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부터 내가 한 모든 선택에 후회를 한 것 같다. 선택에 책임은 지지 못 할 망정 후회나 하고 있었다. 아니 후회하고 있는 중이다. 아직까지 현재진행형이니까.
내가 브런치에 쓴 '용기'라는 글을 허은정이 봤다. 은정이는 내 글을 보고 네가 재수한 걸 이제 알았다고 연락을 했다. 그에 대한 답장으로 '나 삼수했는데;;'라고 보냈다. 근데 은정이의 반응이 의외였다. 넌 이제 여한이 없겠다는 반응이었다. 이런 식으로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지금까지 그냥 재수부터 시작하지 말걸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냥 재수하지 말걸이라는 생각을 아직까지 한다고 말했다. 은정이는 안 했으면 더 후회했을 것이라 했다. 은정이랑 이런 진지(?)한 대화는 입시 때 이후로 거의 처음인 것 같다. 나는 그냥 뭘 하든 후회했을 것 같다고 솔직하게 털어놨다. 그러니 은정이가 한 게시물을 보냈다. 무슨 게시물인지 잔뜩 궁금해하면서 들어가니까 은정이가 학창 시절에 한 서예를 찍어 올린 것이었다. 문구는 '반성은 하되 후회는 말자.'였다. 그걸 보니까 왜 뭉클해지는 건지. 은정이한테 눈물 흘리고 있다고 장난스럽게 말을 했지만, 실제로 눈이 촉촉해졌다.
후회를 왜 하는 것일까.
나는 의외로 중고등학교 때는 후회를 하지 않았다. 어차피 돌아가도 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지금 내 선택에 있어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일종의 믿음이 있었다. 그게 제일 강했던 시기는 고등학교 3학년 때였다. 난 아직도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건 고등학교 3학년 때 공부를 열심히 했다는 것이다. 나 스스로도 열심히 하고 있다는 걸 명확히 인지하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자존감이 높았다. 나는 내가 할 일을 잘 해내고 있는 사람이니까. 누가 뭐라고 하면 상처는 좀 받을지언정, 나의 가치를 낮추지는 않았다. 오히려 지들이 뭔데 나한테 저런 말을 하나 한심하다고 생각했다. 그때는 그렇게 넘겼는데, 지금의 나는 그렇지 않다. 오히려 과거에 후회하지 않고 넘겼던 것까지 끌어들여서 후회하고 있다. 안 그래도 힘이 없는데 없는 힘까지 끌어모아서 내 자신을 더 힘이 없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현실에 최선을 다하면 후회를 하지 않는 것 같다. 그리고 그런 현실에 최선을 다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나를 온전히 받아들여야 한다. 지금의 내가 계속 후회를 하는 건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는 말과 같다. 하지만 고등학교 입시 때처럼 하루하루를 빡빡하게 보내기에는 지금의 나는 병약하고 지쳤다. 그리고 지금 내 상황을 보면 그렇게 보내기 힘들다는 것도 내가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최선의 방법을 생각했는데 허은정이 말해준 대로 '반성은 하되 후회는 말자.' 마인드를 가지는 것이다. 반성에서 끝내고 후회까지 끌고 가지 말자.
5월이 되었다. 시험기간이랑 주말이 겹쳐서 4월 말에 보내기로 한 손 편지는 5월 초로 미뤄졌다. 손 편지 프로젝트는 한 명의 친구와 하고 있지만, 매달 한 명씩 다른 친구에게도 편지를 같이 보내고 있다. 이유는 내가 친구들에게 편지 쓰는 것을 좋아하기도 하고 기왕 우체국 가는 김에 다른 친구에게도 편지를 보내면 좋을 것 같아서! 저번달에는 하은이에게 보냈고, 이번달은 유롤에게 보냈다. 하지만 여기서 치명적인 실수를 했다.
편지 봉투를 내가 직접 접어서 만들었는데, 유롤의 편지봉투가 마음에 안 들게 접어진 것이다. 그래서 봉투를 다시 접고 표지에 그림도 그려 넣고 스티커도 붙이고 꼼꼼하게 테이핑도 했다. 우편을 붙이고 집에 오니까 쓴 편지가 내 책상에 덩그러니 있었다. 그렇다.. 봉투만 보낸 것이다. 봉투만 보내는 주제에 준등기로 붙였다. 내 1800원.. 헛웃음이 나왔다. 유롤한테 연락을 했다. 아마 이번주는 봉투만 갈 것 같다고.. 유롤이 아주 좋아했다. 결국에는 다음 주에 다시 보내기로 했다. 1800원으로 이렇게 글쓰기 소재를 살 수 있어서 기분이 좋았다.
