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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모양 Oct 19. 2017

사랑에도 정답지가 있다면

좋아하면 울리는

수학 문제집


초등학교 2학년 때 즈음에 친구네 집에서 친구 엄마가 수학 공부를 봐준 적이 있다. 친구 엄마는 우리에게 문제집의 일정 분량을 풀도록 시킨 후 부엌에 잠시 나가 계셨다. 그때 나는 구구단을 외는 것조차 버거워하는 꼬마였다. 한 페이지를 가득 채운 곱셈 문제를 푸는 시간은 당장이라도 나가서 놀고 싶은 우리들에게 참 고되고 지겨운 시간이었다.


그때 문득 우리는 잔 꾀가 생겼다.

한 페이지만 정답을 보면 어때?

문제집 뒤편에 있는 정답지가 얌전히 우리를 유혹했다. 당연히 우리는 쉽게 유혹에 넘어갔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점점 많은 양의 문제를 정답지를 참고해 풀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채점 결과는 만점에 가까워졌다. 정직하게 머리를 싸매고 문제를 풀지 않아도 돼서 너무 편했다. 점수도 올라가니 엄마에게 칭찬도 들었다. 우린 즐거웠다. 은밀한 비밀을 함께한 친구들과의 관계도 점점 더 끈끈해져 갔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의 범행이 들통났다. 정답지를 참고한 게 계속 마음에 걸린 한 친구가 양심 고백을 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정답지를 보고 있단 사실을 알게 된 이후부터 친구 엄마는 답안지를 우리 손에 닿지 않는 곳에 따로 보관하셨다. 그 후로 우리는 정직하게 문제를 하나하나 풀어 검사를 받아야 했다.




만일 그때 정답을 알 수 있었다면..


수학 문제집의 맨 뒤편에 정답지가 수록되어있듯이, 우리 인생에도 우리의 사랑에도 이런 정답지가 있다면 어떨까? 과연 나는 수학 문제집을 풀던 초등학교 때처럼 정답지를 보고 싶다는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정답을 훔쳐보게 될까?


아마 사랑의 문제를 풀어갈 수 있는 정답지가 있다면 나는 무척 궁금할 것 같다. 그 유혹은 초등학교 때 뿌리치지 못했던 수학 정답지의 유혹보다 더 강력할 것 같다. 초등학교 때 나에게 구구단이 무척이나 어려웠던 것처럼 지금의 나에게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는 게 그만큼 어려운 숙제가 되어버렸으니 말이다. 사랑이라는 어려운 문제를 쉽게 풀 수 있게 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정답지가 있다면 난 한 사람의 마음을 얻기 위해 고민하고 노력하는 시간을 줄이고 당장 그 정답지를 의존하게 될 것 같다.


좋아하게 되었다가 사랑하게 되고, 한 없이 아껴주다 상처를 주게 되고, 그러다 헤어지게 되고, 한 동안 아프다가 다시 괜찮아지는 과정.. 그런 패턴을 몇 차례 반복하여 겪으며 내 마음은 점점 단단해지고 무뚝뚝해졌다. 그럴수록 사랑은 더 어려워졌고, 하루빨리 풀고 싶지만 아주 귀찮은 문제가 되었다. 순수한 마음으로 누군가를 궁금해하고, 사람의 마음을 얻기 위해 열심히 고민하고, 사랑이란 문제의 풀이과정을 찾아가는 과정이 귀찮아진 것 같다. 빨리 더 편하게 정답을 얻어내고 동그라미라는 채점을 받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다.




좋아하는 사람의 마음이 보인다면, 사랑이 쉬워질까?


나는 호감 가는 사람이 있더라도 쉽사리 마음을 내비치지 않으려 무심하게 대한다. 언젠가부터 생긴 습관이 몸에 배어버린 것이다. 아마 몇 차례의 인생 경험을 통해 체득된 방어 동작이 아닌가 싶다.


나처럼 많은 사람들의 생각 가운데에는 자신의 마음을 온전히 내비치고 보여주는 게 바보 같은 행동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았다. 사람들은 사랑에도 '밀당의 기술'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감정을 보여주지 말고 숨기라고 말한다. 상처받고 버려지고 초라해지지 않으려면 그래야 한다고 한다. 좋아하는 마음을 더 표현할수록 초라해지니 적당히 관심 없는 척하며 전략적으로 행동하라는 것이다. 그렇게 해야 현명하다는 평가를 받는 현실이 참 슬프다.


한 때는 나도 화려함에 반해 사람을 만나기도 하고 순수하게 상대에게 마음을 표현하기도 했다. 상대가 거만해질 만큼 정말 순수하게 다 보여줬다. 사랑한다고 좋아한다고 매달렸다. 그러나 그 사람은 나를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때 만약 내가 상대방이 언제까지 나를 좋아해 줄 사람인지 미리 알아볼 수 있었다면, 그런 불확실한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되었을까? 쉽게 이성의 마음을 알아볼 수 있다면 가능성 없는 상대방에게 감정을 소모하거나 하지 않고 가능성 있는 상대만 좋아하게 될 수 있을까?




