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셋 엄마와 넥타이를 맨 할머니
1980년, 시골의 한 청년은 맞선을 보러 도시에 갔다. 세상에서 가장 좋은 옷을 입고, 남성미 가득한 스킨 향을 풍기며 설렘과 긴장을 품은 채 기차에 몸을 실었다. 도착한 서울의 다방, 자욱한 담배 연기와 지글거리는 레코드판 음악 사이로 발그레한 수줍음을 머금은 한 소녀가 나타났다. 그것이 인생의 시작이었다. 훗날 나의 부모가 될 두 사람은 운명에 이끌리듯 나라는 생명을 품었고, 그해 시골 예식장에서 부부의 연을 맺었다.
겨울의 결혼식장은 짓궂은 친구들의 축복으로 소란스러웠다. 도시의 막내딸이었던 소녀는 시골집의 넓은 앞마당이 그저 신기하기만 했다. 그 마당이 훗날 자신의 눈물이 고일 터전이 될 줄은 꿈에도 모른 채 말이다. 동네가 들썩이던 잔치가 끝나고 밤이 깊었을 때, 차갑게 식어버린 국수 사발과 음식 찌꺼기만 남은 마당에 서서 소녀는 비로소 깨달았을 것이다. 이제 이곳은 자신이 평생을 버텨내야 할 외로운 전쟁터라는 사실을.
문틈으로 황소바람이 들이치던 12월의 어느 오후, 평범한 정적을 깨고 할머니의 다급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갓 지은 밥을 물리고 대문을 나서려던 청년은 직감적으로 문지방을 다시 뛰어넘었다. 비좁은 방 안은 산파와 부모님이 엉겨 붙어 아수라장이었고, 차가운 방에서 오롯이 혼자 고통을 삼키던 서울 소녀는 마침내 나를 세상 밖으로 밀어냈다.
문지방 너머로 나의 첫 울음소리가 번졌을 때, 산파는 "딸입니다"라고 고했다. 첫 손주가 아들이 아님을 확인한 할머니의 얼굴엔 세상의 모든 실망이 내려앉았다. 할머니는 그 길로 며칠을 앓아눕더니, 아빠의 넥타이를 가져와 머리에 질끈 동여매고는 곡소리를 내며 시위를 시작했다. "어서 장손을 보라"는 재촉의 화살은 늘 엄마를 향했다.
첫째가 딸이라는 이유는 지독한 구박의 시작이었다. 명절이면 거실에 둘러앉아 엄마의 서툰 시골살이를 흉내 내며 웃음꽃을 피우던 고모와 삼촌들. 그 웃음소리는 문밖에서 떨고 있는 엄마의 심장에 비수처럼 꽂혔다. 아빠는 할머니의 등살에 밀려 아들을 얻으려 애썼지만, 네 번째 아이마저 딸의 울음소리를 내던 날, 아빠는 말없이 마당 구석에서 담배를 피웠다. 그날 아빠가 내뿜은 연기는 평소보다 무겁고 탁했다. 인생에서 가장 달콤한 꿈을 꾸며 서울 다방으로 향했던 청년의 담배는, 이제 세상에서 가장 쓰고 초라한 위로가 되어 있었다.
네 번째 딸을 확인한 순간, 축복이어야 할 생명은 엄마에게 지독한 죄책감이 되었다. 그 마음의 병은 결국 암세포가 되어 서른세 살의 젊은 생을 삼켜버렸다. 9살의 내 눈에 박힌, 고통으로 일그러진 엄마를 품에 안고 무너지던 아빠의 뒷모습은 평생 지워지지 않는 문신이 되었다. 그해, 미움의 주동자였던 할머니도 세상을 떠났다. 마당엔 다시 정적이 찾아왔지만 그 결은 예전과 달랐다. 아내를 잃은 아빠, 며느리와 부인을 동시에 보낸 할아버지, 그리고 엄마라는 세계를 잃어버린 아홉 살의 나. 우리들의 서툰 홀로서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지독한 멀미 끝에 도착한 서울 원자력병원에서 엄마를 만난 짧은 찰나, 철없는 나는 우유를 사달라 칭얼댔다. 죽어가는 아내를 보는 아빠의 찢어지는 마음도 모른 채 내가 마신 우유는 세상에서 가장 달콤하고도 잔인한 맛이었다. 엄마는 그 와중에도 나를 보며 웃고 있었다. 자식을 걱정하며 주고받던 부부의 짧은 안부는 일 년을 넘기지 못했다. 스트레스를 양분 삼은 암덩어리들이 빠르게 엄마를 집어삼켰고, 마지막을 준비하며 집으로 돌아온 엄마를 맞이한 건 따뜻한 밥상이 아니라 장롱 한 켠의 모르핀이었다.
옆집에 맡겨진 나는 담장 너머 낡은 판재 틈으로 우리 집 마당을 훔쳐보았다. 아홉 살 인생이 본능적으로 감각한 죽음의 냄새가 공기 중에 떠돌았다. 뜨거운 여름 볕 아래 동생과 뛰어놀다 문득 몸이 굳었다. 공기의 흐름이 바뀌었다는 걸 온몸이 먼저 알고 있었다. 즐거울 수 없는 정적이 엄습했고, 살면서 처음 본 아빠의 눈물과 함께 나의 세계도 무너져 내렸다.
"엄마가 죽었다."
그 짧은 문장이 아빠의 어깨를 으스러뜨리고 있었다. 아홉 살, 여섯 살, 네 살, 그리고 갓 돌을 넘긴 막내. 네 명의 손녀는 할아버지와 아빠가 짊어져야 할 슬프고도 무거운 훈장이었다. 아빠는 일터로 가야 했고, 흙을 일구던 할아버지의 투박한 손에는 이제 분유 냄새가 배기 시작했다. 막내는 엄마라는 단어를 배우기도 전에 상실을 먼저 배웠다. 낯선 할아버지의 품에서 매일 울어대던 막내의 울음은 우리에게 가련함이 아니라 견뎌내야 할 소음이자 피로였다. 슬퍼할 여유조차 사치였던 그 시절, 막내는 그렇게 혼자 울다 지쳐 잠들며 엄마 없는 세상을 몸으로 익혀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