새 신발을 신었다. 이 새 신발이 좋은 기운을 불어다 넣어준 지는 몰라도, 좋은 일이 있었다. 작년부터 친해지고 싶은 언니한테서 연락이 왔다. 내가 먼저 밥 먹자고 약속을 잡으려고 했는데 언니한테서 먼저 연락이 왔다. 무척 감사한 일이다. 언니가 연락을 하려고 했는데 시험기간이어서 지금 했다고 하셨다. 배려가 몸에 배어 있는 사람이라는 게 느껴졌다. 5월 말에 만나기로 했다. 그때까지 학교를 다닐 이유가 한 개 더 생겼다.
목요일 오전 수업이 끝났을 때다. 그 수업에서 친해지고 싶은 분이 한 명 있다. 글을 너무 잘 써서 눈에 띄었던 사람이다. 아주 예전에 토론조가 같이 되어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얼굴을 보니 21살이나 됐을 것 같았다. 근데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생각이 얼마나 깊은지 알게 되었다. 그래서 엄청 놀랐던 기억이 있다. 아무튼 이게 그 사람 첫인상이다.
저번에 수업 끝나고 따라가서 친해지고 싶다고 말을 한 이후오 인사만 하는 사이가 되었다. 끝나고 말 좀 붙여보고 싶은데 기회가 안 됐다. 그러다가 이번 목요일 타이밍이 맞았다. 계단을 내려가는데 그분이 보였다. 하지만 막상 이렇게 타이밍이 맞으니 말을 걸지 말지 망설여졌다. 그러다가 인사를 하면서 말을 걸었다. 일단 궁금했던 나이부터 물어봤다. 여기서 좀 독특한 분이라는 걸 느꼈다.
‘한국나이로 24살입니다.’
친구들과 도서관에서 공부, 과제를 하기 위해 모였다. 수업 과제 중에 독후감을 쓰는 것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예전부터 내 책꽂이에 장식용으로 꽂아둔 ‘시지프스의 신화’를 꺼내 들었다. 그 과목 추천 도서에 있었기 때문이다. 중학생 때 까뮈책을 읽어보겠다며 이방인이 아닌 시지프스의 신화를 꺼냈다가 당최 무슨 내용인지 모르겠어서 몇 페이지 읽고 다시 꽂아둔 책이었다. 이제는 23살의 대학생이니 좀 더 수월하게 읽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컸다.
기대가 너무 컸나 보다. 도서관에서 읽는데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어서 괜히 화장실에 다녀오고 멍을 때리고 난리도 아니었다. 그렇게 그날 읽은 책 페이지 수는 40-50페이지 정도였다. 무려 두 시간이라는 시간을 앉아있으면서 읽은 분량이다. 그리고 친구들한테 연락을 했다. 오늘 치킨 먹고 싶지 않냐고. 그렇게 우리는 치킨을 먹으러 갔다. 치킨을 먹으니까 갑자기 술이 먹고 싶어서 간단하게 마시러 갔다. 정말 오랜만에 마시는 술이었다. 전주에 있을 때만 할 수 있다고 볼 수 있는 게 술 마시는 것이다. 여수에 있을 때는 입에도 대지 않는다. 전주에서도 자주 하지는 못하지만, 전주에서 유일하게 일탈이라고 할 수 있는 게 친구들이랑 술 마시는 것이다. 가끔 이런 나를 생각하면 서글퍼진다..
친구들과 일탈 아닌 일탈을 하면서 기분이 붕 떴다. 취할 정도로 마신 건 절대 아니지만-
5월의 편지가 왔다. 벌써 두 번째 편지다.
내가 쓴 편지는 저번주에 도착을 했다고 들었다. 나는 어린이날 연휴가 끼는 바람에 이번주에 받게 되었다. 친구가 먼저 편지를 받고 하는 말은 ‘힐링된다’였다. 특별히 힐링이 될 만한 주제로 글을 적은 것 같지 않아서 의문이 들었다. 근데 나도 친구의 편지를 받고 읽으면서 그 감정이 무엇인지 느낄 수 있었다. 나도 친구의 두장 가량의 편지를 읽으면서 든 생각은 ‘힐링된다’였으니까. 이래서 우리가 친구인가 싶었다.
