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과속방지턱만 봐도 지나가지 않고 멈춰 서는

이제는 가는 법을 배운 내가 적는 글

by 김현지

2020, 2021년은 나를 크게 바꿨다. 어떤 일을 시작하는 것을 힘들어하는 사람으로!

그래서 도전은 해놓고 시작도 전에 발을 빼는 일이 많았다. 그런 생활을 반복하다가 멘토링 프로그램 멘토 역할에 도전을 하게 되었다. 이번 멘토링은 재수 끝에 합격했다. 첫 번째 시도에서는 면접에서 떨어졌다. 떨어질 줄 알았다. 면접에서 한겨울에 내복만 입고 집에서 쫓겨난 사람처럼 벌벌 떨었다(경험담 아님, 그냥 비유임). 두 번째 시도 끝에 합격을 했다. 두 번째에 또 시도해 본 이유는.. '자신 있는 면접에서 떨어진 것에 대한 자존심 스크래치+그래도 나름 오랫동안 교사를 꿈꿔옴'이었다. 합격이라는 글자를 보고 기뻤지만, '내가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중간에 또 아프면 어떡하지. 이 일의 끝도 실패하면 어떡하지.'라는 막연한 두려움이 몰려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뭔가 달랐다. 멘토링 프로그램의 시작은 멘티들에게 사전에 나를 소개하는 연락을 돌리는 것이었다. 내 연락에 '만나서 반갑습니다:)'라고 답장이 온 한 멘티를 보고 이건 시작은 해보자고 다짐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두려움은 4개월이 지난 지금으로 보면 설렘과 익숙함으로 바뀌었다.

1월 13일, 오전에 도영이와 수업을 했다. 진로적성검사와 그에 따른 유형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도영이는 검사 결과 '사회형' 유형이 나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본인은 다른 사람을 위해 일하는 것이 즐겁다고 말했다. 그런 도영이가 나는 신기했다. 나는 진로적성검사를 했을 때 사회형에 해당하는 점수가 100점 만점에 7점이 나온 적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나를 희생해서까지 남을 위해 일하는 것에서 행복함을 느껴본 적이 없다. 그래서 내 주변에 복지 관련한 과에 들어간 친구들이 대단했다.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그 친구들은 가졌기 때문이다.

도영이는 작년에 했던 학생회 활동을 올해도 이어서 할 것이라는 것도 알려줬다. 나는 질문을 한 가지 했다. '도영이는 외향적이고 친화력도 좋고, 리더십도 있는 것 같고.. 이번에는 학생회 말고 전교 회장에 도전하는 게 어때?'라고. 내가 봤을 때 도영이는 더 큰일을 할 능력이 충분했기 때문이다. 그러자 도영이가 말했다. '선생님, 저는 제가 다른 사람을 위해 일하는 것을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좋아요. 학생회장이라는 자리에 있으면서 여러 명을 통솔하고 이끌고 앞에 나서는 것보다는 지금처럼 학생회에 있으면서 묵묵히 제 할 일 하고 남들을 도와주는 것이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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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격을 받았다. 이제 중학교 3학년에 올라가는 아이인데 이제 24살이 된 나보다 생각이 깊다. 멘티가 더 좋은 경험을 할 수 있는 능력이 되면서 안 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과거의 나를 매우 치고 싶었다. 도영이는 지금까지 내가 이해가 안 갔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좋음'의 기준은 상대적인 것인데 나의 잣대를 도영이에게 들이밀고 있었던 것에 대해 미안함이 몰려왔다.

그리고 그다음 날 은수와의 멘토링 시간에도 충격을 받았다. 은수는 곧 있으면 호주로 어학연수를 간다. 그래서 최근에는 어학연수를 위한 짐을 싸고 있다고 말했다. 그 말을 하는 은수 표정이 정말 행복해 보였다. 내가 만약 은수였다면.. 행복함보다는 새로운 환경에 나 혼자 떨어진다는 두려움 때문에 뻥 안치고 저녁마다 울면서 잠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안 해도 될 걱정까지 끌어모아다 하면서 우울에 빠졌을 것이다. 아니다, 애초에 기회가 있어도 잡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런 은수의 모습을 보고 한 가지 물어봤다. '은수는 그런 새로운 도전을 하면, 신나고 설레는 감정만 들어?'라고.. 지금 생각하면 좀 띠껍게 느껴지는 질문이다. 하지만 당시에는 너무 궁금해서 그냥 물어봤다. 그러자 은수는 '네'라고 답했다. 또 물었다. '두려움 같은 감정은 안 들고 긍정적인 감정만 드는 거야?'. 앞선 질문에 대한 답과 같았다.

