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는 태어난 김에 산다지만 살아가는 동안 아무 생각 없이 살 수는 없다. 우리 뇌는 쉬는 동안에도 쉬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모르는 것을 마주칠 때도 모른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 생각하기 싫다는 것마저 생각을 통해 나타난다. 태어났기 때문에 우리는 주변을 인식하고 그것을 통해 자아 개념을 형성한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나는 주변 사람들이 내게 보이는 반응을 통해 우월함과 열등함을, 주변 사람들과 나를 끊임없이 비교하며 같음과 다름을 인식한다. 보기 좋은 이목구비의 배열에 사람들이 대체적으로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면 자신의 생김새에 대한 우월함을 느낀다. 반면, 학창 시절 학습 능력에 대해 인정을 받지 못했다면 그에 대한 열등감이 자리 잡게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원만하게 적응하는 학교 생활에 무리 없이 스며든다면 내가 보통의 사람들과 다르지 않다고 판단하겠지만,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을 보고도 별다른 재미를 느끼지 못한다면 자신의 취향이 일반적이지 않다고 생각하게 된다. 이렇게 타인의 반응과 사회의 기준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인식하는데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나’라는 존재가 사회적 차원에서 인식된다면, 사회적인 평가를 염두에 둘 수밖에 없다. 긍정적으로 평가되는 것과 부정적으로 평가되는 것이 있다면 긍정적으로 평가되는 것을 수용하는 것이 생존에 유리하다. 인간관계를 맺기에 충분히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드러내야 사회적 차원의 ‘나’는 안전하다. 혹시 상대가 나를 나쁘게 생각하려고 한다면 예방해야 한다. 긍정적으로 여겨지는 특징을 드러내 그들의 판단에 영향을 미쳐야 한다. 바로 ‘인상관리’가 필요하다.
인상관리는 인간관계의 모든 상호작용 안에서 나타나며 타인에게 제공하는 자신의 정보를 통제하는 방법으로 시도한다. 우리는 사실을 그대로 말하고 싶지 않을 때 침묵하거나 거짓말을 할 수 있다. 그런데 침묵과 거짓말 외에 사실과 거짓 사이를 교묘하게 파고드는 방법을 통해 진실을 말하지 않을 수도 있다. 바로 애매하게 말하는 것이다. 어디까지가 사실인지, 어디까지가 거짓인지 모호한 순간에 상대를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끌고 간다. 정성껏 차려준 음식에 맛이 이상하다면 “우와! 내가 먹어본 음식 중에 가장 특이하다.”라는 말로 부정적인 평가를 완화할 있다. 음식이 너무 매울까 걱정하는 상대에게 “나 원래 매운 음식 잘 먹어!”라고 말하며 안심시킬 수도 있다. 비록 혀는 얼얼하고 얼굴은 빨갛게 달아올라 있다 해도, 거짓도 진실도 아닌 표현을 통해 최소한 ‘상대에 대한 배려심이 있다’는 평가는 얻어낼 수 있다.
인상 관리를 연극적 관점으로 접근한 고프만(Goffman)의 비유는 유명하다. 인간관계에서 일어나는 의사소통이 연극의 무대라면 인상 관리를 해야 하는 사람은 배우이고, 배우가 보여주는 연기만으로 모든 상황을 판단해야 하는 관객은 의사소통의 대상자이다. 연극은 준비된 대사와 무대 구성, 조명 등을 통해 정보를 통제한다. 막과 막 사이 암흑은 연극에서 보여주고 싶지 않은 것을 감출 수 있게 한다. 관객을 몰입시키기 위해 연극은 타당한 감정선을 만들고, 적절한 곳에서 배우는 자신의 감정을 고조시킨다.
인상을 관리한다는 것은 마치 연극처럼 타인에게 보이는 내 정보를 통제해서 의도된 효과를 얻는 것과 같다. 즉흥적이지 않은 의도된 표현은 기존에 만들어진 자신의 인상을 유지하거나 더 좋은 방향으로 끌고 갈 수 있다. 고프만은 기존에 자신에 대한 인상과 새롭게 제공되는 정보가 일치하지 않는다면 진실이 아닌 것을 진실인 것처럼 꾸미거나 상대를 자극해서 빠른 효과가 나타나게 하는 방법을 사용해 불일치를 해소한다고 한다. 상대가 이미 알고 있는 나와 새롭게 드러낸 나와의 괴리. 우리는 이 어그러짐을 바로잡기 위해 인상 관리를 시도하고, 인상 관리의 한 방법으로 허세 부리는 것을 선택하게 된다.
