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시적 허세

갖고 있는 것이나 이뤄낸 성과를 드러내기

by CHOI JIWON

훈민정음 윷놀이’는 우리말만 사용해서 놀이를 진행한다. 놀이 도중 외국어를 사용하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말판에서 4개의 말이 업혀 중앙의 북극성을 지나 맹렬하게 북쪽의 출구로 나가기 직전이라 도 외국어를 사용했다면 ‘도’로 돌아가야 한다. 지금까지 외국어는 대개의 경우 영어다. 윷가락을 던져 ‘모’가 나오면 짜릿함에 “나이스!”를 외치거나, 윷을 던져 원하는 결과가 나오면 “오케이!”라고 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윷을 두는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영어가 튀어나올까 조심하며 한 글자, 한 글자 천천히 내뱉는다. 어느새 윷놀이는 영어 허세에 대한 자화상이 되고, 그야말로 ‘웃픈’ 상황을 연출한다. 몇 마디 아는 영어로 영어를 잘하는 척해왔던 내 모습이 투영된다.




우리가 부리는 허세 중 하나는 과시적 허세이다. 갖고 있는 물건이나 자신이 이뤄낸 성과를 사실보다 크게 나타내는 것이다. 어떤 일을 할 때 잘하는 척하거나, 자신이 성취한 일이 가치 있는 척하거나, 갖고 있는 물건이 대단한 척하는 식이다. 또는 유능한 사람들과 친분이 있는 척하거나, 여럿이 함께 한 일에서 자신의 기여가 큰 척하거나, 실제 느끼는 감정보다 더 크게 느끼는 척하거나, 자신이 남들보다 더 필요하고 특별한 사람인 척하는 경우도 과시적 허세에 해당한다. 일상에서 흔하게 마주치는 모습이다. 내 모습 중에, 타인의 모습 중에 매일 어렵지 않게 ‘허세부림’을 만난다.




과시적 허세 중에 영어를 잘하는 척이 있다. 실제로 잘하는 것이 아니라 잘하지 못하면서 잘하는 척하는 경우다. 영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실력이 되면 말할 때 언어 충돌이 발생한다. “이 말이 우리말로 뭐였더라?”며 우리말 단어가 순간적으로 생각나지 않거나, 발화 과정에서 영어와 우리말이 자연스럽게 혼용된다. 영어 한 문장, 우리말 한 문장식으로 대화하는 사람들도 있다. 두 언어가 모두 능숙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능숙하지 않은 사람들이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영어를 사용하면 영어 허세다. 예를 들면 “주제에 대한 애티튜드가 좀 딥했죠?”, “아이를 직접 케어해야 해서 매일 라이드 해요.”, “너무 인벌브하지 말자” 등이 있다. 영어권과 교류가 잦은 사람이라면 그럴 수 있다. 이런 현상은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어 진짜 영어를 잘하는 사람과 영어 허세를 부리는 사람을 구별하기 어려울 수 있다. 영어 허세를 부리는 사람들의 특징은 우리말 어순을 따르지만 명사나 동사는 영어를 사용한다는 점이다. 짧은 영어 실력을 최대한 동원해 능숙하게 구사하는 사람처럼 보일 수 있다는 점에서 ‘언어 가성비’가 높은 방법이다. 영어 잘하는 것을 사회적으로 높이 평가하기에 나타나는 현상이겠지만 과하면 눈살이 찌푸려지는 것도 사실이다.




뭔가를 배우러 학원에 등록하러 갔을 때 유명인과 찍은 사진이 걸려 있는 경우를 보게 된다. 자신이 유명한 사람들과 친하다는 것을 드러내서 은연중에 같은 ‘급’의 사람으로 보이고 싶고 그들의 유명세 일부를 내 것처럼 활용하고 싶은 인맥 허세이다. 고수는 도구를 탓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를 고수라 칭하지 않는다. 실력이 있다면 유명세를 빌리지 않아도 빛날 수 있다. 물론 마케팅의 일환이라고 항변할 수 있다. 문제는 진짜 친하지도 않은데 같이 찍은 사진을 게시하는 것이다. “그 사람이랑 잘 알지.”, “며칠 전에도 같이 밥 먹었지.”,”내가 부탁하면 들어줄 걸?” 같은 인맥 허세는 무엇보다 스스로를 공허하게 만든다. 이렇게 큰소리쳤지만 사실 연락처도 모르고 있다는 것을 무엇보다 자신이 잘 알기 때문이다.




