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의 역할이란

죽은 시인의 사회를 읽고, 교생실습을 하고 나서

by 김현지

초등학교 때의 꿈은 웹툰작가였다.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고 잘했다. 새벽 5시부터 잠들 때까지 그림을 그렸고, 우리 집에는 항상 스케치북이 쌓여있었다. 당연히 부모님이 미술을 시켜주는 줄 알았다. 하지만 중학교 때 성적이 상위권으로 나오자, 부모님은 나에게 초등학교 교사를 장래희망으로 가지라고 하셨다. 그래서 그때부터 초등학교 교사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선생님과의 첫 상담에서도 초등학교 교사가 되고 싶다고 했다. 그러다가 1학년 사회수업을 들으면서, 사회가 너무 재미있었다. 중학교 때부터 제일 잘하는 과목이기도 해서 1학년 2학기부터 중학교 교사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때는 내가 잘하는 과목의 지식을 아이들에게 재미있게 전달하는 교사가 최고이고, 나는 이를 잘할 자신이 있었다.


대학 입시에서 사범대를 적었으나 떨어지고 사회학과에 입학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방황하게 되었다. 그저 진로를 설정하는 것이 아닌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모토로 어떻게든 열심히 살려고 했던 것 같다. 그러던 중에 ‘죽은 시인의 사회’를 읽게 되었다. 예전 학원 선생님이 잘 봤다고 했던 책이기도 하고 워낙 유명한 탓에 궁금했다. 책을 읽으면서 등장인물인 키팅 선생님에 집중을 하게 되었다. 명문대학교 진학에만 몰두하는 아이들이 자신의 관심사를 뒤로하는 암담한 현실에 밝은 빛을 비추는 선생님이었다. 아이들이 새로움을 경험하고 자신을 표현할 수 있도록 다양한 교수 방법을 사용하였고, 아이들에게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일을 하라는 용기를 심어주었다. 불의의 사건으로 키팅 선생님은 학교를 그만두게 된다. 하지만, 키팅 선생님의 따뜻함을 아는 아이들은 마지막 장면에서 선생님에게 ‘오, 캡틴. 마이 캡틴’이라고 하며 선생님에게 존경과 감사의 의미를 전한다.


나는 지금까지 담임 선생님을 잘 만나왔다. 누가 봐도 좋은 선생님들이었다. 하지만, 마지막 담임 선생님인 고등학교 3학년 선생님이 최악이었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 2학년까지 11년을 좋은 선생님들만 만나오다가, 마지막 1년에 선생님이라고 부르기도 아까운 담임 선생님을 만나버렸다. 그 순간, 지금까지의 선생님들의 감사함을 잊어버리고, 그분들이 준 사랑을 잊어버렸다. 그저 교사라는 직업은 최악일 수 있겠다는 생각도 했다. 고등학교 3학년 시절 나라는 존재는 담임 선생님의 화풀이 대상이었고 무시의 대상이었다. 그렇게 잊고 있던 지난 시절의 선생님들의 따스함을 죽은 시인의 사회를 읽으면서 다시 되돌아볼 수 있었다.


그래서 대학교 1학년, 사람들이 뭘 하고 싶냐고 물으면 이렇게 대답했다. ‘나부터 사랑을 하고, 이 사랑을 남들에게 전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이 다시 물어본다. 어떤 직업을 가지고 싶냐고. 그러면 나는 사회선생님이라고 했다. 그렇게 꿈을 말하고 다녔다. 우리 과에서 선생님이 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교육대학원에 진학하거나, 교직이수를 하면 된다. 교직이수는 2학년 중 1명 만을 뽑았다. 사실 1등을 해야 하는 건데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나의 목표를 사람들 앞에 말하면서 스스로 용기를 북돋았다. 가끔 꿈이 흐릿해지면 책을 다시 봤다. 그리고 영화도 몇 번 보면서 마음을 다졌다. 그렇게 1학년 종합 1등을 하면서 학과 교직이수를 할 수 있었다.