물론 모든 인상관리가 허세로 나타나지는 않는다. 사람의 성향에 따라 적극적으로 인상을 관리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자신의 좋은 점을 직접 드러낼 수도 있고, 주변 사람들이 나를 칭찬하게 해서 내가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인지시킬 수도 있다. 어떤 경우이든 내가 인상을 관리하겠다는 동기가 있어야 한다.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이유는 그에 따른 이득이 크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반대로 나쁜 사람으로 보이는 것을 피하고 싶은 것은 불이익에 대한 거부감이 있어서다. 인상을 관리하고 싶은 보편적인 동기는 ‘좋은 사람’이 갖는 장점을 최대한 취하고, ‘나쁜 사람’이 갖는 단점은 최대한 피하고 싶은 심리이다. 자신의 실제 자아와 사람들에게 드러나는 자아가 다르다는 것은 꽤나 불편한 일이고,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그런 상태를 유지한다는 것은 많은 에너지가 필요한 일이다.
그런데 이런 어려움의 결과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면 힘들게 인상을 관리할 동기가 낮아진다. 마찬가지로 내가 원하는 이미지와 다른 방향으로 인상이 형성돼도 인상 관리의 노력이 허무하게 느껴져 동기가 낮아질 수 있다. 허세를 부리는 이유는 그것을 통한 이익이 크다는 것을 믿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부족하거나 없는 것을 있는 척하는 것이 허세인데, 그 마음이 편할 리 없다. 그래도 적극적으로 자신의 정보를 드러내는 것은 좋은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서이고, 얻는 것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허세를 부리는 이유를 추가하자면 불안하기 때문이다. 더하거나 덜어내지 않고 그대로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남의 눈치를 보거나 남과 비교하지 않아도 스스로 충분히 가치 있는 사람이라고 믿는 높은 자존감이 있다면 좋겠다. 자존감은 내게 주어진 모든 환경과 내가 갖고 태어난 기질의 결합이다. 좋은 환경에서 태어났어도 기질적으로 예민하면 자존감이 낮을 수 있고, 훌륭한 환경이 아니라도 긍정적인 기질이라면 자존감이 높을 수 있다. 너무 높은 자존감은 오만과 독선에 빠질 수 있다. 적당한 부족함과 적당한 열등감은 강력한 동기로 작용할 수 있기에 나쁘다고만 할 수 없다.
이 지점에서 허세가 나타난다. 자존감에 취해 나르시시즘에 빠진 사람이 아니라면 인간적인 수준의 적당한 열등감을 갖고 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최소한 가치 없는 사람으로 보이는 것은 막아야 한다는 내적 마지노선이 허세를 부리는 마음의 기저에 깔려 있다. 허세가 사람들에게 비교적 관대하게 받아들여지는 이유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런 마음을 공감하기 때문일 것이다.
요즘 ‘부캐(附character)’를 만드는 유명인이 늘고 있다. 부캐는 게임에서 유래된 용어로 원래의 캐릭터 외에 새롭게 만든 캐릭터를 의미한다. 이른바 ‘멀티 페르소나(multi-persona)’로 상황에 맞게 가면을 바꿔 쓰며 다양한 정체성을 내보인다. 이들은 부캐를 통해 방송에서 보여줄 수 있는 이미지의 한계를 가뿐하게 넘어선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하듯, 새로운 캐릭터는 ‘본캐’와 다른 인격을 드러낸다. 얌전한 고양이가 부뚜막에 올라 춤을 춰도 허용되는 것이 부캐이다. 우리 일상에서도 필요에 따라 다양한 인격을 자유자재로 표출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불행히도 인간관계에서 수시로 변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타인과 어울리는 생활이 원만하지 못할 것이다.
나를 내가 알고 있다. 명확하진 않지만 대략적으로 일관된 특징이 있다. 삶의 순간은 다채롭고 예측하기 어렵기에 어떤 자아를 꺼내야 좋은 사람으로 남을 수 있는지 기만한 전략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해도 매번 전혀 다른 모습으로 상대를 대할 수는 없다. 자칫 선을 넘었다가 낭패할 수 있기 때문에 ‘적절함’이 필요하다. 우리는 순간순간 자아가 어긋남에 대한 불안감을 허세를 통해 적절하게 조절하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