실제 느끼는 감정보다 크게 느끼는 척하는 감정 허세도 있다. ‘싸이월드 감성’은 그 시절 외부 자극에 크게 반응하던 섬세한 감수성을 의미하기도 한다. 계절의 변화, 날씨의 변화, 관계의 변화 등에 대해 일반적인 경우보다 더 크게 반응하고 더 크게 표현한다. 한 계절의 정점에 있을 때, 한 계절에서 다른 계절로 넘어갈 때, 여름은 여름대로, 겨울은 겨울이어서 민감하게 반응한다. 감수성이 풍부하다는 것은 정서적 자원이 풍부하다는 것이고, 세상을 보다 다채롭게 인식한다는 의미이다. 기질적으로 풍부한 감수성을 가진 사람들이 있고 경험과 관찰을 통해 감수성을 배양할 수도 있다. 그런데 자신이 느낀 감정을 애써 끌어올리고 부풀려 표현하는 경우는 감정 허세라고 볼 수 있다. 그들의 감정은 즉흥적이고 표현은 성글다. 스스로도 정확히 모르는 듯 추상적이고 관념적이다. ‘뜬구름 잡는’ 소리처럼 막연하거나 허황된 표현이다.


“난 가끔 눈물을 흘린다.

가끔은 눈물을 참을 수 없는 내가 별로다.

마음이 아파서 소리치며 울 수 있다는 건 좋은 거야.

뭐 꼭 슬퍼야만 우는 것은 아니잖아.

난 눈물이 좋다.

아니,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우는 내가 좋다.”


과거 가수 채연 씨가 눈물 셀카와 함께 싸이월드에 남긴 글로 유명하다. 가끔 눈물을 참지 못하는 내가 별로라며 눈물 흘리는 자신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비친다. 그런데 곧 마음이 아파서 우는 것은 좋은 것이라며 눈물에 대해 긍정적으로 바뀐다. 마음이 아파 소리치며 우는 것은 좋은 것이라더니 슬퍼야만 우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의식에 흐름대로 문장을 작성한 듯 감정선이 성글게 엮여 있다. 이어서 눈물이 싫다는 처음 고백과 달리 눈물이 좋다고 하더니 결국 자기 자신이 좋다는 결론으로 끝난다. 이런 감정 표현은 얼핏 읽으면 멋져 보일 수 있다. 그런데 자세히 읽어 보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지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다. 높은 감수성을 드러내고 싶었지만, 사실은 그런 척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풍부한 감정 변화를 제대로 표현하는 것은 시인에게도 어려운 일이다. 우리가 감정 허세를 가벼운 치기로 여겨버리는 것은 깊이 없음을 이미 간파했기 때문이다.




한때 어떤 글이든 상관없이 끝 문장에 ‘여름이었다.’를 붙이는 것이 유행이었다. 무슨 내용이든 상관없이 끝에 ‘여름이었다.’로 마무리하면 감성적이고 아련한 느낌을 준다는 것이다. 다양한 파생 글이 쏟아졌고 사람들은 내면의 감정 허세 욕구를 충족시켰다. 우리는 멋있고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다. 표현하지 않으면 상대가 내 가치를 제대로 알지 못할까 불안하다. 그런데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은 부족한 듯하다. 그래서 사실보다 조금 부풀리는 과시를 통해 허세를 부린다. 적당한 과시는 귀엽고 유쾌하다.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 느껴져 호감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늘 과한 것이 문제다. 작은 과시가 받아들여지는 것에 고무돼서 조금씩 조금씩 ‘양념’이 가미되다 보면 눈덩이처럼 불어난 ‘가짜 나’를 마주하게 된다.

keyword
이전 06화한국적인 허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