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세를 정의하는 사람들2

카와 카슨: 암묵적으로 동의하는 관행

by CHOI JIWON

해 오던 대로 하는 것을 ‘관행’이라고 한다. 별다른 문제제기가 없다면 관행은 미래 세대로 이어진다. 과거 인종에 따른 차별은 관행적으로 이루어졌고, 성역할에 대한 인식도 많은 시간 관행적으로 이어져왔다. 최근에는 ‘루틴(routine)’이라는 표현이 자주 사용되는데, 매일 반복적으로 특정 행동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 매일 아침 명상을 하고 가벼운 운동 후에 샤워를 한다면 그것이 이른바 그 사람의 ‘루틴’이다. 관행과 루틴이 비슷한 뜻을 갖고 있지만 루틴이 개인행동의 통상적인 순서와 방법을 의미한다면, 관행은 사회적 차원에 가깝다. 함께 생활하는 공동체 속에서 구성원들이 암묵적으로 동의하고 있는 측면이 있는 것이다. 커피를 탈 때 반드시 커피, 설탕, 크림의 순서대로 추가하는 것이 개인의 루틴이라면, 커피에 설탕과 크림을 섞는 것은 사회적 관행이다.




관행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 것은, 허세를 관행적 차원에서 정의한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허세는 다양한 상황에서 나타날 수 있기에 비즈니스 세계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카와 카슨은 비즈니스 상황에서 나타나는 허세에 대해 서로의 생각을 나누었다. 이들이 동의하는 것은 비즈니스 상황에서 상대에게 곧이곧대로 진실만을 말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며, 그렇기에 어느 정도의 허세는 관행적으로 허용된다고 말한다.




물론 현재는 신뢰를 바탕으로 한 윤리경영이 비즈니스에서 중요한 덕목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카와 카슨의 연구는 1990년을 전후해서 이루어졌다는 것을 생각하면 ‘관행적 허세’가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다. 1983년 출간 이후 30주 연속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등극한 허브 코헨의 ‘협상의 법칙’은 당시 비즈니스 세계에서 허세가 얼마나 관행적으로 허용되었는지를 짐작하게 해 준다. 책에 언급된 ‘협상에 유용한 테크닉’은 진실에 기반한 정보 제공이라기보다 상대를 교란시켜 심리적 패배감을 느끼게 하는 다소 치사한 전략들일 수 있다. 1984년에 초판 발행된 뒤 1996년 우리나라에 소개된 로버트 차일다니의 ‘설득의 심리학’도 물건을 판매할 때 유용할 수 있는 6개의 설득 법칙을 제시하고 있는데, 6개의 법칙도 일종의 ‘관행적 허세’라고 볼 수 있다. 과거에 설득의 기술은 내가 상대에게 일정한 기법을 적용해 상대를 변화시키는 것이라고 봤다면, 최근에는 상대의 설득 기법과 별개로 자신의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판단에 따라 상대의 제안을 받아들이거나 순응한다고 보고 있다. 카와 카슨이 허세를 관행적으로 허용되는 전략으로 봤다는 것은 이러한 시대적 배경을 고려해야 한다.




‘관행적 허세’는 홈쇼핑 방송에서도 많이 나타난다. 우리나라의 경우 1995년 홈쇼핑 전용 방송국이 생겨났는데 그 시절, ‘한정 수량’, ‘매진 임박’이라는 마법 같은 문구에 이끌려 자신도 모르게 주문 전화를 한 경험이 떠오를 것이다. 비즈니스의 최전방에 있는 쇼핑 호스트는 특별 혜택은 이번에만 제공되고, 사은품은 방송 이후에는 절대 돌아오지 않는다고 강력하게 말한다. 봄에 시폰 원피스를 사지 않거나, 가을에 트렌치코트를 사지 않으면 큰일이 날 것 같다. 실제로 최근 토크쇼에 출연한 20년 경력 임세영 쇼핑 호스트는 1995년 이후 판매 기조가 달라져 왔다고 말한 바 있다. 과거에는 좌중을 압도하는 카리스마가 필요했다면 최근에는 공감을 넘어 솔직함이 판매 전략으로 선호되고 있다는 것이다. 유튜브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홈쇼핑 방송사고 레전드 영상에는 절대 깨지지 않는다며 유리 용기를 망치로 내려치는 장면이 나온다. 사람들의 눈과 귀를 혹하게 하는 판매 전략이지만, 몇 번의 망치질에 깨져버리고 마는 유리 용기는 ‘관행적 허세’가 무엇인지 보여준다.