생각과 감정이 따로 논다


상대의 마음을 알아보는 것은 너무 어렵다.

내 마음을 적당히 보여주는 방법도 상대의 하트 시그널을 눈치껏 알아채는 것도 어렵다.

생각처럼 행동하기 어려워 내 행동은 점점 부자연스러워진다.

생각처럼 감정이 생기지 않아 내 감정은 점점 건조해진다.


나는 이제 나를 좋아해 주는 보통의 사람을 좋아하려고 노력 중이다. 어렸을 때 끌렸던 타입의 화려하고 빛이 나는 사람보다 일상을 나누며 정말 소소하게 나와 대화할 수 있는 상대방을 만나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화려하지 않아도 지긋하게 나를 지지해주고 응원해주는 사람, 뜨겁게 달아오르진 않아도 따스한 마음을 꾸준히 전달해줄 수 있는 사람, 지속적으로 내 편이 되어줄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을 만나고 싶다. 그리고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되어주고 싶다. (또다시 의미 없는 감정 소모를 하기엔 너무 지쳐버렸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머리로만 그런 사람을 만나고 싶어 한다. 참 어리석지만 나는 여전히 나를 좋아해 주는 상대보다 멋지고 어려운 상대방에게 끌리고 있다. 바보 같다.




<좋아하면 울리는>의 매력포인트

좋아하는 마음이 내 뜻대로 되는 걸까 생각해보며 한 편 한 편을 읽어보는 재미가 있다.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생각해보기 좋은 작품이다.

http://m.webtoon.daum.net/m/webtoon/view/joalarm

1. 사랑하기 좋은 타이밍을 생각해보게 해주는 작품

우리가 흔히 쓰는 표현 중에 '인생은 타이밍이다'라는 말이 있다. 서로에게 호감이 있었지만 연인관계로 발전하지 못한 남녀를 두고 '타이밍이 좋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정말 사랑에 적절한 타이밍이라는 것은 존재할까? 작품에서는 이런 문제를 '타이밍 이펙트'라는 개념으로 이야기한다. 어쩌면 사랑에 빠지기 좋은 타이밍이란 게 있을지 모른다는 것이다. 상대가 누구라서가 아니라 사랑이 필요한 타이밍에 상대가 나타났기 때문에 그 상대를 좋아하게 되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 누구나 한 번쯤 의심해 봤을 것 같은 그 생각이 씁쓸하게 하면서도 공감을 만들어낸다.

2. 밉지 않은 캐릭터들을 다양하게 만나볼 수 있는 작품

좋아하면 울리는에는 여러 가지 다양한 캐릭터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그 캐릭터들이 묘하게 사람을 울린다. 매우 힘든 환경에서 성장한 캐릭터도 있고, 매우 편하고 탄탄한 환경과 배경에서 넉넉하게 자란 캐릭터도 있다. 부와 명예를 갖고 있는 사람, 인기를 누리고 있는 사람, 권력을 잡고 있는 사람, 남부럽지 않은 외모를 타고난 사람, 뛰어난 재능을 갖고 있는 사람.. 각각의 캐릭터들은 타고난 것이 이렇게나 다르다. 그러나 모두가 저 마다의 연약함을 품고 있다. 그 연약함들이 독자로 하여금 애정을 갖게 만든다. 누구 하나를 특별히 사악하게 포장하거나 누구 하나를 특별히 애처롭게 과장하여 꾸며내지 않고도 작품은 독자들을 캐릭터의 감정선으로 몰아넣는다. 모두가 적당한 그늘을 품고 독자를 울린다. 조연으로 등장하는 캐릭터들도 각자 모양새를 통해 의미 있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주연에게만 집중된 이야기보다 주연과 조연들이 각자의 개성을 뿜어내며 의미를 나타내고 있는 이 작품이 나는 참 좋다.

3. 판타지인 듯 현실 같은 이야기 톤이 매력적인 작품

좋아하면 울리는은 지극히 비현실적인 가정에서 출발하지만 지극히 현실적인 질문을 던져준다. 그래서 내가 참 좋아하는 작품이다. 만화라는 장르가 원래 비현실적이고 창의적인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매력적인 장르이지 않은가. 그런 만화라는 장르의 특성을 잘 살리면서도 이 웹툰은 스토리 곳곳에서 지극히 현실의 고민을 불러낸다. 대사들이 뜬구름 같지 않고 참으로 깊이 있다. 말도 안 되는 판타지 스토리 같은 가정에서 출발하지만 실제 삶을 반영해주는 여러가지 메시지를 담아내고 있어서 맘에 드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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