 건 아무래도 치료받는 과정이 힘들기도 하고 몸이 안 좋다는 사실을 몸소 깨닫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지 않다. 이번 겨울방학 때 몸이 많이 안 좋았다. 이런저런 증상을 말을 하니 담당 교수님은 휴학을 할 수 없냐고 물었다. 휴학하고 좀 쉬는 게 나을 것 같다고. 그리고 최대한 사람을 만나지 말라고 당부하셨다. 그 당시에도 충격이긴 했지만, 치료를 받고 자취방에서 쉬는데 눈물이 나왔다. 기분이 이상했다. 그래서 주말에 잠을 못 잤다. '안 그래도 입학을 늦게 했는데 휴학을 하면 나는 어떡하지?'라는 생각과 '진짜 휴학을 해야 할까? 지치긴 하는데..'라는 생각 등등.. 그래서 새벽 5-6시까지 잠도 못 자고 있었다.
그런데 다음날 억장이 무너지는 일이 두 번 있었다. 인간관계와 관련된 일이었다. 이게 지금 꿈인가 헷갈렸다. 집에 오자마자 하은이한테 지금 전화되냐고 연락을 했다. 하은이는 상당히 바빠 보였는데 내 상태가 말이 아닌지라 시간을 내서 전화를 해줬다. 전화를 하는데 계속해서 눈물이 나왔다. 하은이도 갑작스럽게 나에게 일어난 일들에 당황한 기색이었다. 나는 한 질문을 반복해서 물어봤다. '이거 힘든 일인 거 맞지? 나만 힘들어하는 일 아니지?'라고. 하은이는 휴학을 하는 게 어떻겠냐고 물었다. 아니면 학교를 일주일이라도 쉬는 게 어떻겠냐고. 나도 마음 같아서는 바로 휴학을 해버리고 싶었다. 어떻게든 마음 잡고 학교를 다니려고 했는데 이런 일이 생기다니! 이 날 전화를 거의 4시간 동안 했었다. 마지막에는 서로 망상을 하면서 즐거워하다 전화를 끊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제정신이 아니었던 모양..)
다음날 어떻게 수업을 들었는 지도 모르겠다. 수업을 듣고 집에 오자마자 온몸에 힘이 풀리는 것 같았다. 정말 밥도 안 들어가서 하루종일 굶었다. 그때 아름이한테 연락이 왔다. 저녁을 해줄 테니까 본인 집으로 오라는 연락이었다. 아름이한테는 어제의 일을 말하지 않았는데, 귀신같이 연락이 와서 놀랐다. 그리고 고마웠다. 아름이네에 가서 겨우 첫끼를 먹었다. 그러면서 있었던 일들을 털어놓았다. 솔직히 말하면서 눈물이 막 나오려고 해서 밖으로 산책을 나가자고 했다. 그때쯤은 저녁이라 어둑어둑해졌기에 그러면 내 표정이 덜 보이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내가 너무 우울해하자 아름이도 그 우울에 감염이 되었다. 그 모습을 보니 미안했다.
아름이를 만나고 집에 와서 서연이와 지혜랑 전화를 했다. 나는 또 친구들한테 물었다. '이거 나만 힘들다고 생각하는 일 아니지? 다들 이런 일 있으면 힘들어하는 거지?', '나 이제 어떡해..' 또 이 질문들을 반복했다. 걱정이 됐다. 남들이 봤을 때는 정말 작은 문제인데 내가 확대해서 생각하는 것이 아닐지. 친구들은 말했다. '현지야 나였으면 휴학했을 것 같아. 그리고 이거 힘든 상황 맞아.'라고. 이 말들이 '현지야 넌 할 수 있어. 힘내자.'라는 말보다 더 위안이 되었다. 근데 또 털어놓으니까 더 괜찮아지는 것 같았다. 그때 내 이야기를 들어준 친구들에게 여기에서라도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너무 고마웠어! (이제는 살짝 진정된 너의 친구가..)
나는 내가 생각해도 독특하다 싶은 게, 너무 힘든 일이 연달아 일어나니까 나 스스로가 나에게 이벤트를 주고 싶어졌다. 그래서 나름의 용기를 내서 한 일이 2가지가 있다.
자유주제로 발표를 한번 할 수 있는 기회가 있는 수업이 있다. 그리고 이 수업은 발표자에게 발표 후기를 종이에 적어서 주는 것이 원칙이다. 힘든 일이 있고 나서 얼마 후가 나의 발표일이었다. 위에는 발표 2일 직전에 싹 다 갈아엎은 ppt이다. 원래 주제는 '나의 마지막 입시 이야기'이다. 내 브런치의 첫 번째 글 내용으로 발표를 진행하려고 했다. ppt 탬플릿까지 싹 다 만들었는데, 이야기가 너무 무거웠다. 심지어 발표를 연습하는데 눈이 촉촉해졌다. 너무 감수성이 풍부해서 탈이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그 자리에 맞지 않는 내용인 것 같았다.