교직이수를 하면서 스스로에게 계속 질문을 했다. ‘과연 내가 교사에 맞는 사람인가?’라고. 그 물음에 대한 답을 내리기 위해서 2학년 때부터 많은 대내외활동을 했다. 멘토링, 서포터즈, 전시해설사, 교육봉사, 동아리 부장 등등. 그중에서 가장 의미 있었던 활동은 중학생 아이들을 6개월 동안 가르쳤던 멘토링이었다. 이 시간은 가장 힘들었지만, 얻어가는 것들이 컸다. 나를 희생하더라도 이게 아깝지 않았다. 아이들의 성장을, 그리고 미소를 볼 수 있는 것은 나에게 너무 달콤했다. 하지만, 나는 대학입시도 재수를 했었기에 임용고시라는 기간을 버틸 수 있을지가 큰 관건이었다. 시험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그래서 또 다른 관심 분야인 마케팅 분야 취업에도 시간을 많이 쏟았다. 그 과정에서 방황을 많이 했다. 내가 여기에 시간을 쏟고 있는 것이 맞는지 의구심을 많이 가졌고 과연 교사와 마케터 중에서 나에게 더 맞는 것인 무엇일지 고민하고 또 고민하며 불안함을 느꼈다.


그러면서 4학년 1학기에 교생실습을 나갔다. 확실히 느꼈다. 나는 아이들과 함께할 때 행복함이 큰 사람이다. 교생실습 기간 동안 아이들에게 온 애정을 쏟았다. 아이들에게 교과 공부를 잘 가르치기는 아직 힘들지만, 사랑은 누구보다 잘 줄 자신이 있었다. 아이들에게 한 번씩 짧은 쪽글을 적어서 나눠줬다. 시험기간 계획 세워서 공부하는 방법, 힘들 때 들으면 좋은 노래, 내 자기소개 등이다. 아이들이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내 나름의 최선을 다했다. 처음에는 낯을 가리던 아이들이 나중에는 먼저 와서 말을 걸고, 고민을 털어놓기도 하고, 선생님이 있어서 반이 많이 밝아졌다는 말을 했을 때 행복을 넘어선 무언가를 느꼈다. 그때 생각했다. 교사의 역할은 아이들의 옆자리에서 따스함을 전해줄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죽은 시인의 사회의 키팅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그래왔듯이.


그리고 실습 기간 동안 아이들이 좋아하는 분야에 대한 관심을 키워주고 싶어 노력했다. 처음에 아이들에게 관심사를 물어보고 들은 대답을 종이에 적었다. 그리고 어딜 가나 그 종이를 보면서 아이들이 어떤 것에 흥미를 가지고 있는지 외우고, 아이들을 만나면 그와 관련된 이야기를 꺼내려고 노력했다. 덕분에, 사회 공부에 관심 있던 친구가 사회학과에 진학하고 싶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나는 아이들이 명문대학에 진학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왜 대학에 진학하는지를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자신들이 배우고 싶은 것을 더 폭넓게 배울 수 있는 수단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관심사를 먼저 일깨워주기 위해 노력했다.


고작 멘토링 몇 번, 한 번의 교육봉사와 실습이지만 이것들은 내 대학생활의 전부였다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교사를 꿈꾸게 되면서 고등학교 3학년 담임 선생님이 자꾸 떠올랐다. 어떻게 선생님이 학생에게 그럴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나라면 절대 그렇게 하지 못할 것 같아서, 너무 밉고 원망도 많이 했다. 그러다가 점점 생각을 바꾸게 되었다. 내가 교직에 나서서 아이들에게 좋은 선생님도 많이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주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그리고 이는 경험들과 책을 통해서 아이들에게 따스함을 전달해 줄 수 있는 사람, 좋아하는 것을 할 용기를 주는 사람으로 정해졌다. 사실 실습 때 마냥 쉽지만은 않았다. 내가 관심과 애정을 쏟아도 미미한 반응의 친구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럴 때는 힘들게 매번 쉬는 시간마다 반에 들리고, 우리 반 아이들 수업의 참관을 그만할까 생각도 했다. 하지만 교생실습 마지막 날, 아이들이 단체 사진을 찍기 전에 노래 한 곡을 틀었다. ‘Don’t look back in anger-oasis’ 였다. 아이들이 시험기간에 힘들어하는 것 같아 힘이 되어주고 싶은 마음에 주변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힘이 되는 노래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어 반 아이들에게 나눠줬다. 그때 Don’t look back in anger는 내가 힘들 때마다 들었고, 이 노래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라고 적었다. 이를 기억하고 아이들이 틀어준 것이다. 선생님이 제일 좋아하는 노래 뮤직비디오를 틀어놓은 화면 앞에서 사진을 찍자고 했다. 그 상황은 죽은 시인의 사회 마지막 장면에 학생들이 키팅 선생님에게 ‘오 캡틴’이라고 부르는 장면과 겹쳐졌다. 학생들은 선생님의 사랑을 받고 자라는 새싹이다. 나는 이 새싹들이 잘 자랄 수 있도록 옆에서 빛을 비춰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게 내가 생각하는 교사의 역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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