카는 허세에 대해 “의도적으로 오해를 만들기 위해, 관련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이 동의하도록 설득하기 위해 과장하는 것’으로, 카슨은 “사람들을 오해하게 만들어 자신에게 유리한 국면을 만드는 전략적 선택”이라고 정의한다. 두 개의 정의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사실 그대로 말하지 않는 것이 허세라고 제시한다. 특히 ‘오해하게 만드는 것’이라는 공통점은 카와 카슨이 허세를 어떤 차원에서 접근했는지 알 수 있게 해 준다. 목적 달성을 위해서는 변칙도 허용되고 그 과정에서 상대가 잘못된 해석을 하도록 일부러 유도하는 것이 허세이며, 이러한 전략은 으레 해왔던 것들이기 때문에 관행적이다. 카와 카슨은 허세를 비즈니스 상황에서 구사되는 하나의 전략으로 본 것이다.




다시 홈쇼핑의 예를 들면, 비즈니스 최전방의 쇼핑 호스트는 과연 독자적으로 과장된 정보를 제공할 수 있을까? 최근 필수 가전으로 떠오르고 있는 식기세척기의 경우 기존에 상대적으로 활발하지 않았던 시장이 활기를 띈 경우이다. 한식은 기계 세척이 어렵다는 인식으로 식기세척기 사용률이 높지 않았지만, 향상된 기술력과 위생에 대한 높아진 인식 등이 식기세척기에 대한 구매 수요를 불러일으켰다. 홈쇼핑을 통해 판매가 진행되고 있다면, 판매업체는 쇼핑 호스트와 함께 식기세척기에 대한 판매 전략을 수립할 것이다. 매출을 좀 더 올리고 싶은 쇼핑 호스트는 식기 세척기가 있으면 그릇을 모아 두고 하루에 1번만 작동시키면 된다고 말하며 하루에 여러 번하는 설거지의 번거로움이 해결된다고 전한다. 덧붙여, 높은 온도로 살균이 마무리되면 자동으로 문이 열리는데 이때 수증기가 밖으로 배출되어 건조한 집안 공기를 촉촉하게 해주는 가습 효과가 있다고 말한다. 판매업체는 음식을 담았던 그릇을 모아두는 것이 비위생적이라는 점, 가습 효과는 현재 증명되지 않았다는 점을 알고 있지만 매출이 올라가고 있기 때문에 쇼핑 호스트의 발언을 문제 삼지 않는다. 판매업체가 문제 삼지 않는다는 것을 암묵적 동의로 해석한 쇼핑 호스트는 해당 발언의 횟수를 늘려간다.




카는 위의 경우처럼 비즈니스에서 업무를 지시하는 사람이 암묵적으로 동의한다면 업무를 수행하는 사람의 허세는 더욱 빈번하게 발생한다고 말한다. 매진은 임박하지 않았고, 물량은 추가로 공급될 수 있기 때문에 수량이 한정적이지도 않다. 쇼핑 호스트가 소비자를 ‘오해하기 만드는 것’은 목표 매출 달성을 위한 전략일 뿐이다. 비즈니스에서 암묵적으로 동의하는 관행은 쇼핑 호스트의 허세를 허용되는 것이다. 만약 같은 시간에 다른 채널에서 식기 세척기를 판매하고 있다면 어떨까? 쇼핑 호스트는 지금 이 방송에서만 그릇 세트를 사은품으로 받을 수 있다고 말하고, 이런 기회는 다시 오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엄청난 혜택을 주는 것처럼 말하지만, 방송이 끝난 후 해당 홈쇼핑의 온라인몰에서 동일한 상품과 구성으로 판매된다. 카는 경쟁 관계가 강할수록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 허세가 증가한다고 봤는데, 이때의 허세는 일종의 방어 전략이다. 카는 비즈니스 세계를 게임에 비유했는데, 게임에서 이기기 위해 자신의 의도를 숨기는 것을 비난하지 않는 것처럼 비즈니스에서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허세를 부리는 것은 '특별한 규칙'과도 같다고 말한다. 이런 상황에서 진실한 정보만을 말하는 것은 특별한 규칙에 따라 허용된 기회를 스스로 포기하는 셈이라는 것이다.