그러다가 작년에 알게 된 타과 선배가 해줬던 이야기가 생각이 났다. 그 선배가 들은 어떤 수업은 수강생 전체가 무조건 자기소개를 해야 했다. 근데 한 분이 나와서 자기소개를 하고 마지막 즈음에 '오늘 저랑 저녁 먹고 싶으신 분은 수업 끝나고 남아주세요.'라고 했다고 한다. 그 말을 듣고 언젠가 나도 꼭 저렇게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나의 대학 로망이 된 것이다. 근데 이걸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발표를 하다가 갑자기 저녁 먹을 사람은 남아달라고 했다가 아무도 남지 않으면 그건 너무 서글픈 일이다.. 그런 사태를 방지하고자 발표자에게 무조건 발표후기를 적어줘야 하는 걸 이용했다. 그리고 발표 주제도 모조리 바꿨다. 그렇게 바꾼 주제는 '적극적인 인간관계 만들기'이다. 나는 작년부터 친해지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먼저 다가가고는 했다. 그 일화들을 풀면서 듣는 사람들이 나라는 사람에게 흥미를 가졌으면 했다. 흥미를 유발하게 작년에 있었던 자극적인 요소도 몇 넣었다. 친해지고 싶어서 너무 다가갔더니 사이비로 오해받은 썰도 풀었다. (이 부분에서 많이 웃어주셔서 뿌듯했다.) 그리고 발표 마지막 즈음에 위의 로망을 살짝 변형시켰다. '저와 친해지고 싶으신 분들은 발표 후기 종이에 신호를 남겨주세요!'라고 말했다.
용기를 내서 발표를 하긴 했는데 발표를 하고 나서 걱정이 되었다. 아무도 친해지고 싶다고 안 하면 어쩌지..
그래서 그때부터 걱정하기 시작했다. 이 걱정을 발표 후에 해서 다행이다. 발표 전에 했으면 이런 대담한(?) 발표를 안 했을 것이니까. 그런데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후기에 신호를 남겨주신 분들이 몇 계셨다. 행복한 일이었다.
내 발표 후기 중 가장 나에게 와닿은 말이었다. 너무 멋있는 말이다.
여담으로, 이 후기를 남겨주신 분을 기억하고 있었다. 관심을 가지며 보니까 발표도 잘하시고 특히나 글을 너무 잘 쓰셨다. 발표에서나 글에서나 깊이가 느껴졌다. 그래서 친해지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지금 글을 쓰는 시점은 4월 중순인데, 최근에 친해지자고 말을 걸었다.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다.
내가 작년부터 듣고 싶은 교양이 한 개 있었다. 하지만 '너무 높은 경쟁률 + 코로나로 인한 pc방 영업시간 변동으로 집에 있는 조선컴으로 수강신청'으로 인해 수강신청에 처참히 실패했다. 그래서 이번 수강신청 때는 이 교양수업부터 신청하자 마음먹었고 결과는 성공이었다!(재수 성공!)
왜 다들 이 수업을 극찬하는지 알 것 같았다. 교수님이 굉장히 열려있는 분이셨다. 본인의 전공 지식을 학생들에게 알려줄 뿐만 아니라, 학생들이 살아가면서 꼭 알았으면 하는 지식들을 특강 형식으로 짧게 알려주셨다. 그리고 수업 중간에 본인의 생각은 어떤지 실시간 투표를 진행하고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학생들에게 물어보며 토론을 하셨다. 나는 이런 수업 방식이 처음이어서 충격을 받았다. 대학 입학 전에 상상했던 강의가 실제로 나타난 것이다.
이 교수님은 1시간 수업인 날은 수업을 하지 않으셨다. 그 시간을 일부러 비워두셨다. 수강생들이 교수님과 자유롭게 상담을 할 수 있도록 비워두신 것이라고 했다. 누구든지 어떤 상담이라도 상관없으니 자유롭게 신청하라고 하셨다. 나는 매번 마음만 먹었는데 이때 뭐라도 해보자는 마음에 수업이 끝나고 교수님께 갔다. '교수님 정말 아무 고민이나 말해도 되는 건가요?'라고 물어봤다. 그러자 교수님은 긍정의 반응을 보이셨다. 당연히 된다는 말을 덧붙이셨다. 신나보이셨다.(나중에 알고 보니 첫 상담자여서 그랬던 것이었다.) 내 이름을 말해드리니 출석표에 있는 내 이름에 체크 표시를 하셨다. 그렇게 다음 주 화요일에 상담을 하기로 했다.
