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반은 얼어 죽어도 겻불을 쬐지 않는다. 장작도 아니고 겨우 겨를 태운 시시한 화력에 추위를 녹여보려는 알량함보다 차라리 얼어 죽는 것이 낫다는 마음이다. 장대비가 내려도 비를 피해보려고 뛰는 것은 호들갑스럽다. 어차피 젖을 텐데 지금 당장 조금 덜 젖어보겠다고 애를 쓰는 것은 점잖치 못하다. 양반들이 목숨보다 중요하게 생각한 것, 비가 와도 품위를 지키고 싶어 하는 마음. 바로 체면이다. 한국인에게 체면은 조금 더 특별하고, 체면을 유지하기 위해 허세를 부리는 것을 관찰할 수 있다.
체면은 한국적인 특징으로 꼽힌다. 한국인은 자신의 체면이나 상대의 체면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 그렇다고 체면이 한국에만 있는 독특한 문화는 아니다. 세계 모든 나라에는 상대의 현재 상황을 살피고 배려하는 문화가 있다. 그러나 타문화권에서 체면은 능력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는 ‘자존심’의 문제라면, 한국인의 체면은 능력과 함께 인성의 문제를 포함한다.
공직 인사에 대한 하마평이 무성할 때, 물망에 오른 당사자는 세간의 평가를 받게 된다. 개인의 능력이 탁월하다면 도덕적 결함은 어느 정도 눈감아줘야 한다는 의견이 있는 반면, 공직이기 때문에 윤리적 흠결이 있는 자는 자리에 적절하지 않다는 의견도 있다. 애초에 청와대 인사수석과 민정수석은 물망에 오른 사람들의 위장 전입, 논문 표절, 병역 기피, 세금 탈루, 부동산 투기, 성범죄, 음주 운전 여부 등을 꼼꼼히 살핀다. 능력이 탁월해도 상식적인 사회 규범에 어긋나는 행위를 한 사람은 좋은 사람이 될 수 없는 것이 한국 사회의 이른바 ‘국룰’이다. 그래서 한국의 체면은 개인적 자존심이 아닌 ‘사회적 자존심’으로 볼 수 있다.
허세가 인상 관리를 위해 나타난다면, 한국인의 인상 관리는 체면을 고려해야 한다. 최상진과 유승엽은 한국인의 체면에 대해 ‘상황과 관계에 따라 다르게 행동함으로써 자신이나 상대의 지위나 명분을 높여주는 행동의 과정 또는 현상’이라고 정의한다. 앞서 허세에 대한 몇 가지 정의 중 최지원과 허경호는 허세를 ‘자신에게 긍정적으로 지각된 특징을 상대에게 드러내 좋은 사람으로 인식되기 위한 전략’으로 파악했다. 두 가지를 연결해 보면 ‘좋은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자신에게 긍정적으로 지각된 특징을 상황에 맞게 상대에게 드러내는 것’을 체면을 지키기 위한 허세로 볼 수 있다. 한국인의 허세는 체면을 지키기 위해 나타나고, 허세를 부릴 때는 개인의 역량을 돋보이게 하는 것뿐만 아니라 도덕적으로도 문제가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분명히 보여줘야 한다. 한국인의 허세는 체면을 지키기 위해 도덕적 측면을 더욱더 고려해야 하는 것이다.
오래전부터 관찰 예능이 인기를 끌었다. 관찰 예능 초기에 시청자들은 방송에서 보여주는 상황의 리얼리티에 몰입했다. 상황을 가공되거나 제작진이 개입하지 않은 진짜 ‘날 것’으로 믿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여러 명의 구성 작가와 촬영 감독이 편하게 누워 ‘떨어지는 감’만 기다리지 않는다는 것을 눈치챈다. 방송 작가는 출연자와 수시로 연락하며 이야깃거리를 찾고, 출연자는 시청자의 흥미를 끌면서 자신이 꽤 좋은 사람으로 보일 수 있는 소재를 제공한다. ‘나 혼자 산다’의 출연자들이 ‘정말 저렇게 살까?’라는 의문이 들 수 있다. 그들은 아침에 일어나 능숙하게 요가를 하고 커피를 내려 먹은 후 책을 읽는다. 직접 해 먹는 요리는 솜씨가 좋고, 잠시도 허튼 시간을 보내지 않으며 분주한 하루를 보낸다. 한 고정 패널은 ‘보여주기 식 루틴’이라며 일침을 가한다. 물론 출연자는 평소에 진짜 그렇게 생활한다며 억울할 수 있지만, 평소의 모습 중에서도 좋은 모습을 선택적으로 보여줬다는 것은 인정할 것이다. 이러한 선택을 탓할 수는 없다. 특별한 경우가 아닌 한 우리는 자신이 좋은 사람으로 비치길 바라기 때문이다. 다만 도덕성 논란은 피해 갈 수 없다. 비교적 긍정적인 평판을 쌓았던 출연자가 불법 다운로드 영상을 시청하는 장면은 그의 체면을 깎는 결과를 가져왔으니 말이다.
