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학년 1학기 종강 이후부터 개강까지

철들지 못한 나의 일상 이야기

by 김현지


브런치에서 글 발행을 해달라는 알람을 수십 차례 무시했던 나. 오늘은 반드시 글을 적겠다는 다짐으로 책상에 앉았다.

5-6월경 수업 과제로 쓴 글을 브런치에 올린 게 마지막 글이라니. 시간이 정말 빠르다. 그 수업은 6월에 종강을 했다. 방학에 들어서고 처음의 굳은 의지는 어디 가고 더운 날씨에는 무언갈 하기 힘들다는 핑계로 시간을 허비하고 9월 개강을 맞이했다. 개강은 늘 설렜다. 특히나 2학기 개강은 더 설렌다. 가을은 항상 나에게 새로움을 불어다 넣어준다. 22살 대학교에 입학했을 때부터 생각해 보면, 항상 가을이 1년 중에 가장 행복했다고 말할 수 있는 시기였다. 그래서 이번 개강도 기대했다. 나름의 목표도 세워서 개강을 맞이했다. 하지만 기대와는 달랐다. 이렇게 아무 일도 없는데 휴학을 하고 싶은 건 처음이었다. 예전이었으면 즐겁게 했을 일들이 나에게 버겁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동안의 일상




방학 때는 시간을 많이 허비했다. 항상 이런 식이다. 무언가를 열심히 하겠다고 2주 동안 열심히 하지만, 체력이 따라주지 못해서 2주 동안 침대에만 누워있는다. 이번 여름도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다른 방학보다는 여기저기 돌아다니기는 했다. 대외활동으로 서울도 몇 번 올라갔다. 옛날이었으면 서울을 혼자 가볼 생각도 못했을 건데 이제 서울 가는 것쯤이야.. 귀여운 수준이다. 자주 올라가서 그런 것 같다.


나는 익숙함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믿고 살았다. 그러나 이게 아니라는 것을 이번 방학 때 절실히 느꼈다(오히려 새로움을 엄청나게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방학 때 서울, 전주, 여수, 화순.. 이 지역들을 반복해서 돌아다녔는데 묘하게 싫증이 났다. 어디론가 계속 떠나고 싶었다. 이게 절정에 다다른 것은 한국사 시험을 준비하면 서다. 한국사 일주일 벼락치기를 하다가 ‘칠석’이 눈에 들어왔다. ‘칠석..? 곧 칠석일 것 같은데?’라는 생각에 올해 칠석이 언제인지 살펴보니 8월 10일이었다. 딱 한국사 시험을 보는 날이었다. 대학교 1학년 때 아름이와 로망 이야기를 하면 항상 나왔던 ‘칠석에 남원 가기’를 이룰 수 있는 날이었다.


반복되는 일상에서 지루함을 넘어서 무기력함을 느낀 나는 바로 남원에 가는 기차를 예매했다. 원래 계획은 한국사 시험을 보자마자 남원에 내려가려 했다. 하지만, 일주일 한국사 벼락치기의 후유증으로 인해 다음날로 미루고, 8월 11일 남원으로 향했다. 엄청나게 즉흥적인 여행이었다. 가기 직전에 어디를 갈지 대충 정하고 바로 내려갔다. 남원 가는 길에 남원이 본가인 동기도 만났다. 오랜만에 만나서 반가웠다. 시작이 좋았다.


남원역에서 내리고 든 생각은 ‘남원 생각보다 나쁘지 않네? 너무 좋다’였다. 동기는 남원에 아무것도 없어서 재미가 없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오히려 심플하고 옛 정취를 살린 이 지역은 나에게 매력으로 다가왔다. 평화로웠다. 역에서 나와 택시에 탔다. ‘남원다움관’으로 가달라고 말했다. 기사님은 잘 모르시는 눈치였다. 광한루 주변에 있는 도서관 겸 박물관이라 유명한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보다. 그래서 네비에게 의존을 한 채로 남원 여행이 시작되었다. 남원이 처음인지라 기사님께 여기저기 추천해 달라고 했으나 돌아오는 답은 ‘광한루’였다. 여수 하면 바다라고 외치듯이 남원 하면 광한루인가 보다. 괜한 오지랖에 기사님께 칠석에 남원을 오는 것이 로망이어서 오게 되었다고 말했다. 비록 하루가 지났지만. 기사님은 칠석 날에 왔으면 행사를 즐길 수 있었을 텐데 아쉽다고 하셨다. 그래서 약속했다. 내년 칠석에 다시 와서 제대로 즐기겠다고. 그때는 나의 견우, 몽룡과 같이 와야지-.