상담 당일이 되었다. 너무 기대되는 순간이었다. 노크를 몇 번 하니 교수님이 문을 열고 반갑게 맞이해 주셨다. 수업 외의 자리에서 보니 신기했다. 연예인을 보는 기분이랄까!(인기 있는 수업의 교수님이라서 그런 것 같다. 또 내가 존경하는 교수님이기도 하고.) 나는 이상하다고 느낄 정도로 신이 났다. 그래서 자기소개도 하고 내 가족관계는 어떻게 되며, 저번에 발표를 이렇게 했었다는 둥 내 이야기를 잔뜩 했다. 교수님은 이야기에 공감하고 많이 웃어주셨다. 그러면서 동족을 만났다고 하셨다. 동족! 동족이라고 칭한 이유는 서로가 너무 비슷한 유형의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도 더 신이 나고 흥분해서 내 이야기를 했을지도 모른다.
신이 난 채로 지금까지 대학생활에서의 굵직한 이야기들(포장했지만 사실 내 자랑에 가깝다.)을 해드리고 본론으로 들어갔다. 동기가 갑자기 휴학해 버려서 외톨이가 되었다는 것 그리고 병원 결과가 안 좋아서 다른 활동을 못하는 것이 너무 힘들다는 고민을 털어놓았다. 교수님의 답변은 명쾌했다. 지금 하고 있는 공부에 집중해라! 공부에 집중하기 최상의 조건이라는 말을 해주셨다. 존경하는 사람이 그렇게 말을 해주니까 마음이 살짝은 놓이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긍정적인 대안으로 말해주신 것에 대해 감사하기도 했다. 고민을 말하면 무작정 힘만 내라고 하진 않을까 살짝 걱정했는데 그게 아님을 증명받은 말이라서 더 와닿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냥 그 시점 내 이야기를 누구보다 공감하면서 들어주는데 들어주는 사람이 나와 같은 성향의 사람이라 나에게 맞춤 대안을 말해주는 것이 너무 좋았다. 그냥 다 좋았던 것 같다. 거기에서 있던 시간들이!
그리고 그날 평생 들을 칭찬이란 칭찬은 다 들은 것 같았다. 얼마나 기분이 좋았던지 집 가는 내내 헤실헤실 웃으면서 갔다. 칭찬을 들어서 기분이 좋은 것도 있지만 나와 정말 잘 통하는 사람을 만난 것에 대한 기쁨과 감사함이 컸다.
지금까지 아빠는 나한테 늘 공무원 준비를 하라고 하셨다. 고등학교 때부터 얼마 전까지. 그럴 때마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고 싶다는 말을 했다. 그러면서 아빠랑 부딪히는 일이 종종 있었다. 둘 다 성격이 불같이 화내다가도 금방 풀리는 지라, 그런 일이 있어도 빨리 화해하고 넘어갔다. 나는 아빠가 나를 진정으로 응원해주지 않는다고 생각해 서운함이 가슴 한편에 남아있었다.
아빠는 항상 전주에서 여수로 내려올 때 역으로 나를 태우러 오고, 또 내가 여수에서 전주로 올라갈 때 나를 역까지 데려다주신다. 이날은 다음날 아침에 일찍 출발을 했을 것이다. 할 일이 너무 많았기에 이른 시간에 집을 나섰다. 차에 아빠랑 단둘이 있는데 아빠가 한마디를 하셨다. ‘딸아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해라.’라고. 어쩌면 지금까지 아빠가 잘못 생각했었던 것 같다고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 하셨다. 분명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이었는데 듣자마자 머리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눈물이 나오려는 걸 간신히 참고 나는 대답을 했다. ’ 사실 나도 뭐가 맞는 건지 잘 모르겠어.‘라고. 올라가는 기차에서 계속 아빠의 말이 생각이 나면서 눈시울이 붉어졌다. 왜 그토록 듣고 싶었던 말이었는데 막상 들으니까 슬플까. 그 말을 하는 아빠가 예전에 비해 확연히 늙고 지쳐 보여서였을까. 오히려 그 말을 들으니까 정신이 확 차려졌다. 이상한 일이다.
마음이 맞는 친구가 가까이에 있는 것은 큰 행운이다. 같이 있으면 너무 편하고 재미있다. 둘 다 솔직해서 다른 사람들이랑은 못할 것 같은 대화도 스스럼없이 하는 점이 너무 좋다.
손 편지 쓰기 프로젝트를 하자고 한 친구가 있어서 3월에 첫 번째 편지를 교환했다. 나는 요즘에 말의 힘보다 글의 힘이 더 막강할 때가 있다는 것을 종종 느낀다. 그래서 편지에 나의 목표와 지난 일을 정리해 봤다. 나의 목표를 편지에 적고 친구와 교환하면서 내가 쓴 글에 더 책임을 지고 싶어지는 그런 욕구(?)가 생겼다. 지금은 작은 엽서에 내 목표를 짤막하게 적어서 핸드폰 뒤에 넣어놨다. 꼭 이루고 싶은 마음에, 그리고 해이해질 때 한 번씩 읽기 위해서이다. 3월 말에 교환한 편지인데 곧 4월의 편지를 써야 할 때가 오고 있다.
시간이 너무 빠르다. 내가 의식하고 있지 않은 사이에 훌쩍 지나가버린다. 야속하다가도 정신 바짝 차려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