신기했다. 6개월 좀 안 되는 시간을 보면서 은수는 항상 새로운 도전을 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나도 자극을 받았다. 돌이켜보면 새로운 도전을 할 때 두려움이라고는 없는 은수였다. 안되면 어쩔 수 없다는 마인드로 계속해서 도전을 했다. 최근에 시작에 대한 두려움과 자기 비하의 끝을 달리던 나는 나와 정반대인 어린아이를 보면서 반성을 하게 됐다. 가짜 과속방지턱만 봐도 끽하고 멈추는 나와는 다른, 속도를 조절하며 앞서 나갈 줄 아는 아이였다. 그러면서 든 생각은.. 내가 멘티들을 가르친다고 할 수 있나..? 오히려 내가 배운 것이 훨씬 많다. 멘티들은 나를 뭐라고 생각할까.. 물음표 살인마 선생님이라고 생각할 것 같다. 아니면 질문 폭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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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도 소미가 보내준 여행 사진이다. 소미를 보면서 감사함을 잘 표현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하게 되었다. 소미는 특히나 애정이 가는 친구이다(솔직히 모든 아이를 똑같이 예뻐하기가 힘들다..). 이렇게 애정하게 된 이유 중 가장 큰 것은, 감사함을 잘 표현하는 것이었다.

소미가 영국 어학연수를 보내주는 프로그램에 합격하고 싶다는 말을 했다. 이미 1차, 2차 시험을 통과하고 면접만 남은 상태였다. 그래서 도와줄 수 있는 부분을 도와줬다. 그때도 소미는 감사하다고 말하며 선생님 덕분에 면접을 무사히 마쳤다고 말했다. 당연히 붙을 줄 알았던 멘티이지만 결과를 물어보기가 망설여졌다. 그런데 먼저 연락이 왔다. 선생님이 도와주셔서 합격할 수 있었다고. 이때 다른 멘티도 같이 면접을 도와줬는데, 그 친구는 아무런 답이 없었다. 그래서 그런가.. 대비 효과(?)로 이 멘티가 더 예뻐 보였다.

영국에 도착해서도 잘 도착했다며 사진을 찍어서 보내주었다. 그리고 여행 중간에도 사진을 찍어서 보내주었다. 그런 것들 하나하나가 얼마나 귀엽고 예쁘던지..

소미는 반전 매력의 소유자이다. 처음에는 조용조용한 스타일이라서 소극적인 줄 알았는데 멘토링에 있어서 누구보다 적극적이고,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바로 도전하는 아이였다. 그런데 공부까지 잘한다. 이건 소미뿐만 아니라 우리 반 멘티들 모두가 그렇다. 공부도 잘하는데 예체능까지 잘하는.. 하고 싶은 일에 적극적이라 주말까지 시간을 할애하면서 멘토링을 하고, 동아리 활동도 한다. 나중에 다 잘 될 것 같다. 본인들이 꿈꾸는 곳에서 멋진 사람이 돼있을 것 같은 느낌. 잘 되면.. 내 이야기 한 번만 해줬으면 좋겠다.

암튼.. 소미랑 멘토링하는 시간은 정말 즐거웠다. 맨 처음에는 낯을 가렸지만 점점 마음을 열어주고, 이제는 내가 질문하지 않아도 먼저 말을 한다. 감격…

멘토링 활동을 하면서 뿌듯함을 많이 느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많이 배웠다. 두려움으로 차있는 나의 마음에 꿈을 향해 열심히 나아가는 멘티들의 열정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물론 아이들을 보면서 두려움이 싹 사라진 건 아니다. 그러기엔 너무 오래된 문제니까. 하지만.. 용기는 점점 싹트는 것 같다. 이게 순간적인 것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갑자기 또 두려움이 확 몰려와서 아이들에게 배웠던 것들을 정리하며 용기를 가지려고 글을 적었다.

어쩌면., 나보다 더 성숙한 우리 반 친구들. 물론 맘고생 시킨 아이도 분명히 있지만.. 이제 끝나가서 그런가 좋은 추억이 많이 생각난다. 가르친다고 시작했는데 내가 많이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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