카슨은 허세가 거짓말과 다르다고 말한다. 거짓말은 상대를 속일 의도로 진실이 아닌 것을 말하고 결국 상대에게 손해를 입히는 것인데, 허세는 상대의 오해를 일으킬 뿐 손해를 끼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거짓말은 윤리적인 문제를 발생시키지만 허세는 특별한 규칙이 적용되는 상황이라면 합리적인 전략이라고 본다. 카슨은 허세가 합리적으로 허용되는 상황을 규정했는데, 그 규칙은 다소 복잡하다. 먼저 전제 조건은 A는 제시된 조건 하에서 B가 자신에게 행하는 행위를 암묵적으로 동의하는 것이다. 동시에 B가 알고 있는 것은, A는 B가 A에게 뭔가를 해 주길 기대하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A는 B가 A에게 뭔가를 하는 것에 대해 반대하지 않는다. 그리고 A는 B에게 해를 끼치지 않으면서 B가 A에게 하는 일을 반대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이 모든 것을 B가 알고 있으며, B가 알고 있다는 것을 A는 알고 있다.




카슨에 따르면 허세가 허용되는 특별한 규칙은 상대가 내 기대를 충족시켜 줄 것이라는 전제하에 상대의 행위를 허용하는 것인데, 만약 경우에 따라 상대의 행위를 수용하지 못한다 해도 상대에게 피해를 주지는 않는다. 또한 이런 상황을 상호 충분히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거짓말은 이런 규칙이 없어 상대에게 손해를 입히지만, 이 특별한 규칙은 관행적 허세를 합리적인 전략으로 가능하게 한다고 본다. 홈쇼핑을 보면서 우리가 쇼핑 호스트의 관행적 허세를 허용하는 이유는 쇼핑 호스트가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 우리에게 심각한 사기를 치지는 않을 것이란 기대, 제품을 팔기 위해서 소비자를 오해하게 만드는 것을 반대하지 않지만, 만약에 내가 보기 싫으면 물건을 사지 않거나 채널을 돌릴 수 있다는 기대, 소비자가 그렇다는 것을 쇼핑 호스트도 알고 있다는 기대, 동시에 쇼핑 호스트가 알고 있다는 것을 소비자도 알고 있다는 기대가 충족되기 때문이다.




카와 카슨의 허세는 비즈니스 세계에서 관찰한 허세이다. 그러나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허세 행위자를 경찰에 고소∙고발하지 않는 이유는 카슨의 ‘특별한 법칙’이 일부 적용되기 때문일 것이다. 나를 오해하게 만드는 상대의 의도적 행위를 눈감아 주는 것은 상대가 일정한 선을 지킬 것이고, 그 행위가 내게 피해를 입히지 않는다는 것을 서로 뻔히 알고 있기에 가능하다. 단순히 오해하게 만들어 원하는 것을 얻는 것이 아니라 상호 동의하는 범위를 공유하며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것이 허세의 매력이다.





참고 문헌

Carr, A. Z. (1997). ‘Is Business Bluffing Ethical?’ In T. L. Beauchamp and N. E. Bowie (eds.),

Ethical Theory and Business (5th edition), Prentice Hall, New Jersey.

Carson, T. L. (1993). Second Thoughts About Bluffing. Journal of Business Ethics, 3(4), 317-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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