편지로 시간이 흐르는 것을 느끼는 것은 운치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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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어버이날은 다른 해와 다른 걸 해드리고 싶어서 한 것 중에 하나가 편지 쓰기이다. 다른 친구들에게 보내기만 했지 적장 엄마아빠한테는 보낸 적이 없는 것 같다. 부랴부랴 써서 월요일에 맞춰서 보냈다. 전화로 편지를 썼다 하니까 엄마가 뭐 하러 편지를 썼냐고 했다. 하지만 목소리는 들떠 보였다. 아마 내 전화 직전에 동생의 어버이날 안부 전화가 있어서 그랬을 수도 있지만, 분명 편지를 반기시는 것 같았다. 아마 다음날 갈 거라고 연락을 했는데 다음날 도착하지 않았다. 전화를 하다가 엄마가 오늘 편지가 안 왔다고 했는데 그 말을 들으니 엄마아빠가 편지를 얼마나 기다리고 있는지를 알 수 있었다. 괜스레 뿌듯해졌다.
(+) 엄마한테서 편지에 대한 답장이 왔다.
‘편지 감동이었고 앞으로 졸업하고 쭉 같이 살자 잉’
그리고 저번에 빈 봉투만 보냈던 유정이한테 다시 편지를 보냈다. 여담이지만 이번에도 빈 봉투를 보낼 뻔했다.
재웅이 오빠랑 주말에 연락을 했다. 같은 수업을 듣는데 친해지고 싶은 한 명이 같았다. 그래서 그분이랑 다음 주 수업 끝나고 같이 밥을 먹어보자! 하는 것이었다. 연락을 하면서 계획 아닌 계획을 세웠다. 거의 무계획에 가까웠다. 그러면서 누가먼저 말을 걸 것인가는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겼다. 결국 재웅이 오빠보다 용기가 조금 더 있는 내가 말을 걸어보기로 하고 주말이 끝났다.
화요일 아침, 이날은 수업 전에 기분이 좋지 않았다. 계절학기 수강신청을 완전히 망쳐버렸다. 잘해보겠다고 새벽에 일어나서 피시방까지 갔다. 근데 한 개도 담지 못했다. 그래서 의도치 않게 수업에 일찍 가게 되었다. 수업 30-40분 전에 도착했기에 내가 첫 번째로 왔을 거라 생각하고 빈 강의실의 신선한 공기를 마시려고 하는 순간 나보다 먼저 온 사람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래서 사람은 항상 겸손해야 하나보다.
일찍 와서 할 게 없는 나는 전공 수업 필기 한 것을 수정하고 있었다. 그때 주하가 내 옆으로 왔다. 그러면서 간식을 줬다. 나는 항상 주지는 못하고 받기만 하는 주하한테 미안했다. 오늘은 나도 전날에 사다둔 사탕이 있어서 주하에게 건넸다. 이날에 주하가 준 간식이 아니었다면 하루를 버티기 힘들었을 것 같았다. 이 글에서 주하에게 고마움을 다시 한번 전한다.
친해지고 싶은 분이 엄청 차가울 것 같아서 걱정을 했다. 그래서 수업이 끝났는데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냥 재웅이 오빠한테 가서 ‘진짜해??’ 이 말만 반복했던 것 같다. 결국 내가 먼저 말을 걸긴 했다. 하지만 대화를 이끈 건 재웅이 오빠였다.
‘저기 오늘 점심에 시간 되시나요?’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
두구두구..
흔쾌히 승낙해 주셨다! 그래서 너무 기쁜 나머지 옆에 이 수업 교수님이 지나가시는데 수업 끝나고 같이 밥 먹기로 했다고 자랑을 했다. 교수님이 무척 기뻐하셨다.
밥도 먹고 카페도 가고 나서 각자 강의를 들으러 갔는데, 이게 오늘 일어난 일이 맞는지 곱씹어볼수록 신기했다. 그리고 궁금해졌다. 과연 이 조합으로 또 만날 수 있을지. 뭔가 오늘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만날 것 같아서 약간 씁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