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미용실 대신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이발소로 향했다. 문을 열자마자 이발소 특유의 짙은 스킨 향과
비누 거품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그곳을 나설 때면 우리 네 자매의 머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똑같아졌다.
동네 아저씨들 사이에서나 유행하던 투박한 상고머리. 그 촌스러운 머리를 하고 학교에 가야 하는 부끄러움은 오롯이 첫째인 나의 몫이었다.
하지만 그 이발비마저 집안 형편에 버거워졌을 때, 할아버지는 손녀들의 머리 위에 냉면 사발을 얹기 시작했다. 차가운 스테인리스 사발이 이마를 짓누르고, 서걱서걱 가위질 소리가 귓가를 맴돌 때마다 나는 소리 없이 눈물을 떨궜다. 사발 밖으로 삐져나온 머리카락은 할아버지의 거친 손길을 따라 숭덩숭덩 잘려 나갔다.
사발 아래 갇힌 것은 머리카락만이 아니었다. 친구들이 예쁜 리본과 레이스 핀으로 긴 머리를 장식할 때,
나는 거울 속에 비친 내 냉면 머리를 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시선을 돌리면 곁에는 나보다 더 작은 대접을
머리에 얹은 채, 할아버지의 감각에만 의존해 들쭉날쭉한 머리를 가진 동생들이 해맑게 웃고 있었다.
그 천진난만한 뒷모습이 가여워 나는 차마 웃을 수도, 울 수도 없었다.
사발의 경계선은 학교라는 세상에서 나를 이방인으로 만들었다. 그곳에서 나는 성별이 모호한 아이였다.
남들 다 하는 리본 핀 하나, 예쁜 구두 한 켤레 없던 내게 남은 건 할아버지가 읍내 장터에서 사 온 빳빳한
코르덴 바지와 정체 모를 티셔츠뿐이었다. 그 옷차림은 섬세한 보살핌 대신 투박한 생존의 손길로 길러지고
있다는 일종의 낙인이었다.
집 밖의 시선은 더 차가웠다. 동네 평상에 앉은 아주머니들의 입방아는 어린 나의 귀에 유독 예리하게 박혔다. "에미도 할미도 없는데 애들을 어떻게 건사하겠냐"는 무책임한 걱정들. 그 소리가 들릴 때마다 나는 자꾸만 단단해져 갔다. 무너지지 않으려 스스로를 돌멩이처럼 깎고 다듬으며 마음속에 가시를 세웠다.
나를 향한 비난은 견딜 수 있었지만, 동생들을 향한 손가락질은 참을 수 없었다. 나는 어디서든 나타나 동생들을 괴롭히는 세상을 향해 살쾡이처럼 달려들었다. 어느 날 뒷집, 안 씨 아저씨가 술기운에 우리 집 마당에서 할아버지와 아빠를 흉보던 날, 결국 나는 참았던 울분을 터뜨렸다. "아저씨가 뭔데 우리 가족을 욕해요!"
소리를 지르며 대들던 그날, 내 온몸에는 사랑하는 것들을 지키기 위한 날카로운 가시가 돋아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