남원다움관은 남원을 알아가기 좋은 공간이었다. 적당히 남원에 대해 알려주면서도, 체험할 거리도 있었다. 생각보다 좋아서 놀란 공간이다. 인력거 체험도 있어서 하고, 옛날 만화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도 있어서 책을 읽었다. 사진 부스도 있어서 사진도 찍었다(참새가 방앗간을 참을 순 없지~). 그렇게 열심히 보고 시원한 공간에 앉아있다가 골목길을 통해서 광한루 주변 한옥 느낌의 카페로 향했다. 혼자 첫 여행이라 신난 탓인지 정말 남원이라는 공간이 주는 느낌이 좋아서인지는 헷갈리지만, 골목길 마저 좋았다. 온전한 내 공간, 내 시간을 가진 기분이었다.


카페도 야무지게 가서 음료와 약과를 먹었다. 앉아서 창밖을 보다가, 두두와 전화도 했다가(이때도 싸웠던 것 같다..) 혼자 열심히 사진도 찍다가를 반복하니 해가 졌다. 이날의 남원은 무지막지하게 더웠다. 해가 진 것을 확인하고 카페를 나섰고, 광한루로 향했다. 광한루는 생각보다 오밀조밀 작았다. 하지만 광한루를 즐기러 온 가족과 연인들을 보니 나까지 행복해졌다. 다들 행복해 보였다. 아마 그분들이 날 봐도 그랬겠지?


걷고 사진 찍고 사람 구경을 했다. 날이 저물었다. 한층 어두워진 광한루를 보니 한 생각이 떠올랐다. 정말 사랑하는 사람과 광한루에 다시 오고 싶다는 생각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여기를 오면 혼자 왔을 때보다 몇 배는 더 행복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백년가약을 맺을 남자와 다시 오겠다는 명랑하고 심오한 목표를 가지고 전주로 향했다. 혼자서 하는 여행의 재미를 알아버렸다. 그리고 새로운 공간은 매력적이었다. 호기심이 마구 들어 더더 알아가고 싶었다. 예전에는 같이 갈 사람 없이 어떻게 여행을 가냐는 생각이었는데, 이제는 혼자서 여행하는 것이 어쩌면 더 재밌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올해가 가기 전에 많이 돌아다니고 싶다. 국내 구석구석 나의 발자취를 남기고 싶다.





방학은 외로움의 시간이었다. 나만의 시간을 갖는 것이 좋으면서도, 1학년 때와 비교하면 확연히 줄어든 친구들, 그리고 줄어든 약속이 나를 힘들게 했다. 1학년 때 친했던 친구와 멀어져서 그런 것도 있지만 기쁜 일로 약속이 줄어들기도 했다. 친구들이 졸업과 동시에 거의 다 취직을 했다. 시간이 넘쳐나는 대학생과는 다르게 신입들은 시간이 부족했다. 본인들을 돌아볼 겨를도 없어 보였다. 안타까우면서도 친구들이 너무 보고 싶었다. 하지만 취뽀한 친구들은 한 번 보자는 대학생의 앙탈조차도 받아낼 기력이 없어 보였다. 그래도 한 번씩 만나고 연락을 하긴 했다. 대화 속에 남는 건 ‘철들지 못한 대학생 김현지’ 뿐이었다. 철든 친구들과 철들지 못한 나 사이의 괴리감은 점점 커져갔다. 다 같이 대학생이었던 2022년이 그리웠다.





이 글을 쓰게 만들어준 일이 얼마 전에 있었다. 학교에서 옛날에는 친했지만 지금은 멀어진 사람을 마주쳤다. 이렇게 만나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던 사람이라서 엄청나게 놀랐다. 꿈인가 싶었다. 생각이 자주 났었던지라 반가운 마음이 컸지만, 별 일 없이 서로 할 일을 하러 갔다. 면접이 있던 터라 빠르게 면접장으로 가는 사이에 온갖 생각이 다 들었다. 뒤숭숭해진 마음으로 면접을 보고 집에 왔을 때 많은 생각이 들었다. 덕분에 힘든 시기 잘 버틸 수 있었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었는데 전하지 못해 아쉬웠다. 내가 지금까지 본 또래 친구들 중에서 가장 성숙한 사람이었고 도움을 많이 받았기에 그런 말쯤은 충분히 전해야 했었는데.. 하지만 다시 만날 인연이면 또 보겠지?






가을은 항상 설렜는데 왜 지금은 설레지 않을까? 아마 길어진 여름 탓일지도 모르겠다. 빨리 찬바람이 불어왔으면 좋겠다. 가을 아침 냄새를 맡으며 설렘을 느끼고 싶다. 지금 문득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부정적인 생각들을 찬바람으로 잊고 싶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