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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모양 Jan 16. 2018

한 편의 시(詩) 같은 웹툰

이토록 보통의

시(詩)를 좋아한 어린아이


어린 시절의 나는 국어에 취약했다. 돌이켜보면 그때의 나는 활자 공포증 같은 게 있었던 듯하다. 똑같은 맞춤법을 몇 번씩 틀리고 똑같은 문장을 몇 번씩 반복해서 읽어도 잘 이해하지 못했다. 글을 잘 이해하지 못하다 보니 책만 보면 어지럽고 잠이 왔다. 책을 펼쳐서 읽기 시작하면 이내 잠이 들곤 했다. 그래서 초등학교 때 사진첩을 보면 책을 얼굴에 엎고 잠든 모습이 담긴 사진을 종종 찾아볼 수 있다.

읽기를 특히나 어려워했던 나는 책 대신 TV 앞에 앉아 많은 시간을 보냈다. 만화나 동화책 대신 애니메이션 영화를 보고, 소설책 대신 드라마를 보고, 인문학 서적 대신 다큐멘터리를 시청했다. 글자가 가득한 책보다는 그림과 영상 같은 시청각 자료에 더 관심이 갔다.


그런 나에게도 유일하게 흥미로웠던 국어 시간이 있었는데, 그 시간은 시(詩)를 배우는 시간이었다.

"오늘은 시를 지어볼 거예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시간이었다. 시를 짓는 수업을 할 때면 나는 다른 어느 때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다른 글짓기 시간에는 쓰고 싶은 이야기가 없어서 정해진 원고지 분량을 채우는 게 고통스러웠지만 시를 짓는 시간에는 분량의 부담이 없어서인지 오히려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마구 샘솟아 추려내느라 힘들었다. 새로운 시를 외우거나 시에 어울리는 이미지를 시화로 표현해보는 숙제는 제일 먼저 하고, 일기를 쓰거나 독후감을 쓰는 숙제는 가장 나중에 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시를 짓는 작업은 글을 쓰는 작업이라기보다는 그림을 그리는 시간처럼 느껴져서일까? 나는 국어를 어려워하지만 시는 좋아하는 유별난 어린이였다.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에요


우리는 시를 '읽는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에 '읊조린다'나 '낭송한다' 같은 표현을 사용한다. 시는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시를 온전히 감상한다는 건 단어와 문장을 문자 그대로 이해하는 것 이상의 음미의 의미를 갖는다.

시인들은 말하려는 바를 직설적인 표현이 아닌 은근한 방법으로 말한다. 예컨대 소리를 맛으로 표현하거나 감정을 사물에 빗대어 표현하기도 하고 의성어와 의태어로 이미지를 담아내기도 한다. 그들은 한 편의 시 속에 이야기도 담고, 그림도 담고, 소리도 담고, 생각과 감정도 담는다. 그 단어와 표현 속에는 사전적 정의 이상의 여러 가지 의미가 담겨있며 특유의 정취와 감성이 녹아있다. 때문에 시는 가장 짧고 간결한 글인 듯 하지만 가장 깊고 풍부한 글이기도 하다. 그래서 한 편의 시를 감상할 때는 그 속에 내포된 여러 가지 뜻을 곱씹고 떠오르는 이미지를 상상해야 한다. 시 구절 속에 은밀하게 숨겨놓은 시인의 진심에 닿기 위해 독자들의 상상력과 몰입이 필요한 것이다.

나는 이렇게 수수께끼 같은 시가 좋았다. 비록 영화나 드라마처럼 화려한 영상과 음향 효과는 없지만, 시적인 표현들을 보며 떠오르는 이미지를 상상하는 과정이 즐거웠다.



한 편의 시처럼 읽히는 사랑 이야기


웹툰 중에도 읽는다는 표현보다 음미하며 감상한다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웹툰이 있다.

만화가 시적일 수 있다면 이런 게 아닐까?

<이토록 보통의>는 몇 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된 사랑에 관한 옴니버스식 웹툰이다. 각 에피소드가 모두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지만 마치 한 편의 시를 읽는 것처럼 은유적이고 섬세하다. 웹툰이지만 이 작품의 대사나 이야기의 표현은 상당히 비유적이고 깊이 있다. 때로는 철학적이기도 하다.

작품을 읽은 후, 시를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이 작품에도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시의 논리가 고스란히 들어있기 때문이다.  작가는 사랑과 이별의 과정에서 우리가 겪을 수 있는 상황에 몰입시키기 위해 비유적인 장치로 이야기를 끌고 간다. 이야기 속에서 주어진 설정은 다소 엉뚱하다. 하지만 가만히 감상하다 보면 알쏭달쏭한 비유와 장치가 사랑에 대한 생각을 확장하게 만들어 준다.



<이토록 보통의>의 매력포인트

이 이야기는 따스하면서 독창적인 작품이다. 내가 즐겁게 읽었던 사랑에 관한 웹툰 작품 중에서도, 이 작품은 유독 여운이 오래 남는 작품이다. 가볍게 읽기보다는 시를 낭송할 때처럼 각 장면과 대사들을 음미하며 읽어보면 좋을 듯하다. 한 번 읽고 또 읽어보아도 다시 좋아지는 작품이니까 두 번 세 번 읽어보길 권한다. 더 많은 것을 느낄 수 있도록..

http://m.webtoon.daum.net/m/webtoon/view/NormalLikeThis

1. 첫 번째 에피소드 <무슨 말을 해도>
어떠한 일이 있어도 당신을 사랑하겠다는 약속, 그 약속이 정말 가능한 걸까? 첫 번째 사랑이야기는 이런 질문을 던져보도록 유도하며 흔들리는 인간의 나약한 민낯을 마주하게 해준다. 작품은 독자들이 사랑이란 한 차원을 관조하듯 바라보게 한다. 그리고 고요하게 우리가 사랑할 때 나타나는 예쁜 얼굴과 못생긴 얼굴을 들춰보인다. 그 이야기 전개를 통해 사랑할 때 나의 모습을 한번 돌아보게 되는 재미난 에피소드다. 나의 모습을 대입해보며 몰입한다면 더 재밌게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2. 두 번째 에피소드 <어느 밤 그녀가 우주에서>
헤어짐을 고민해본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이런 생각을 해보았을 것이다. 내가 사랑하고 있는 건 무엇일까? 내가 정말 이 사람을 사랑하고 있는 걸까? 두 번째 에피소드는 내가 사랑하고 있는 상대방의 본질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해주는 작품이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이 SF 같으면서도 드라마 같고, 드라마 같으면서도 동화 같아서 참 재밌다.

3. 세 번째 에피소드 <티타 이야기>
사랑을 하면 사람이 변한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늘어나고 함께 나누는 이야기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그 사람과의 관계를 소중히 간직하기 위해 나의 행동도 변한다. 그런데, 때로는 더 안쓰러운 모습으로 망가져가기도 한다. 세 번째 에피소드는 사랑을 통해 변해왔던 나의 모습을 점검해보게 만들어주는 작품이다. 다 읽은 후에 이런 질문을 한번 스스로에게 던져보면 좋을 것 같다. 누구나 처음엔 어리석고 서투른 사랑을 경험하며 성장한다.. 그렇다면 그 과정에서 내가 겪는 성장통은 어떤 것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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