‘인성 영업’이라는 말이 있다. 주로 연예인을 지지하는 팬클럽에서 사용하는 용어로 아직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개념은 아니다. 인성 영업은 자신의 윤리적 건전함을 드러내 이미지를 관리하고 팬을 확보하는 전략을 의미한다. 예를 들면, 기부를 많이 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 잘못된 사회 현상에 대해 의견을 내놓는 것, 모든 사람들에게 예의 바른 모습을 보이는 것 등이 있다. 배우나 가수라면 연기를 잘하거나 노래를 잘하는 것으로 자신의 체면을 지킬 수 있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실력은 기본이고 인성도 좋아야 자신의 체면을 유지하거나, 체면을 세울 수 있다. 비단, 연예인에게 국한된 얘기는 아니다.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도 인성이 ‘꽝’이면 소용없다는 말을 왕왕 들어봤을 터이다. 그냥 능력만 좋은 사람이 될 것인지, 능력은 물론 인성도 좋은 사람이 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만약에 인성에 중점을 뒀다면, 그것에 문제가 생겼을 때 능력이 부족한 것보다 더 큰 비난이 돌아올 것을 알아야 한다.
다시 자신의 체면을 지키기 위해 허세를 부린다는 말로 돌아가 본다. 체면에 대해 생각해 보면, 스스로 자신의 체면을 지킬 수도 있지만, 남을 통해 내 체면을 지킬 수도 있다. 직접 말하기 어려운 것을 남의 입을 통해 전달하는 것이다. “오늘 먹은 저녁은 모두 사장님께서 쏘신 겁니다.”라는 말은 누군가의 입을 통해 사장의 체면을 올려주는 일이다. 나 역시도 이런 방법을 통해 타인의 체면을 높여줄 수 있다. 체면을 지키는 여러 가지 방법 중 한국인에게 가장 빈번하게 나타나는 것은 바로 스스로를 직접 드러내는 방법이다. 한국인은 자신의 사회적 명예를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내 입으로 직접 말하기 뭐하지만,”은 흔히 들을 수 있는 표현이다. 과거에는 스스로 체면을 세우는 것에 대해 겸손하지 않다고 보기도 했지만, 요즘은 자신의 장점에 대해 거침없이 드러내는 것을 당당하다고 보는 시선이 생겼다.
스스로 체면을 세울 때 있는 그대로 진실만을 말한다면 괜찮은 일이다. 문제는 약간의 ‘MSG’를 추가해 실제 자신보다 조금 더 돋보이게 하는 경우다. 식물에 광택제를 뿌리면 일시적으로 싱그럽게 보이지만 채 일주일도 가지 않는다. 더구나 식물의 자연스러운 광합성 작용을 방해해 식물에게 해로울 수 있다. 체면을 세우기 위해 허세를 부리는 것은 괜찮은 아이디어지만, 허세임이 밝혀지면 오히려 체면이 깎을 수 있다. 임시방편도 못 되고, 본래의 자신보다 낮은 평가를 받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허세를 잘 부려야 한다. 들통나도 창피하지 않은 정도, 애초에 들통날 일도 없는 정도, 내가 허세를 부린다는 것을 상대도 알고 있고, 상대가 눈치챘다는 것을 나도 알고 있기에 선을 넘지 않는 정도를 지켜야 한다. 체면을 지키는 것도 어려운데 적절한 허세를 부리는 것은 더 어렵다.
신은 허세를 부릴 이유가 없다. 허세는 인간의 능력이나 성품이 완벽하지 않기에 생기는 일이다. 상황이 그렇다면 없는 데 있는 척할 수 있다. 과장과 과시는 모든 사회에 있는 현상이다. 그러나 개인에 대한 사회적 기대는 탁월한 능력은 물론 높은 수준의 인성을 요구하고 있고, 그것을 충족했을 때 원하는 체면을 유지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허세를 부린다. 완벽에 이르지 못한 나를 채워주는 자기 위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