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순

양가적인, 모순적인 감정을 느낀 경험에 대해서 알려주세요.

by 돌멩이

무엇이든지 뚫어야 하는 창은 무엇이든 막는 방패를 뚫을 것이냐.

무엇이든지 막아야 하는 방패는 무엇이든 뚫는 창을 막을 것이냐.


모순은 이분법으로 세상을 보면서 생겨난다. 창 상인과 방패 상인은 그냥 인생을 열심히 살뿐이었을 것이다. 멕여 살릴 처자식이 있어 장사를 해야 하는데, 이상한 소문이 나서 분명 곤란했을 것이다. 그만 좀 하지? 안 살 거면 저리로 좀 가지? 이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소문이 나는 바람에 유명해져서 큰 부자가 되었을 수도 있겠다.


그래서 모순 그 자체는 중요하지 않다. 우리는 이분법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편하기 때문에, 그 프레임과 논리로써 세상을 인식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중요한 것은 세상은 스펙트럼이라는 것을 인지하는 것뿐이다.


아버지는 평생 칼 같은 논리로 사람을 재단했다. 세상은 분명 스펙트럼인데, 이분법을 적용하였다는 의미이다. 누나는 그런 아버지께 짓눌려 살아왔고, 감정의 골은 깊어져갔다. 한편 아버지는 반항을 허락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감정의 골을 메울 수 있는 기회는 없었다. 어느 순간 누나는 아버지와 대판 싸우고 집을 나갔다. 그 후 누나는 다시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누나는 오랜 시간 만나던 연인이 있었고, 집에서 나간 몇 년 후, 결혼을 하겠다고 의사를 밝혔다. 동시에 누나는 상견례를 비롯한 가족 간의 모든 행사에서 아버지를 배제하겠다고 선언했다. 심지어는 결혼식에도 부르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자 모순적인 감정이 떠오르게 되었다. 하나는 통쾌함이고, 다른 하나는 동정심이었다. 어린 시절 무방비의 아이들을 가차 없이 패던 저 사람이 업보를 돌려받는구나. 자식의 결혼식마저 참여하지 못할 정도로 비참해질 수 있구나.


누나를 지켜보았다. 누나는 매형을 중심으로 삼아 아버지를 완전히 대체한 것처럼 보였다. 매형은 온전히 누나의 뜻을 존중했으며, 아버지를 배제하는 것에 찬성한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아버지는 지난번의 싸움에서 큰 충격을 받아, 아버지에게 그런 태도는 보여서는 안 되고, 어차피 다 큰 딸이므로 나가 살아도 무방하다고 했다. 어머니는 가족의 형태가 무너지는 것에 대해서 많이 속상해했다.


나는 굉장히 화가 났다. 아집을 부려서 나와 어머니, 무엇보다도 본인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남기는구나. 둘 모두 얼마나 스스로에게 확신을 하길래 평생 서로 보지 않아도 괜찮다고 단정 짓는 것이지? 그 옆에 매형이라는 사람은 왜 중재하지 않지? 왜 한 발자국 떨어져서 말하지? 누나와 아버지는 각각 서로가 없으면 내 인생이 행복해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닐까? 이 극단적인 선택이 결국에는 서로를 비참하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돌이켜보니 내가 가족을 사랑하는 만큼 화가 났던 것 같다.


내게는 그 결혼이 파국선언처럼 느껴졌다. "우리 가족은 돌이킬 수 없을만큼 박살이 났다. 모두 와서 박살 난 가정을 구경해라."라는 메시지. 파국선언을 막기 위해서 부단히 애를 썼다. 먼저 아버지께 갔다. 아버지는 자식에게 일방적으로 한다. 자식은 아버지에게 일방적으로 당한다. 따라서 당하는 입장을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그리고, 아버지는 죽기 직전에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느냐.라고 수없이 말씀드렸다. 다음으로 누나에게 갔다. 누나 역시 언젠가는 후회할 수도 있음을 말해주었다. 사람은 변하기 때문에, 그 가능성을 열어두어야 한다고 말했다.


결론적으로 누나는 아버지의 상견례를 비롯한 행사 참여 및 경제적 지원을 거절했지만, 아버지를 결혼식에 부르는 것만큼은 양보를 하였다. 아버지도 군말없이 결혼식에 참석하셨다. 결혼식은 어색하게나마 가족의 형태로 봉합되어 치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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